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예은 Nov 25. 2019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고 있나요?

가치관


세상은 자기가 바라보고 싶은 대로 당신을 바라본다. 숫자로 보고 싶으면 숫자로. 돈으로 보고 싶으면 돈으로. 세상이 자기 맘대로 당신을 바라보는 것에 맞추며 산 그 인생은 당신의 인생일까?

선정성 웹툰 <독신으로 살겠다> 중에서


‘어른 말씀 들어 나쁠 것 없다’라는 다소 고리타분한 말의 의미를, 서른을 넘어보니 알 것 같다. 나 역시 보다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살면서 하길 잘했다 싶은 일, 그리고 해보지 못해 아쉬웠던 일을 슬그머니 추천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바로 내게 좋았던 것이 그들에게도 좋으리라는, 동시에 내게 나빴던 것이 그들에게도 나쁘리라는 착각이다.


‘평범한 게 제일’이라는 말도 그렇다. 사실 보편성만큼이나 상대적인 가치는 없다. 정하는 범위에 따라 중간 값은 늘 휘둘리기 마련이므로.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가정환경과 주위 사람들을 보고 그 속에서 ‘평범함’을 찾아내 답습한다.


내가 태어난 환경에서 평범함 삶이란, ‘인 서울’ 또는 비슷한 수준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으로서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인생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삶을 추구한다고 믿었던 나는 기꺼이 그 경주에 뛰어들었다. 10대에는 완벽한 성적, 20대에는 안정적인 직장에 집착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보통의 기준'을 충족해 나갔다. 서른 살에 백수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돌이켜 보면, 무언가 잘못됐다는 신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생 시절에 저항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우울감과 무기력함에 짓눌려 학업을 놓기도 하고, 유흥으로 도망쳐 보기도 했다. 어렵사리 졸업장을 받은 후에는 대학원이나 일반 기업이 아닌, 빈곤층을 돕는 한 NGO에 월 120만 원을 받는 파견사원으로 입사했다. 최초의 반항이었다. 매일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왕복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했지만, 근무 시간 외 행사에도 자진해서 참여할 정도로 일이 즐거웠다. 그러나 주변 사람은 물론 가족조차 그곳을 '제대로 된 직장'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듬해,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소위 '재벌 기업'의 신입 공채에 합격하며 이상적인 삶의 궤도로 돌아왔다. 그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셨던 부모님께서는 이내 다음 단계인 '결혼'과 '출산'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기 시작하셨다. 믿었던 딸이 직장 생활을 3년도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낼 줄은 상상조차 못 하셨으리라.


출근이 죽기보다 싫었기에 살려면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나 역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도망치듯 떠나온 도쿄에서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가면서도, '낙오자'라는 패배감이 마음 한 구석을 괴롭혔다. 한 때 같은 위치에 있었던 누군가가 ‘이번에 박사 졸업했다더라,’ ‘승진했다더라’하는 소식을 들으면,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듯 속이 울렁거렸다. 마치 '너는 왜 그렇게 되지 못했냐'라는 비난 같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러다 1년을 대책 없이 쉬며 알게 되었다. 그 열등감의 원인을. 나는 스스로 정립한 가치관이 아니라 내가 속한 좁은 사회로부터 강요된 삶의 공식을 따르고 있었으며, 주변 사람들마저 그 기준에 따라 저울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답이라고 믿었던 돈이나 학벌, 사회적 지위는 분명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었지만,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수단과 목적을 착각한 셈이었다. 억울한 마음에 원망해 봐도 책임져줄 사람은 없었다. 어떤 가치를 좇아야 내면까지 풍요로울 수 있을지 알아내는 일은 결국 스스로의 몫이었다.  


뒤늦게 발견한 내 행복의 원천은 글이었다. 내게 글 쓰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색과 발견을 문장으로 전환해, 세상에 말을 거는 일이다. 지구 상 어딘가에 살고 있을 나와 조금씩 닮은 이들을, 문장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찾아내곤 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내 하찮은 목소리에 기꺼이 공명해주었다. 지금까지 해본 일 중에 가장 황홀하고, 중독적인 작업. 그러나 동시에 가장 배고픈 생업이기도 했다.


작가로서의 자질도 연마하고, 배우자와 안락한 가정도 꾸리고 싶었던 나는 한 기업의 고객 센터에 재취업 했다. 근무 시간 외에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요량으로. 나로서는 고용 조건도 업무 내용도 만족스럽지만, '고객 센터'라는 단어에 떨떠름해지는 주변 반응은 어쩔 수 없었다. 예전의 나라도 틀림없이 그랬겠지. 다행히 지금은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내 선택을 믿는다.


현대 사회에는 분명 획일화된 행복의 잣대가 있다. 문제는 각자 타고난 재능과 환경이 다르기에 단편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면 삶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개개인은 모두 다른 유전자와 경험, 관계, 생각 등이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된 고유한 존재이며, 따라서 70억 인구가 있다면 행복의 모습도  70억개여야 한다. 소속된 집단에서 요구하는 가치관을 모방하기보다, 주변에서 알아주지 않더라도 독립된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더 사람답다고 나는 믿는다. 나아가 자신의 인생이 특별하고 소중한 만큼 타인의 개별성도 존중한다면, 누군가를 부러워할 필요도 무시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이전 02화 서른 살에 찾아온 1년의 공백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