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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Oct 16. 2024

만우절때하는 이혼놀이

부모님의 이혼에 대하여(3)

때는 고등학교 3학년 한참 감수성이 널뛰기를 하는 시기.


우리 집은 겉으로 볼 땐 나름 이상적인 가정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며 온화한 성품의 아버지.

가정에 착실하신 예쁜 어머니.

말 잘 듣고 예의 바른, 모범이 되는 듬직한 첫째. (라고 생각해 본다)


그중에 옥에 티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취급을 받는 둘째를 빼면 말이다. 학교를 나가지 않는 건 일상이었고 친구들과의 다툼, 선생님과의 충돌, 경찰서방문 등등( 지금 생각해 보면 동생의 진심을 읽어주지 못한 게 참 슬프다 ) 아버지에게 이런 상황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항상 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었는데


"가족은 자동차 같은 거야. 바퀴가 개라서 각각의 바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자동차는 앞으로  절대 나갈 수 없어. 차가 망가지는 거야."


우린 아버지가 선두로 지휘하는 자동차의 바퀴가 되어 각을 맞춰서 달렸다. 각자의 속도를 원하는 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치명적이고 해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동생은 아빠와 항상 불꽃이 튀었다.

중간에 끼인 엄마와 나는 항상 '불안'했다.


움직일 때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침대.

클래식 무대 속 난데없는 꾕가리 소리.

우리 가족을 떠올리면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그렇게 사는 것에 익숙해질 때즈음.


10월의 어느 날 만우절이 다가왔다.

진지했지만 나름 장난기가 있었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을 골탕 먹이기 위해 나름의 시나리오를 짜고 키득거리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내가 맡은 부분은 나름 성격이 당찼던 나는 대표로 선생님이 들어오심과 동시에 책상 위에 올라가서 소리를 우렁차게 지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선생님이 너무 빨리 교실문을 열어버리셨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속으로 하나, 둘, 셋  숫자를 외친 뒤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 찰나 선생님은 교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셨고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아.. 잠깐 나와볼래?"


나는 만우절이라서 선생님을 골탕 먹이려다가 내가 역으로 당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만큼 너무나도 창백해서 나도 모르게 조용히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안절부절못하시면서 뜸을 들이셨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시며  갑자기 부모님의 관계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요즘 부모님 사이는 어떠시니?"


아니 만우절 날 선생님이 나를 골탕 먹이시려고 한다고 하는 거 치고는 약간 선 넘는 거 아닌가? 이게 무슨 상황이지.라고 혼자 생각하면서도 ".. 나름 별일 없는데요."라고 답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계속 답답하게 말을 아끼셨다. 나를 교무실 한쪽으로 데려가시고는. 림막을 치고 낮게 속삭이듯 물어보셨다.


"○○이 부모님이 음.. 이걸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부모님이 이혼을 하신다네. 그래서 네가 지금 가정 법원 앞으로 가야 할 것 같아. 아버지가 그리로 오라고 하시더라."


와.. 이건.

차라리 만우절 장난이었으면.

차라리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고, 이 상황이 모두 깨어나면 잊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였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헛웃음이 났다.


근데 선생님의 눈은 너무 확고했고 원래 칙칙했던 입술은 한층 더 칙칙해 보이면서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오히려 나보다 긴장을 많이 하신 거 같았다.


더 이상의 의심은 할 수 없었다.

"아,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마음속의 뭔가가 탁-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학교를 조퇴하고 부랴부랴 가정법원 앞으로 달려갔다.


고3 자식을 둔 부모님의 반응은 두 부류로 나뉜다.

어떤 부모님들은 고3한참 예민하고 정말 중요한 시기라며 집중 관리를 하며 애지중지하거나, 어떤 부모님은 고3이 유세냐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부모님들도 있다.


우리 부모님이 전자가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법원 앞에 도착했고 앞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 모여 있었다. 동생까지.


법원 앞에서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길래

들어가자라고 내가 먼저 말했다.
"빨리 끝내자. 빨리 끝내고 집에 가자."라고.


엄마는 울먹이셨고.

동생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아버지의 말.

 말들이 기억난다.


거기서 우리 아버지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이런 말을 했다. "이건 사실 너희들이 그동안 너무 말을 안 들어서 경고하려고 하는 행동이었다. 너희가 계속 싸우고 엄마, 아빠 말을 안 들어서 이렇게 여기까지 온 거다. "라고.


내생에 최악의 만우절이었다.

난 이 이후로 만우절이 괜히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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