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그 삶이 어떤 모습이든, 부부 두 사람이 열심히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이수희 에세이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중에서
성인이 된 후로 툭하면 ‘이제 시집가야지’ 혹은 ‘시집가도 되겠네’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멘트가 바뀌었다. '아이 낳아야지'로. 친척이 모인 자리에서는 저출산 문제가, 교회에서는 특정한 성경 구절이 화두가 된다. 그러나 나의 부족한 애국심, 혹은 신앙심 탓인지 그 말에 좀처럼 수긍이 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저출산이 문제라지만 범지구적으로는 인구 폭발 탓에 자원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하니, 과연 무엇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이기 이전에 지구의 탑승객인지, 아니면 지구촌 시민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인지 하는 원론적인 고민도 괜스레 해보게 된다.
또 국력을 위해서는 일을 해서 세금을 내는 생산가능 인구가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어쩐지 있는 인력도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 같다. 청년 실업률은 10%에 달하고, 어떤 이는 국내 취업을 포기한 채 다른 나라의 성실한 세금원이 되기도 한다(내가 그렇다). 게다가 지차제에서 인구수를 1명이라도 늘려 보려고 경매처럼 출산 장려금 경쟁을 벌이는 마당에, 영아 유기로 허무하게 스러지는 생명은 한 해 100명에 이른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었다는 152조 8000억으로 정말 이들을 살리고, 보살필 순 없었을까.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름 30년 동안 교회에 출석한 내 해석에 따르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은 덮어 놓고 아이를 낳으라는 뜻이 아니다. 기독교인 수를 늘리라는 것인데, 여기에는 선교와 봉사, 제자 양육 등도 포함된다. 정말 출산이 인류에게 주어진 최대의 미션이라면, 불임은 신의 저주라도 된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런 갑론을박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국가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임신을 결심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해서라고도 하지 말자. 태어나기 전 내게 우리나라의 성범죄율과 자살률, 청년실업률, 남녀 소득 격차 등의 지표를 미리 보여주었다면, '삼신할머니, 없던 일로 하죠'라며 뒷걸음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는 수정과 착상이 되면 그때부터 본능적으로 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지식이 있고, 자발적으로 성관계를 맺는 성인은 피임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결국 본인들이 낳고 싶어서, 혹은 낳아도 괜찮다는 생각에 낳는 게 아닐까. 물론, 성공률 99%라는 정관 수술이나 피임약 복용, 임플라논, 루프 등을 하고도 임신이 됐다면 그건 삼신할머니 탓으로 돌려야겠지만.
그러면, 정부에서 눈독 들이는 기혼, 비출산, 가임 부부인 나와 남편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낳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 않아서다. 비출산을 여성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에 항변하고자 덧붙이자면, 우리 부부의 경우 남편이 딩크, 나는 반반이다. 남편과 나의 의견을 종합해 아이를 갖고 싶은 이유와 갖고 싶지 않은 이유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아이를 갖고 싶은 이유:
1. 세상에 사랑할 대상이 늘어남으로써, 삶의 의미가 더욱 커진다(그 대신 나를 돌볼 수 없어지겠지).
2. 유경험자가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경험해보고 싶다(하지만, <엄마 됨을 후회함>과 같은 책을 읽으면 다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3. 남편과 나를 닮은 아이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삶을 살지 궁금하다(그런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을 살면 어떡하지?).
4. 양가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혹은 실망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어차피 해외에 사니 손주 얼굴은 거의 페이스타임으로 보시겠지만).
5. 새로운 글쓰기의 소개가 된다(정작 글을 쓸 시간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반면,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은 거의 유일한 이유는 물리적 한계다. 임신이 남기는 다양한 후유증(튼살, 착색, 붓기, 기미, 탈모 등)이나 출산의 고통, 수유 기간의 잠고문도 두렵지만, 한시적인 고통은 어떻게든 아물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양가 어느쪽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육아에 수반되는 시간은 어쩔 텐가.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이를 시설에 온종일 맡겨 두고 출근한다고 쳐도, 비상상황이 생겼을 때 부모 중 누구도 달려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경제적 여력이 된다면, 몇 년간 일을 쉬며 육아에 전념하거나 믿을 만한 가사 도우미를 고용해 시간을 살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내 집 마련, 노후 자금과 같은 경제계획도 틀어지게 되고, 아이의 양육에도 충분히 투자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결정적으로 아이를 갖고 싶은 이유 중 그 어떤 것도 이런 부담을 감수할 정도로 심금을 울리지 않는다. 이렇게 장단점을 나누어 따지는 것 자체가 우리 부부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아이를 갖기 전 응당 오랜 고민과 갈등의 시간을 거쳐야 하지 않겠냐고.
'왜 대학 안가?', '왜 결혼 안 해?', '왜 빨리 아이 안 낳아?'와 같은 질문이 거북스러운 이유는, 마치 '정답이 1번인데 왜 고민해?'라는 식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 사람 삶에서 정답은 3번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배재한 채 말이다.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딩크로 살든 아이를 갖든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심사숙고 한 뒤 가장 적절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자녀의 유무와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