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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Nov 14. 2016

붉은 물감 풀어헤친 내장산 서래봉, 불출봉

내장산,가을단풍, 서래탐방지원센터, 서래봉, 불출봉, 내장사, 스케치

http://cafe.naver.com/hongikgaepo

가을밤공기가 차다. 

밤에 비가 온다더니 문 열고 새벽 공기를 마시자마자 공기에 비 냄새가 섞여있다. 

어제 나라 최고 권력자에 대한 원성이 가득한 큰 집회 때문에 그 분함을 씻어내라는 건지 작은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 적셔진 거리를 걸으며 하나둘 나타나는 사람들을 지나친다. 그들이 어제부터 있던 것인지 오늘 나온 건지 알 수 없지만 어깨에는 밤의 무게가 얹어져 있다. 


조금 먼 산이지만 이 시즌 가장 유명한 산이므로 몰려드는 차와 사람들을 감안하고 가기로 한 산이다. 

유명한 만큼 무언가 숨겨진 비경이 있는 산이라 생각되어 한쪽으론 많은 기대와 한쪽으론 그 기대를 가라앉히는 무게추를 달아 담담히 걷는다. 나이를 하나둘 먹어가면서 겸손이란 무게추만 더 무거워진 것 같다. 

가로수엔 불을 지른 듯 단풍이 타오르고 들머리인 '서래탐방지원센터'를 통해 올라가는 길은 자연의 생명 지표인 이끼가 무성하다. 이쪽 길의 수종은 단풍보다는 떡갈나무류가 많아 길은 황금 양탄자로 펼쳐있고, 간간히 붉은 단풍 네온사인만 켜져 있으며, 하늘은 해가 들었다 나왔다 어두운 톤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나무숲을 지나 삼십여분 정도 삼거리에 도착한다. 삼거리엔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져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 있었고, 뒤쪽 아래편으로 호수가 넓게 차지하고 있어 가을 하늘을 담고 있었다. 





 '서래봉'까지 가기 위해 쉬지 않고 올라간다. '서래봉'까지는 폭이 좁은 80도 경사의 강철 계단이 길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 계단을 힘차게 오르고 나니 내려왔다 다시 한번 오르게 된다. 

정상이 칼 같은 암석 봉우리들이니 그리 만만한 산은 아닌 것 같다. 철계단이 힘들어질 때쯤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서래봉 정상에 가까워진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백만 가지 색깔의 산결이 아름답게 펼쳐져있다. 

날이 좀 더 맑았더라면 아름다운 색이 더 투명하게 비추였을 텐데 빛이 아쉽게도 하늘에 갇혀버렸다. 

이 나라의 현 시국을 반영하듯 어둠 속의 무거운 다채로운 색들이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대다가 오늘 걸을 산세를 살펴본다. 많이 험해 보이진 않아도 만만치 않은 거리다. 

오늘은 단풍의 색을 즐기기로 하고, 조금 빠른 코스로 움직이기로 마음먹고, 조금 더 내려가 '내장사'를 바라보며 산세가 훤이 보이는 곳에서 스케치를 시작한다. 

먹색보다 모든 물감의 색들이 필요한 때라 다양한 색들을 섞고 찍어 바르며 내장산 섞어찌개를 요리하게 되었고, 요리가 끝나자마자 쉴 틈 없이 먹지도 못하고 이동하였다. 





산은 남쪽 산임을 증명하듯 '조릿대'로 사열해 등산객을 환영하고 있었고, 그 등산객은 국적을 초월해 영어권 사람들과 중국인들을 포함해 우리의 산을 달리고 있었다. 암릉을 타고 넘어가자 내가 서 있던 '서래봉'의 모습이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능선 굽이굽이 아름다운 라인에 물감을 풀어헤치니 조물주의 작업이야말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진품이다. 

굽이굽이 돌고 넘어 두 번째 봉우리 '불출봉'에 도달한다. 

기대하지 않고 오른 그곳에서 내려다본 아름다움은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봉우리와 색의 조화였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더 나아가지 못하고 물감을 다시 꺼낸다. 바위 봉우리 하나하나가 작년 '백암산'에서 보던 아름다운 모습과 닮아있다. 중국의 장가계 부럽지 않은 모습이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간단하게 느낌만 잡으면서 식사를 한다. 그 아련한 모습을 잠시 흉내 내어 그려보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하산하는 길로 움직인다. 


시간은 2시간 조금 안되게 남았지만 '내장사'에서 버스 있는 곳까지 꽤 긴 거리라는 이야기에 조금 서둘러 내려간다. 확실히 내려가는 길이 색의 혼합의 현장으로 내려간듯해 더 황홀하고 나른한 색들로 몸을 가볍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색 가운데 '비파나무'가 모습을 우람하게 푸르게 드러내고 있었고, 그 뒤로 붉고 노란색이 보색 대비를 이루어 밝고 경쾌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길을 따라 계곡 물길을 따라 황홀한 색 속에 풍덩 빠져 헤엄을 치지도 않아도 색의 조류에 이끌려 '내장사'에 도달한다. 그리 크지 않은 다소곳한 경내에는 많은 사람들이 여유롭게 거닐고 있었지만 한 시간여 남긴 상황에서 버스가 주차해 있는 제5주차장까지는 엄청난 거리이기에 셔틀을 타고, 다시 상가를 달려 두 번째 셔틀을 탄 다음 간신히 기다리는 버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색'의 바닷속에서 하루 종일 놀았기에 눈은 나른해지고, 마음은 꽉 들어찬다. 




201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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