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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Dec 26. 2019

꿈과 현실 사이에 직장이 있다

직장


취업이 이렇게 힘든 거였어?

경력단절녀 이예은(당시 31세)


천운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지만, 20대에는 구직만큼 쉬운 일이 없었다. 대입운이나 연애운을 몽땅 취업운에 썼는지, 서울에서 통번역 대학원을 준비하며 지원한 영한 번역 계약직에도, 입시를 포기하고 넣은 대기업 공채에도 단번에 합격했다. 퇴사 후 떠나온 도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르바이트 면접에서조차 탈락한 적이 없었고, 취업 역시 에이전시가 소개해 준 첫 번째 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쉬운 성공은 때론 독이 되는 법. 나는 고마운 줄 모르고 매번 쉽게 사표를 냈다. 단조롭고 소모적인 직장생활보다 나를 가슴 뛰게 할 새로운 길이 있으리라 믿었다. 스물일곱, 3년을 버틴 대기업을 그만두고 유학길에 올랐을 때는 박사 과정까지 밟을 줄 알았고(석사 논문을 쓰면서 이 꿈은 접었다), 스물아홉에 첫 책을 내고 나서는 프리랜서 작가 겸 번역가에 도전했다. 인세는 처참한 수준이었고, 그나마 글쓰기보다는 번역이 돈이 됐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뛰어난 영한, 일한 번역가로 넘쳐났고, 직장인 시절 월급의 반의 반도 벌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상황이었다면 무모한 도전을 이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어영부영 서른이 된 내게는 지탱해야 할 결혼 생활과 갚아야 할 대출, 그리고 대비해야 할 노후가 있었다.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나는 그제야 구인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취업 시장이 여전히 내게 호의적 이리란 순진한 믿음을 품은 채.


사실 책을 쓰기 위한 취재비와 최소한의 생활비, 그리고 약간의 저축을 충당할 수 있다면 아르바이트와 파견, 계약직, 정직원 중 무엇이라도 좋았다. 다만 지금껏 쌓아온 외국어 능력과 관광 업계에서의 홍보 경력, 그리고 출판 이력은 조금이라도 살리고 싶었다.


처음 지원한 곳은 한 외국계 회사의 계약직 번역 사원 자리였는데, 서류 통과조차 안됐을 때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렇다 할 기술 없이 퇴사를 반복한 무직자를 두 팔 벌려 환영할 회사가 어디 있으랴. 30대 기혼 여성임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후 겨우 면접 기회를 잡은 행정 기관의 외국인 지원 업무는 중국어를 못해서 탈락. 최종 면접까지 갔던 여행사는 근무지가 상하이라서 포기(왜 구인 공고에는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던 걸까).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던 인재파견회사의 외국인 후보자 관리 업무는 면접 후 감감무소식. 영한 카피라이터를 구한다던 마케팅 회사는 면접 전날 취소 통보. 그렇게 때로는 당혹스럽고, 꾸준히 피 말리는 취준 기간이 몇 달간 이어지자 나는 마음을 비우기에 이르렀다.


"구직에 쏟는 시간과 노력으로 차라리 번역 회사에서 일감을 더 받는 게 낫지 않을까?"


정 수입이 늘어나지 않으면, 집 근처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각오로 구인 사이트에 등록한 정보를 삭제했다. 남편에게도 취업 포기를 선언했다. 그리고 불과 며칠 후, '프리랜서 번역가'로 프로필을 변경하러 들어간 링키드인에서 어느 인사담당자의 인터뷰 제안을 발견했다.


몇 년 전이었다면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을 고객 센터 업무였지만, 살펴볼수록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연봉은 내심 포기하고 있었던 전 직장 수준보다 약간 높았고, 야간이나 초과 근무가 없는 데다 고용 형태도 정규직이었으니. 총 3단계로 나뉜 면접과 테스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만난 회사 사람들과도 어쩐지 죽이 잘 맞는 느낌이었다. 최종 면접을 보고 '이런 분위기라면, 오래 버틸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 합격 통보를 받고 입사를 확정 지었다.


'업무가 힘들어 금세 그만두고 싶어 지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도 있지만, 냉랭한 현실을 경험했기에 쉽사리 뛰쳐나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보다 '주 5일 출근하면서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크지만, 그렇게 되면 삶의 방향성이 무너지는 셈이니 스스로 경각심을 갖는 수밖에 없다.


과거의 나는 그 자체로 '꿈'인 직장을 찾아 헤맸다. 연구소든, 대기업이든, 개인 작업실이든, 매일 살아 있는 기분을 들게 하고, 가슴 벅찬 보람을 선사하는 데다 경제적 안정까지 보장하는 일터가 나타나리라 믿었다. 자격증을 더 따고 나면, 언어를 하나 더 구사하게 되면, 혹은 공부를 더 하고 나면 말이다. 그래서 여러 번 진로 계획을 수정했고, 어느 한 곳에서 진득하게 버티지 못했다.


지금은 직장을 꿈을 지탱하는 '수단'으로 본다. 말 그대로 '꿈의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내 꿈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온전한 정신으로 글을 쓰고, 끊임없이 배우며, 가능한 자주 여행하는 삶이다. 경제적으로는 나와 남편, 그리고 양가 부모님의 노후까지 책임지고 싶고, 나아가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 수 있기를 바란다. 단기적으로는 10년 안에 집과 차를 마련하고,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받는 게 목표다. 직장이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혀줄 가장 듬직한 방법임을 부정할 수 없다.


20대에 여러 우물을 판 덕에 깨달은 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잘 맞는 조직을 만나는 일 못지않게 주어진 자리에서 꾸준히 노력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무엇이든 후회 없이 도전했기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도 없다. 그러니 나의 30대는 직장인으로서도 작가 지망생으로서도 끈기를 발휘해 볼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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