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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Sep 14. 2023

드디어 자취가 일상이 되다

이사가 끝나지 않은 것 같던 일주일

알람을 맞추고 자지 않았더니 한낮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오전이 사라진 것을 알고 허무하기도 했지만 이 정도의 휴식이 필요할 정도로 피곤했다는 뜻이니 억울할 것은 없었다. 집에 요리를 할 수 있는 기구들은 있었지만 재료가 없었기 때문에 점심식사는 나가서 해결해야 했다. 추가로 살 것도 있어서 어차피 나가야 하긴 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실용적인 차림으로 집에 있는 모든 장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겨울이었지만 낮의 햇살이 따듯한 덕분에 걸어가는 길이 힘들지 않았다. 식당까지 가는 길에 주변을 둘러보며 편의점 위치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코인 세탁소 위치도 알아두었다.

집 주변은 오피스텔만 즐비할 뿐 아직 상권가가 형성되지 않은지라 밥을 먹기 위해서는 좀 걸어가야 했다. 집 근처에서 번화가라 부를만한 거리는 대부분 주변 회사를 보고 장사를 하기 때문인지 주말에 문을 연 곳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도 다른 지역에서 가본 적 있는 프랜차이즈 가게가 영업 중이라서 더 찾아다닐 것도 없이 바로 들어갔다. 오늘의 메뉴는 든든한 한식이었다. 평일 점심이었다면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주말이다 보니 예상보다 비쌌다. 따듯한 국물과 부드러운 고기가 들어가니 몸이 나른해졌다. 장이고 뭐고 집으로 돌아가서 좀 더 쉬고 싶었다. 하지만 쉬고 싶은 충동을 뒤로하고 가까운 다이소로 향했다.




인터넷으로는 대용량밖에 안 팔고 마트는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면 다이소만 한 곳이 없다. 저렴한 가격에 낱개로 살 수 있으니 특별한 기능을 요하지 않는 소모품은 다이소에서 산다. 이때 이후로도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한동안 퇴근 후 다이소를 찾으며 꼭 살 것이 없더라도 구경하곤 했다. 저렴하다고 분별없이 사다가는 과소비로 이어질 수 있으니 어제 적은 목록을 기준으로 쇼핑을 시작했다. 팔에 거는 바구니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카트를 선택한 것은 아주 탁월한 결정이었다. 목록에 있는 것만 담았는데도 카트가 넘칠 지경이었다.

물건을 선택하는 기준은 가격이 아니었다. 어차피 다이소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들이 시중보다 저렴하므로 가격보다는 실제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골랐다. 옷을 넣을 바구니는 마감이 깔끔하지 않으면 올이 튈 수 있으므로 매끈한 마감을 중점적으로 봤다. 식기구를 꽂아놓을 통은 생각보다 많은 양을 수용해야 하므로 적당히 큰 것을 골랐다. 청소솔은 고리에 걸 수 있도록 손잡이 끝에 구멍이 난 것을 찾았고 물티슈는 오래 보관하면 마를 수 있으므로  딱 하나만 샀다. 장바구니에 겨우 나눠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한가득 샀는데도 8만 원밖에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장 본 것을 들고 집까지 어떻게 갈지였다. 버스를 타기에는 애매한 거리인 데다 주말이라 길어진 배차 간격을 기다리다 보면 걸어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결국 봉투 끈이 살을 파고들 것 같은 느낌을 참으며 집까지 걸어갔다. 집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자 손이 저릿해져 왔다. 그래도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을 양분 삼아 기운을 내서 사 온 것들을 금세 정리했다.




이사에 쏟아부은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 출근하려면 몸이 많이 피곤할 것이라는 걸 일찍이 짐작했다. 이제까지 살면서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닌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이다. 가족 단위의 이사도 힘들었는데 나 홀로 이사는 얼마나 더 할까 싶어 이삿날이 정해지자마자 처음으로 맞는 월요일에 오전 반차를 신청했다. 휴가를 위한 핑계는 하나 더 있었다. 대출받은 은행에서 실거주 확인을 위해 월요일 오전에 집으로 오기로 했다. 집 안으로 들어와서 가구가 들어왔는지 실제 거주하는 분위기를 풍기는지 확인할 줄 알았는데 조사원은 문밖에 서서 내 서명만 받고 1분도 지나지 않아 가버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은 자잘하게 물건을 사다 나르고 배달시키고 정리하며 퇴근 후의 시간을 보냈다. 사 온 물건은 정리하고 배달 박스는 뜯어서 분리하느라 손이 쉴 시간이 없었다. 출퇴근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에 체력과 시간 모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여유 있는 만큼 할 일도 늘어났다. 집의 기본기를 갖추는 일뿐만 아니라 생활 유지를 위한 일들도 같이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빨래, 설거지, 청소기 밀기 등은 하는 것보다 하지 않았을 때 티가 더 나는 집안일이다. 회사에 있을 때보다 퇴근 후를 더 바쁘게 보내고 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서 새벽 한 두시에 자기 일쑤였다.




이사 온 지 일주일 되던 날, 집이 안정기에 들어섰다. 더 사들일 것도 없었고 여기서 더 샀다가는 지출을 감당할 수 없었다. 공식적인 이사는 이미 일주일 전에 끝났지만 그동안의 시간들을 떠올려보면 이제야 이사가 끝난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자정이 되기 전에 침대에 누웠던 날, 잠들기 전 눈을 감고 생각했다, '드디어 자취가 일상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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