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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Oct 30. 2017

포항 내연산, 그 깊은 곳에서 흐르는 48색 수채화물감

문수봉, 삼지봉, 은폭포, 관음폭포, 포항, 가을산, 여름 산, 단풍 

http://cafe.naver.com/hongikgaepo

 



겨울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무거우면서도 시큼하면서도 상쾌한 겨울 공기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아침 일찍 나서도 이제 어둑한 분위기다. 마침 이번 주가 '핼러윈데이'로 밤새 새벽까지 시끄럽다. 

이른 새벽부터 신사역 주변은 귀신 복장의 사람들과 등산복의 사람들로 코스프레하듯 재미있다. 

버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무거운 눈꺼풀을 떼니 안개가 장난 아니다. 

아침 안갯속에서 산골짜기를 굽이굽이 지나치다 '단양휴게소'에 머무른다. 

유치한 듯 꾸며놓은 정원과 모과가 정겹다. 

안개를 뚫고 밑으로 내려가 '영덕 강구항'를 지나 바다를 따라 내려간다. 

'장사해수욕장'을 지나 '화진해수욕장' 푸른 바다를 따라 가을이 짙게 물든 '보경사 주차장'에 이른다 




산에는 계절산이 있다.


'내장산' '백암산'이 가을산이고, '고려산'이 봄산이며 '태백산''함백산'이 겨울산인 것처럼 '내연산'은 여름 산이다. 하지만 뻔한 가을산도 좋지만 여름 산인 '내연산'을 여유롭게 걷고 싶어 가을의 한가운데서 걷기로 한다. 

한 사람의 한번 미소가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결정을 만드는 것처럼 '내연산의 미소'를 찾기 위해 가을 한낮 여름처럼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오른다. 

여기'12 폭포'에는 드라마 '대왕의 꿈'과 영화 '남부군' 촬영지였다니 그만큼 화면에 담을 것도 많다는 의미겠다. 오솔길 같은 길을 올라 떡갈나무잎이 바닥에 깔린 푹신한 길을 따라 전형적인 육산의 길을 따라가면 '문수암'이 나온다. 

'문수암'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측 산으로  오르는 길에 빨간 융탄자가 깔린 길을 걷다가 20여분 오르면 '문수봉'에 다다른다. 

거기서 땀을 말리며 집에서  준비해 온 과일을 먹으며 햇살을 즐긴다. 

햇빛은 색을 더 투명하게 만들어 평범한 색도 빛나는 색으로 만들어 준다. 

내가 누군가에게 햇빛이었던 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바람은 머리의 생각을 비워준다. 마치 파도소리와 같은 바람에 내 머리를 휴지통에 비워버리는 것 같다.





'바람소리'를 타고 '삼지봉' (711m) 정상에 오른다. 

해수면 가까이에서부터 오르기 시작해서 육산이지만 가파르게  올랐다. 조망이 없어 정상에 올랐다는데 의미를 두고 다시 왔던 길로 400미터 내려와 리본만 있고 이정표가 없는 '거무나리 길'로 내려간다. 

길이 비정규 길인지 어둡고 고요하고 비밀스럽다. 

계곡 길이 물이 말라 없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있다. 

그 맑은 물에 나뭇잎이 뱅글뱅글 돌며 노닌다.

 길이 잘 보이지 않아 오르는 길로는 별로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며 수채화 팔레트를 흩뿌려 놓은 듯 산 색깔이 은은하고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자칫하면 천박해 보일 수도 있었으나 떡갈나무의 고동색 갈색이 잘 받쳐 주어 색이 고급 져 보이는 것이다. 

계곡을 가로지르며 왔다 갔다 하기를 네다섯 차례, 물소리가 크게 들리며 계곡의 본류가 나타난다. 










본류를 건너 편한 나무계단이 나왔다. 이제부터 좋은 길인가 싶어 내려가니 다리가 나오고 '은폭포'가 나타난다. 

큰 알 같은 바위를 하나 끼고 물이 세차게 내리친다.

근래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어디서 그 수량이 나오는지 물이 끓임없다. 그 위로 48색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다운 색이 그득하다. 

단지 시간이 애매하여 스케치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15분 20분이라도 흔적을 남기고 싶어 급히 물감을 꺼내고 스케치북을 펼친다. 앞에 억새 무리를 필두로 물을 하얗게 남겨두고 주변의 바위의 위치를 잡는다. 바위가 하얀색이면 물이 부각이 안돼서 먹색을 옅게 채운다. 바위에 이끼들이 많아 푸르른 기운이 돈다. 

20여 분 만에 무언가 형체만 구분된 그림에 날짜를 쓰고 달려 나온다.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폭포들은 거의 눈도장만 찍는다. 

'연산폭포', '관음폭포', '무풍 폭포', '잠룡 폭포'를 보고 '보현사'를 지나쳐 내려온다. 

'무풍 폭포'는 절벽이 패어 있는 모습이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 같다. SF영화의 배경으로도 좋을 것 같다. 

'삼보 폭포' '보현 폭포' '상생폭포'는 보는 둥 마는 둥 왔다. 

제일 아름답고 큰 폭포는 위쪽에서 본 '관음폭포'인 것 같다.

그 웅장한 크고 긴 절벽에서 길게 내리친다. 

13킬로의 산행이 생각보다는 힘들었지만 또한 비경을 눈에 충분히 담지 못해 아쉬움도 있지만 저 멀리 포항의 깊숙한 곳 '내연산'의 존재를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알차고 보람차고 환상적인 날이었다.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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