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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by 이름을 찾는 사람 Mar 09. 2025

과거의 한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냐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물음을 모두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난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과거로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의 순간들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그래서 더욱 불안하고 무섭고 괴로웠지만, 항상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미래에 대한 막연한 한 줄기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지나온 시간 중 아쉽거나 그리운 순간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나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큼은 정말로 사양하고 싶다.


학창 시절에 한 친구가 퍼뜨린 나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이 퍼져서 전교생이 나를 향해 수군거릴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거액의 빚을 지게 되고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수능을 망치고 원하는 대학 입시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재수를 해서 어렵사리 유학을 갔지만 사회에서 바라보는 우리 학교 유학생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부정적이란 것에 충격을 받았을 때,

빚에 좇기던 아버지가 회사 공금에까지 손을 대어 경찰과 검찰에 좇기는 신세가 되었을 때,

선처를 구하기 위해 나라도 무릎이라도 꿇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홀로 아버지를 고소한 이를 찾아갔을 때,

한참 동안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아버지의 자살 결심이 담긴 유서를 채권자를 통해 전달받았을 때,

궁지에 몰린 아버지를 돕기 위해 내 명의로 거액의 사채 빚을 지게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내가 빌려드렸던 돈 마저 다 날리고 아직 사회초년생이었던 내가 앞으로 터무니 없이 높은 사채 빚을 갚아야 한다는 현실과 직면해야 했을 때,

내 평생 가장 사랑하고 애틋했던 동생들조차 높은 이자의 사채 앞에서 나와 선을 긋고 등을 돌릴 때,

부모님이 별거를 시작하고 아버지가 거주지조차 불명인 상태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계신 것을 지켜볼 때,

마음은 아프지만 이미 사채 상환을 위해 많은 금전 부담을 지고 있는 나로선 더 이상 아버지께 도움을 드릴 수 없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을 때,

그리고 아버지가 끝내 스스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끔 다시 돌이켜 봐도, 어떻게 그 모든 순간들을 지나왔고 버텨내었는지 아찔해지곤 한다. 나는 비교적 담담하게 멘탈을 붙잡으려고 애썼고, 내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 이를 테면 자기계발/학업/커리어 방면에서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지를 찾기 위해 온 세상과 전투하듯 치열하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나는 때론 울었고, 내게 이 모든 시련을 안겨준 세상과 부모님을 원망했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했고, 흡연을 시작했고, 자주 필름이 끊길 때까지 과음을 했으며, 밤늦도록 잘 잠들지 못했고, 외로움과 불안감에 몸서리치면서 안식처가 되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었지만 변치 않는 참된 사랑을 구하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그 시절 내가 했던 모든 반응과 대처가 객관적인 기준에서 늘 최고의 결과를 가져온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했던 것 이상으로 더 잘할 자신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이런 걸 두고 최선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근데 이게 최선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 최선이겠는가. 그래서 이제껏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 하며 살아왔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가장 큰 자부심이었다. 위와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항상 자신감 있고 당당해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다. 에너지 넘치고, 열정적으로 열심히 산다, 능력 있다는 평가도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 순간 후회를 남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일종의 습관이자 강박이 되어, 나를 항상 종종걸음 치도록 채찍질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꼭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큰 일 안 생겨.” 나를 보고 있으면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진다고. 자기도 그렇게 스스로 옥죄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서 그런지 그런 모습이 더욱 눈에 밟힌다며. 그런 말을 들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과 싸우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무장을 해제하고, 좀 더 힘을 빼고 릴렉스 된 태도로 평화롭게 흘러가도 괜찮은 걸까. 지금이라도 그랬다가 와르르- 나 자신이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리진 않을까. 그런 막연한 불안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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