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든 졸혼이든 당신이 행복하다면 하세요

'이혼해도 괜찮아. 엄마..'라고 말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by 트래블메이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을 보면 엄마아빠의 부부 싸움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부모님의 싸움 주제는 의류 사업, 돈, 술....이었다. 1살 나이 차이였던 부모님은 꽤 자주 부부싸움을 했다.


부부싸움의 시작은 엄마의 날카로운 눈빛과 잔소리. 잔소리에 이제 무뎌질 대로 무뎌진 아빠. 그 끝은 언제나 아빠의 참다못해 폭발해 버린 아빠. 엄마아빠의 싸움을 들으며 ‘엄마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 아빠는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왜 했을까'를 생각했다.



#방에들어가있어


내가 국민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안 가구들이 제자리를 이탈해 있었다. 책꽂이가 현관문 쪽에 나를 마중 나와 있었고, 리모컨과 라디오는 장기를 드러낸 채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싸움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집에 온 시간에는 휴전 중이었다.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나는 방에 들어가 문고리를 붙잡고 부부싸움이 끝날 때를 기다렸다. 아빠는 이런 식으로 자주 나에게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경비실아저씨도와주세요



중학생이 된 어느 날. 또 한 번의 전쟁 같은 부부싸움이 시작되었고, 밤은 깊어가는데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경비실로 전화를 걸어 SOS를 쳤다.'도와주세요. 아저씨. 엄마 아빠가 심하게 싸워요.' 경비아저씨에서 구조요청을 하다니.... 112도 아니고 경비실에... 그 시절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경비실 아저씨는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고 나는 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상황을 살폈다. 아빠는 내가 신고한 것을 알고 내 방으로 달려와 '너 당장 나와!!' 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내 기억 속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었다. 어쨌든 그날의 부부싸움은 경비실 아저씨가 끝내주었다. 나의 구조요청에 한걸음에 달려와준 경비아저씨가 고마웠다.


#탈출아닌탈출


고등학생이 되어도 부부싸움은 계속되었다. 나는 성적이 계속 떨어졌다.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는 욕심에 학교 근처 고시원에 살기로 했다. 사실 사춘기였던 나에게 엄마아빠의 부부싸움은 큰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밤에 일을 나갔던 엄마는 나를 통해 아빠를 감시했다. '아빠한테 전화해 봐라. 아빠 오면 전화해라. 아빠 지금 뭐 하시냐..' 등등 매일같이 불안함 속에서 공부를 해야 했다.


사실 고시원에서의 삶은 정말 힘들었다. 겨울에는 뜨거운 물이 잘 나오지 않았고 여름에는 찜통이었다. 고시원 사장님은 고시원을 여관처럼 운영했다. 분명 여자 전용층인데 남자들이 드나들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빠 엄마는 2주일에 한 번씩 고시원에 찾아와 밥을 사주었는데 그 사이에도 싸움을 했다. 아빠의 축구 이야기, 술 약속 이야기, 돈 이야기였는데.. 도무지 이 싸움의 끝을 알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를한남자로 #엄마를한여자로


대학생이 되자 부모님의 삶 속에서 정신적으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쳤다. 부모님의 감정에 끌려다니는 나 자신을 위로하고 부모님의 싸움으로 내가 받은 상처들을 씻어내고 싶었다. 어떤 날은 방에 갇혀 공포에 떨던 나 자신이 떠올라 펑펑 울기도 했다. 친한 친구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취업 고민, 여자 친구, 남자 친구 고민, 학자금 고민을 하는 친구들에게 내 고민은 조금 황당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아빠를 한 남자로, 엄마를 한 여자로 바라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자 조금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는데 부부싸움이라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모의 부부싸움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한 번쯤 부부싸움 후에 누군가가 '부부는 살다 보면 싸울 수 있는 거야. 다시 잘 지낼 수 있을 거야..'라는 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성인이 되어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부모님의 모든 싸움의 원인 제공은 아빠가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엄마가 일반적으로 당하고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아니었다.



어린 나에게는 가혹했던 시절

언젠가 엄마가 울면서 '죽지 못해 산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 어린 나는 엄마를 붙잡고 따라 울었다. 아빠도 나에게 취기를 빌어 '너네 때문에 사는 거야. 안 그랬으면 벌써 헤어졌어!'라고 자주 말했다. 부모는 나에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정도였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 지냈다. 그런 불안함에 떨었던 어린 내가 가엽다.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좋은 시절을 싸움으로 보낸 부모님도 가여웠다.



부부싸움의 방식도 유전인가


최근 남편과 말다툼을 하며 내가 내뱉는 말들이 예전에 엄마가 아빠한테 했던 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름이 끼쳤다.. 부부싸움도 대물림이 되는 것인가. 내가 지금 혀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을 살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나를 위로하듯 아이를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우리 딸도 어린이 집에서 친구들하고 싸우지? 엄마 아빠도 가끔 싸워. 괜찮아.'

' 그럼, 얼른 아빠한테 가서 미안하다고 해.'

'..... 알겠어. 그럴게.'


졸혼이 답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모님은 이혼하지 않았다. 환갑이 지나서야, 자식이 모두 출가하고 나서야 한 시름 놓고 인생을 즐기기 시작한다. 계모임, 동창모임, 운동 모임 등등으로 바쁘고 여행 다니기 바쁜 모습에 나도 한시름 놓는다.


최근에 미디어에 졸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아빠에게 졸혼에 대해 물었다고 했다. " 너희 아빠한테 졸혼이 어떠냐고 말했더니, 뭐라는지 아니? 난리가 났어. 내가 왜 졸혼을 당해야 하냐고.."


졸혼, 이혼, 결혼 무엇이든 행복하다면


뭐든 당신들이 행복하다면 하세요. 더 이상 결혼제도에 묶여 서로를 구속하지 않기를 바라요. 이제는 한 여자, 한 남자로서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길. 부부싸움에 힘 빼지 말기를. 엄마아빠가 사이좋게 함께 취미를 공유하고 살면 욕심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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