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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피터 Mar 04. 2022

어쩌면 이 우주는 거대한 고래 일지 몰라

창조신화를 통해 알아보는 세계의 본질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문화권의 신화에는 세상의 시작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경전 중 창조 신화를 다루고 있는 <창세기> 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는 구절로 시작한다. 이 구절 중 '창조'라는 단어의 원어(히브리어) '바라בָּרָא'는 구분하고 자르다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직역하면 '태초에 신께서 하늘과 땅을 나누셨다'는 의미이다.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도 원래 하나로 합쳐져 있던 하늘과 땅을 신께서 구분하셨고, 물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만드셨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꾸란 21:30)


고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동일한 문화적 뿌리를 두고 있는 기독교/유대교/이슬람은 태초에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고 합쳐진 상태로 존재했고, 신께서 하늘과 땅을 구분하고 가르며 세상이 시작되었다는 유사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


중국과 우리 민족 등 동양 문화권의 창조 신화에도 동일하게 하늘과 땅이라는 소재가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제주도에 전해 내려오는 무속 음악이 있다. 큰 굿판의 도입부에서 부르는 초감제는 태초 이전에는 천지가 구분되지 않고 혼합되어 하늘과 땅의 구별이 없는 어두운 혼돈의 상태였음을 이야기하며 시작된다. 이러한 혼돈의 상태에서 어느 순간 하늘과 땅이 갈라지게 되면서 천지가 개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양의 옛 자연철학자들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시작과 그 본질을 [음양陰陽]으로 이야기한다. 음陰은 태양이 구름에 가려 어두워진 현상을, 양陽은 반대로 태양 빛이 밝게 온 땅을 비추고 있는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MBTI의 I의 내향하는 방향성과 유사한 [음陰]은 에너지가 모여서 물질화된 [몸]과 같은 [땅]을 상징하고, E의 외향성과 유사한 [양陽]은 반대로 에너지가 확산/산개되어 비물질화된 형태의 [마음]과 같은 [하늘]을 상징한다. 태초에는 이 음陰과 양陽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뭉쳐져 있는 태극太極, 혹은 무극無極의 상태였는데, 하나에서 음(땅)과 양(하늘) 둘로 갈라져 나오면서 이 세계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태극도설)


이처럼 동서양 문화권의 신화는 세상의 시작에 대해 매우 유사한 상상을 해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늘과 땅이 뒤섞여 뭉쳐져 있던 혼돈과 무극의 상태에서, 하늘과 땅, 음양陰陽 두 요소로 분화/분리되면서 세계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말이다.

<산해경山海經>과 <장자莊子의 내편內篇>에 등장하는 혼돈의 신 제강.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눈, 코, 귀, 입 등 얼굴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하나에서 둘로 나뉘게 되며 세상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암컷과 수컷이 만나 짝을 짓고 관계를 가져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된다는 매우 근접한 관찰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 익히 알고 있듯이 서로 다른 생식세포인 정자와 난자가 만나게 되면 수정이 일어난다. 정자 난자 각각의 핵이 합체되어 하나의 융합체를 형성하고, 이후 세포 분열을 반복하며 새로운 생명으로 성장/확장되어 간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생명의 시작과 관련한 이러한 현상도 사실 ‘하나가 둘이 되며 세상이 열렸다’는 창조신화처럼 상당히 비현실적이다. 둘이 하나가 된다니…


20세기에 들어선 이후 많은 과학자들은 약 138억만 년 전의 대폭발 이후 우주가 계속해서 팽창해 나가고 있다는 빅뱅우주론을 하나의 가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나의 점에서 시작된 폭발과 이후의 확산운동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태어났고, 그 밝은 빛들은 이 땅에 수없이 많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있다. 현대의 물리학은 이처럼 하나에서 파생된 우주의 모든 개별 물질들(태양처럼 거대한 별들과 그 주위의 행성들과, 지구의 수많은 생명들…)은 동시에 하나의 장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나에서 둘로, 그리고 다시 하나로…


세상과 생명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거대한 우주는 과연 어떠한 실체 일지 궁금해진다. 동양의 사람들은 인간존재를 거대한 우주의 본질과 그 작용을 축소해서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소우주’라고 여겨왔다. 둘이 하나가 되어 시작된 한 인간의 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세포들과 미생물들이 함께 주거하고 있는 공동-체임음 깨닫게 된다. [나]이기도 하고, 수많은 [너]이기도 한 소우주의 몸. 어쩌면 끝을 알 수 없는 이 우주도 생로병사하는 거대한 생명체 일지 모른다. 몸속 세포들처럼 그 속에 수많은 [너]를 담고 있고, 그 모든 것들이 또 하나의 [나]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생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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