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Whatever you are, be a good one.
(무엇을 하든 잘하는 사람이 돼라)
아브라함 링컨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던 시절, 비행기 안에서 입국 신고서를 받을 때마다 ‘직업’이라는 칸 앞에서 손을 머뭇거리곤 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회사원'인데, 엄밀히 따지면 이는 직업이라기보단 근무 형태에 가깝지 않은가. 당시 커뮤니케이션팀에 소속되어 언론 대응과 SNS를 담당하고 있었으니, ‘마케터’라고 쓸까도 싶었지만, 그건 또 너무 거창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순환 근무라 1년 뒤 어느 부서에 배치될지 모르는 일. 특별한 기술 없이 대졸 신입 공채에 선발된 나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는 결국 '책상에 앉아 일하는 사람', 혹은 '사무직 직원' 정도였다. 그러니까 그때의 내게 '직장'은 있었지만, 뚜렷한 '직업'은 없는 셈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을 일괄적으로 뽑아 여러 부서에 배치하는 공개 채용 제도는 애초에 업무를 보고 지원할 수 없는 방식이다. 대신 지원자는 기업명이나 업계를 본다. 합격하는 순간 조직의 일원이 될 자격을 부여받으며, 직무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회사의 희망 사항은 언제 어떤 일을 맡겨도 군말 없이 해낼 충직한 제네럴리스트(generalist).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은 '어디서 일하냐'보다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이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남부러울 것 없는 대기업에 다니면서도 가끔 길 잃은 느낌이 들었던 건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아무리 반복적인 업무라도 한 분야에 집중하는 편을 선호한다. 특히 나만의 작업물이 완성되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 굳이 분류하자면,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에 어울리는 성향을 가졌다. 회사의 지향점과는 정 반대인. 나아가 재벌의 경영 비리와 부적절한 인사 발령, 직장 내 괴롭힘 등을 목격하며 애사심이 식은 지도 오래였다. 더 버텨봤자 원하는 삶에서 멀어질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4년 차에 담담히 사표를 냈다.
퇴사 후에는 대학원과 스타트업을 거쳐 잠시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한 권의 책을 내고, 잡다한 번역을 도맡았다. 수입은 최저생계비에 겨우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스스로를 소개할 때 당당히 ‘작가’라고 밝혔다.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의뢰받은 일에 프로의식을 갖고 임하기 위해서였다. 돌이켜보면 '직업'은 있으나 '직장'이 없는, 달리 말하면 성취감은 있으나 고정 수입이 없는 상태였다.
생계 걱정 없이 글을 쓰기 위해 재취직한 지금, 내게는 두 개의 직업이 생겼다. 한 회사의 고객 관리를 담당하는 상담원이라는 직업과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작가라는 직업. 상담 업무는 생계 수단에 가깝고, 글쓰기는 존재 이유로 귀결된다. 언젠가 글로만 밥벌이를 하고 싶지만, 지금은 어느 한쪽이 없다면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양쪽 다 나의 필요에 의해 선택한 소중한 직업이므로, 하루 8시간은 상담원으로서, 나머지 시간은 작가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세속적인 잣대를 들이댔을 때, 지금 내가 가진 두 직업은 대기업 사원에 비해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업 만족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고객 상담이든 글 쓰기든, 업무 내용이 제한되어 있어 집중하기가 수월하고,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답을 확실히 알고 있어서다.
20대의 나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취업에 성공했지만, 무수한 가능성 사이에서 나만의 직업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방황했다. 그러니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커리어는 지금부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