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면옥 〉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을지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을지면옥>이 보이지만 눈길을 잘 주지 않으면 지나치기에 십상이다. 반짝거리는 간판과 일반적인 입구로 찾기 쉬운 유명 냉면집들이 많은데 비해 <을지면옥>은 널따란 나무판자 위 푸른색 페인트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 내려간 간판만이 여기가 입구임을 알려준다. 공구상 사이에 껴서 겨우 존재감을 알리는 <을지면옥>. 사람 두 명 정도가 팔짱을 끼고 지나갈 정도의 입구는 여기는 후문이 아닌지, 진짜 이곳으로 들어가도 되는지, 오픈은 한 게 맞는지 갸우뚱하게 한다. 갸우뚱거리며 좁고 긴 입구를 걸어가다 보면 *돈데크만의 타임머신을 타고 경험해 본 적 없는 과거의 어느 한 장면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혹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와 부모님이 숲속 작은 입구로 걸어가는 도입부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래된 타일을 밟아 들어가면 다른 세계가 나올 거 같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심지어 약간 어두운 분위기와 걸려있는 낡은 액자들이 더욱 그런 느낌을 발휘한다. 돈데크만의 주전자가 없어도 충분히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 분위기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장충동파 평양냉면'과 '의정부파 평양냉면'을 두고 어디가 더 맛있다는 이야기가 늘 화두에 있다. 물론 여기는 이래서 맛있고 저기는 저래서 좋아하는 불호가 거의 없는 편인 나도 '의정부파 평양냉면'에 승기를 든다. 그렇다면 <을지면옥>을 또 빼놓을 수 없다. 2021년인 요즘은 냉면집 뿌리가 어디인지는 중요치 않아졌다고 생각한다. 이미 매장마다 다양하고 특별한 모습으로, 지금의 평양냉면을 보여준다. 멀건 국물이라고 모두 평양냉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떤 모습이든 맛이 있다면 그대로를 존중하고 싶다.
아마 나도 그때쯤이었겠지만, 어느순간 젊은 사람들이 평양냉면을 찾기 시작했다. 평양냉면은 늘 존재해 왔지만, 갑작스레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유행에 둔감한 편이기도 하고 주변에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던지라 늘 외롭게 평양냉면을 먹어왔었기에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한창 빠져 매일같이 친구들에게 평양냉면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고, 약속은 무조건 평양냉면을 먹자고도 했으나 먹을 때마다 맛있게 먹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며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다는 생각을 했는데 말이다. 그 뒤로 평양냉면은 누구나 좋아하는 맛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전도를 멈췄다. 궁금해하는 사람도 경계했고 같이 먹자는 사람은 최대한 피해도 봤다. 그래서 평양냉면이 젊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도 모자라 팬덤 현상까지 생긴 것을 몰랐었다. <평양냉면>이라는 작은 책을 만들고 나서야 '냉밍아웃'을 하게 됐다. 마침 시점이 맞물려 유행 열차에 겸사겸사 탑승한 것은 아닌지 평양냉면을 향한 나의 마음이 진심인지 알아보는 시험대에도 여러 번 올라야 했다. 유행 열차에도 시험대에도 오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지만, 지금 평양냉면이 유행인 것도 그래서 시험대에 올라야 하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초반에는 이해도 되지 않았고 불편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어쩌면 냉면을 향한 마음은 동일한 건 아닐까 하며 그들을 이해했다. 나에 대한 관심이 아닌 평양냉면에 관한 애정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많은 시험대에 오를 때마다 등장하는 냉면집이 바로 <을지면옥>이다. 물론 <필동면옥>도. 그니까 '의정부파 평양냉면'이라고 불리는 곳들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러 시험을 지나 거의 마지막 시험대였던 거 같다 (요즘은 시험당하지 않는다). 점점 평양냉면이 입에 많이 오르기도 했고, 순정을 논하기엔 냉면집이 늘어난 것도, 그리고 이제는 유행도 조금 식은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웬만큼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평양냉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진짜 좋아하더라'로 인정도 해준 터라 시험당할 일이 없기도 했다. 어쩌다 잠깐 들어가게 된 평양냉면 애호가 모임에서도 진땀은 뺐지만 오히려 다른 곳보다 질문의 문턱이 높지 않기도 했다. 마지막이었던 시험은 생각지도 못하게 교회에서였다.
2016년 여름, 30명 가까이 되는 교회 식구들과 떡볶이를 먹던 날이었다. 많은 인원이라 테이블을 나눠 앉았다. 어쩔 수 없이 대화를 근처에 있는 사람과만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갑자기 어디선가 '평양냉면'이라는 단어가 반짝하고 내 귀를 스쳤다. 평양냉면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빠질 수가 없지. 제일 끝에 있던 내가 머리를 빼꼼하고 내밀었다. 나 좀 끼워달라는 눈빛을 마구 보내며 텔레파시를 보냈다. 소리의 근원지는 목사님의 테이블이었다. 맛없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유난히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목사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널리 널리 알려도 맛집만큼은 무조건 사수하시는 분이었다. 외유내강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시는 목사님이라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깊은 믿음을 주셨다. 그런 목사님이 평양냉면을 좋아한다는 나에게 순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변해 몇 가지 질문을 내셨다. 단번에 맞춰 1단계를 통과했다. 그걸로 끝이 난 줄 알았건만, 다음 날 목사님으로부터 사진 한 장과 -여기 어디게요?-라는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냉면이 클로즈업된 사진 한 장에 웃음이 한바탕 나왔고 미치도록 맞추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왔다. 성경 퀴즈도 이렇게 맞추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데 냉면을 맞추고 싶다니 하나님이 보시면 기가 막히셨을 게 분명하지만, 나는 미치도록 맞추고 싶었다.
'맑은 육수 위로 송송 썰린 파가 올라가 있고 고춧가루가 탈탈 뿌려지고 얇디얇은 면들과 스테인리스 그릇. 누가 봐도 '의정부파 평양냉면'인데 교회에서 가까운 <을지면옥>일까 조금 더 멀리 <필동면옥>일까 설마 의정부까지 가셨을까?' 고민을 하다가 솔직하고 진지하게 답변했다. <필동면옥> 혹은 <을지면옥>인 거 같은데 냉면 사진만 봐서는 정확히 어디라고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목사님은 <을지면옥>이라며 앞으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정해 준다고 했다. 아직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기분이 있는데 본의 아니게 평양냉면 애호가로 먼저 인정받아버렸다. 그날로 난 교회 여기저기에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통했다. 이거 뭐 좋아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도 나의 안부보다는 평양냉면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 많다. 특별한 인사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평양냉면으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그런 순간마다 주변으로 웃음꽃이 활짝핀다. 잠깐이지만 함께 웃을 수 있는 순간으로 만들어주는 평양냉면이 고맙다.
다시 <을지면옥> 입구로 돌아와, 한걸음에 10년씩 거슬러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과거에 도착한다. 방금 들어온 나를 바라보는 직원들을 향해 주문하겠다는 눈짓을 보낸다. 테이블 위로 빨간색 아크릴 번호판을 올려놓고 주문을 받아 간다. 바로 따뜻한 면수가 놓인다. 잠시 후 주문한 냉면이 온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모습 속에 2020년대의 내가 있다. 반세기 동안 같은 모습의 <을지면옥>은 해마다 변해가는 손님들을 얼마나 지켜봤을까. 냉면을 시켜놓고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을지면옥>이 지나온 과거의 시간을 상상해본다. 휘-이 저어 국물을 한 입 마시고, 면을 한 움큼 씹는다. 살포시 감도는 고춧가루의 매운맛과 파향이 메밀면을 감싸 안고 나에게로 넘어간다. 역시 '의정부파 평양냉면'은 맛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인다. 시험을 아무리 쳐야 한대도 이 맛은 포기할 수가 없다. 마음속으로 나와 <을지면옥>에 '따봉'을 날린다.
맛있게 먹은 냉면을 뒤로하고 다시 시간여행자처럼 들어왔던 길을 돌아 나간다. 다시 10년, 20년씩 늘어나 현재로 돌아온다. 입구이자 출구였던 그 길을 나오면 광명이 쏟아지듯 눈이 부시다. 먹기 전과 먹고 나서까지 너무나 드라마틱한 과정이다. 차가워진 입 속을 움직이며 어디선가 맴도는 메밀 향과 파 향을 음미한다. (솔직히 짭-짭- 거린다.) 잠깐 시간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 을지로3가역 개찰구를 지나 지하철에 앉아서까지 지속됐다.
*돈데크만?
애니메이션 시간탐험대의 타임머신. 주전자 모양으로 "돈데기리 돈데기리 돈데기리 돈데크만"이라고 주문을 외치면 시간 여행을 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