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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Dec 03. 2019

스물아홉에 결혼해보니

결혼


결혼은 동화책처럼 "그들은 그 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도 아니고 결혼 전 일상처럼 좋았다가 좋지 않았다가를 반복하는 지극히 '인간적인'삶이다.

임경선 에세이 <태도에 관하여> 중에서


스물아홉의 가을, 나는 대구 외곽에 자리한 작은 아트홀에서 웨딩 마치를 울렸다.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연애에서 결혼까지, 모든 일이 일사천리였다. 얼굴도 모르는 블로그 이웃의 제안으로 나간 소개팅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다음 날 연애가 시작됐고, 1년 만에 혼인 신고를 했다. 가족의 반대나 사돈 간의 신경전도 없었다. 예물 예단은 생략. 신혼집은 각자의 자취 살림을 합쳐 해결. 예식은 소박하지만 우리답게. 유난히 달뜨고, 부산스러웠던 그와의 첫 사계절을 그렇게 보내고,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어느덧 '신혼'이라는 말이 어색한 3년 차에 접어들고 나니, 미혼일 때의 내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삶이 달라졌다. 서로에게 물들었기 때문이다. 스물아홉, 서른 해 동안 그려온 인생의 풍경은 결혼을 통해 하나로 합쳐졌다. 각자의 현재뿐 아니라 자라온 환경과 미래의 비전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림이 됐다. 혼자 꾸려내는 삶의 버거움이 반으로 줄었고, 함께 누리는 행복은 배로 커졌다. 그 변화가 좋으냐고 묻는다면, 진작 할 걸 그랬다 싶을 정도로 좋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도 추천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느끼는 결혼의 장점이 남에게도 좋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개인적으로 꼽는 첫 번째 장점은 안정감이다. 연애란 게 참 그렇지 않은가. 사랑할 때는 마치 우주에 둘 뿐인 듯한 황홀경에 휩싸여 자신의 모든 걸 내어주게 되지만, 마음이 식으면 금세 돌아서는 관계. 오로지 감정만으로 유지되는 연인 관계는 그래서 가장 순수하고, 동시에 위태롭다. 그러나 법적인 부부가 되는 순간 관계를 지탱하는 끈이 한 겹 늘어난다. 마음이 변했다고 해서 멋대로 잠수를 타거나 이별을 통보할 수 없다. 물론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결혼은 불완전한 사회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는 최대한의 약속이 아닐까. 어차피 인간의 삶 자체가 유한하기에 불멸의 사랑은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결혼을 통해 기꺼이 상대에게 구속되겠다는,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쉽게 이별을 떠올리지 않겠다는 믿음을 줄 수는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 인정과 그에 따른 혜택이다. 만약 남편과 내가 부모님의 축복이나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자유분방한 사람들이었다면, 동거에 만족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혼전동거를 용납하실 부모님이 아니었고, 우리 역시 결혼을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혼인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더 많았다. 당시 우리는 도쿄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결혼을 하면  한 사람이 일을 쉬게 돼도 배우자 자격으로 체류할 수 있었으며, 주택 수당도 받을 수 있었다.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서 서로가 법적 보호자로 나설 수 있다는 사실도 외국인 입장에서는 퍽 든든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없을 듯한 세 번째 장점은 '시댁'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가족과의 만남이다. 결혼이 연애와 다른   하나는 상대방뿐 아니라 친족까지 끌어안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일대일(1:1) 나닌 다대다(N:N) 결합. 많은 사람에게는 이 부분이 상당한 걸림돌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시부모님을 만나게 해 준 남편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느낀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끼리의 추억이 별로 없었던 나는 자녀와의 시간이 우선순위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기분이 늘 궁금했다.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본가와는 또 다른 포근함을 주시기에, 혼자 댁에 놀러 가 2박 3일을 뒹굴거리다 올 정도다. 세상에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둘이나 더 생겼다는 든든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득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느낀 결혼의 좋은 점은 개인의 상황이나 가치관에 따라서는 무의미할 수 있다. 단점도 결코 없지만은 않다. 기혼자가 된 후 바뀐 생활이 마음에 들지만, 여전히 맞춰가야 할 부분이 산더미고 개인의 자유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니.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 사람과의 결혼 생활이 정 궁금하다면, 과감히 발을 들여놓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차피 미련이 남지 않는 선택은 드물고, 결정하기 전의 고민보다는 그 후의 노력이 더욱 중요한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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