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면옥〉 무엇을 먹느냐보다는 누구와 먹느냐의 관하여.
추운 겨울, 친구가 한 통의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 압구정에서 평양냉면 먹을까?- 겨울은 응당 추워야 겨울이지만 그렇다고 뼈까지 시린 것은 또 너무 싫다. 이런 강추위에 냉면이라니. 문자만 봤는데도 팔뚝부터 닭살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바로 답하지 못하고 잠깐 멈칫했지만, 냉면을 누군가와 함께 먹는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기에 이내 -콜- 이라고 대답했다. 히터의 열기로 가득한 사무실에서도 발과 손끝은 늘 차가운 수족냉증을 앓고 있는데 차가운 냉면 먹을 생각을 했다니 대단하다.
난 회현역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고, 친구의 직장은 강남역에 있었다. 차가운 손과 발을 모른 체하며 칼같이 퇴근했다. 남산을 지나 한강을 건너 압구정에 도착했다. 친구가 도착할 시간을 보아하니 어디 들어가 있기엔 애매해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너머의 한강 바람이 7차선 도로를 지나 버스정류장까지 들이닥쳤다. 추위를 이길 능력도 없거니와 이기고 싶지도 않았다. 여기까지 온 것이 아쉽지만 냉면은 다음으로 미루고 따뜻한 음식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냉면 하나 바라보고 압구정까지 왔는데 생뚱맞게 따뜻한 걸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래도 꽁꽁 얼어붙은 몸이 도저히 냉면을 (맛있게) 받아들일 수 없을 거 같았다. 혼자 오들오들 떨면서 갈팡질팡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친구가 도착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국물이 생각났는데 친구를 보자마자 '아니다. 냉면 먹어야겠다.'라고 결정했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친구 2명 중 한 명이었던 친구가 평양냉면을 함께 먹자고 했는데 그걸 마다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미 얼어붙어 움직임이 둔해진 다리를 끌고 매서운 바람을 가로질러 <강서면옥>에 도착했다. <강서면옥>의 넓은 홀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누가 생각해도 추웠던 날, 누가 봐도 퍼렇게 질린 얼굴로 냉면집을 들어온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실제로도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얼어붙은 우리를 <강서면옥>의 노란 조명이 감싸줬고 친구는 물냉면, 나는 비빔냉면을 시켰다. 지금은 비냉을 시키는 일이 극히 드물지만 아니 없지만, 저 때까지만 해도 물냉과 비냉의 비율이 7:3은 됐다. 아무튼 친구보다 더 얼어붙어 있던 터라 도저히 물냉면을 먹을 용기까지는 생기지 않아 비빔냉면을 시켰다. 점퍼도 벗지 않고 손을 비벼가며 추위를 녹이고 있으니 냉면이 나왔다. 친구는 먼저 육수를 한입 마시더니 나에게도 권했다. "육수 한번 맛볼래?"
그릇째 들고 마시는 편이지만 친구의 냉면을 그릇째 들고 마시기엔 염치가 없으니 가지런히 놓여있던 숟가락을 들고 예의 있게 한입 맛을 봤다. '와우, 너무 맛있잖아.' 방금까지 염치 찾던 나였는데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이 깔끔하고 청량한 육수 때문에 친구의 냉면 그릇을 내 쪽으로 옮겨왔다. 나의 비빔냉면도 친구 쪽으로 조금 옮겼으나 솔직한 마음으로는 아예 바꾸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깔끔한 육수를 먹어댔다. 맛있다며, 깔끔하다며, 겨울에 먹는 <강서면옥> 육수가 청량하기까지 하다면서 먹을 때마다 한 마디씩 덧붙였다. 면은 어떻고. 겨울 메밀에 관해서 더 언급하기가 낯부끄러울 지경이다. 겨울의 메밀은 향이 진할대로 진해져 평양냉면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또한 묵처럼 풀어지지 않고 결속력 있게 응집되어 있다. 결속력 있는 면을 한 움큼 넣고 씹으면 *알단테처럼 약간 오독오독한 느낌까지 든다. 오독한 면을 씹어 넘기고 육수를 꿀꺽하고 삼키면 청량감이 가슴을 타고 내려간다.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맛이었다.
한겨울에 먹는 평양냉면의 맛을 알아버린 이후로 추워지기만 하면 <강서면옥>의 물냉면이 생각난다 (더워지기 시작하면 <평래옥>의 초계탕이 생각나듯). 몹시 추운 겨울, 손발이 꽝꽝 얼고 바람이 쌩쌩 불어올 때면 <강서면옥>의 육수 맛이 목구멍 저 끝에서부터 올라온다. <강서면옥>에 갈 시간이 됐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시원하고 깔끔하기 그지없는 겨울의 차가운 맛. 그리고 신호가 올 때마다 -잊을 수 없는 <강서면옥>의 추운 맛-이라고 친구에게 연락한다. 이젠 그날 이후 1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지금도 겨울이 되면 서로에게 그날의 평양냉면을 놓고 이야기한다. 똑같은 이야기를 몇 년째 반복하지만 할 때마다 웃음 짓고 할 때마다 추워한다. 아마 따뜻한 음식을 먹었어도 우리는 똑같이 그날의 추위와 음식에 관해 웃으며 이야기했을 거 같다. 혼자가 아닌 함께할 때 느낄 수 있는 맛이 있다. 나만의 기억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기억한다는 사실이 고맙다. 혼자서도 맛있던 순간을 떠올리며 시간을 추억하는 것이 취미지만, 무엇을 먹었다는 기억보다 누군가와 함께한 기억이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
썽에게.
우리는 지금도 <강서면옥>을 이야기하고 있지. 어김없이 불어오는 겨울의 찬바람을 당해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썽이랑 <강서면옥>에서 다시 평양냉면을 먹고 싶다고. 나는 그래. 겨울이 오면, 그것도 아주 추운 겨울이 오면 썽이 생각나. 그리고 압구정에서 썽을 기다리던 순간이 생각나고. 썽이랑 얼어붙은 발로 <강서면옥>을 가던 것도 생각나. 바람이 얼마나 세찼어. 나보다 추위를 더 타는 썽이 물냉면을 시키는 것도 그걸 지켜보는 나도 주마등처럼 떠올라. 한 입 맛보던 순간과 정말 추웠는데 먹을 때마다 혈관을 타고 느껴지는 차가운 육수의 느낌도, 맛있어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든 것도, 다 먹고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는데 아이스 음료를 주문한 것, 그러면서 배가 아플까 걱정했던 것도 다 기억나. 되게 맛있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모든 기억의 중심엔 늘 썽이 있어. 그냥 썽이랑 함께했기에 순간마다 즐겁고 맛있었던 거 같아.
날이 갈수록 드는 생각인데, 사실 맛있는 음식은 없다고. 다만, 누구와 먹느냐가 맛의 차이를 만드는 거 같아. (물론 이제 난, 평양냉면을 혼자 먹어도 맛있어.) 그날 내가 썽 없이 혼자 (먹을 일도 없었겠지만) 냉면을 먹었다면 맛있었을까? 함께 먹은 사람이 썽이었기에 맛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거야. 해마다 <강서면옥> 생각나는 계절이 왔다며 비슷한 내용의 연락을 하잖아. 연락할 상대가 썽이라서, 소중한 기억의 장면에 썽이 있어서 고마워. 고맙다고 말한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고맙다고 말하네.
*알단테 (al dente)?
채소나 파스타류의 맛을 볼 때, 이로 끊어 보아서 너무 부드럽지도 않고 과다하게 조리되어 물컹거리지도 않아 약간의 저항력을 가지고 있어 씹는 촉감이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즉, 스파게티 면을 삶았을 때 안쪽에서 단단함이 살짝 느껴질 정도를 말한다. (출처: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