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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재희 Oct 24. 2021

사랑의 서막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

나에게 평양냉면은 6·25 때 북에서 남으로 피난 오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즐겨 드시던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 예배가 끝나면 냉면집을 자주 찾았다. 평양냉면을 비롯해 오장동의 함흥냉면까지. 냉면 자체는 낯선 음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먹을 때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음식임에는 틀림없었다. 함흥냉면은 면이 잘 씹히지 않아 면의 모습 그대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 대체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면의 탄력이 너무 좋아 내 치아와 치아가 만나지 못하고 도로 튕겨 나가는 거 같았다. 씹히고는 있는지 이게 고무줄인지 면인지 모르겠어 매번 가위로 아작을 낸 후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아직도 함흥냉면이나 분식냉면은 가위로 크게 삼등분으로 자르고, 다시 휙휙 저어 세 번을 더 잘라먹는다.) 평양냉면은 또 어떻고. 육수인지 생수인지 모를 멀건 국물에 두꺼운 면이 턱 하니 올라와 있는 것이 성의도 없어 보였다. 곱게 말려있는 함흥냉면은 성의라도 있어 보였지, 성의 없는 평양냉면은 맛조차 납득이 가지 않았다. 잘게 잘라서라도 먹은 함흥냉면과 달리, 평양냉면은 이게 도통 무슨 맛인지 싶었다. 솔직히 먹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어릴 때부터 먹어왔지만, 단 한 차례도 맛있었던 적은 없었다. 의견을 낼 수 없는 혹은 의견을 내도 묵살당하기 일쑤였던 초등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굶기 싫으면 먹는 것뿐이었다. 왜 내가 다니는 교회는 이렇게 맛없는 냉면집들이랑 가까운지, 할머니는 왜 냉면을 드시러 가는지 이해되지 않아 짜증이 났다. 그러다 가끔 칼국수와 만두를 먹으러 <명동교자>에 가는 날이면 기분이 아주 좋았다. 더 가끔 할머니가 <명보극장> 1층에 있는 <맥도널드>에 데려가 해피밀 세트를 사주기도 했는데 그럴 땐 세상에서 할머니가 제일 좋았다. 그렇게 평생 스스로는 먹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것이 평양냉면이었다. 


싫은 건 싫은 거였고 그 뒤로도 자주 평양냉면을 먹어야 했다. 오로지 타의로만. 앞서 이야기했듯 다니던 교회는 나의 할머니를 비롯해 북에서 남으로 피난 오신 실향민이 많다. 전쟁 당시 실향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던 교회는 시간이 지나 그들의 고향이 되었고, 교회 바로 앞에는 고향을 기억하기에 안성맞춤인 <평래옥>이 있다. 고향이 3·8선 위인 1세대부터 2세대, 그리고 실향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나 같은 3세대들이 공존하는 현재까지 우리는 좋든 싫든 <평래옥>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싫든’에 속하는 그룹이었다. 대체로 3세대는 ‘싫든’에 속하기 때문에 <평래옥>을 가야만 하는 날이면 눈빛이 허공으로 흔들거렸다. 특히나 1세대 그룹과의 식사 장소는 대체로 <평래옥>이어서 피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미리 알려주시면 아마 어떻게든 식사는 피했을 거 같지만 1세대 그룹은 그 마음을 아는 듯 절대 미리 알려주시는 법이 없었다. 시간부터 비워두고 장소는 이동 직전에 알려주셨다. 


<평래옥>에 모인 우리는 예수님과 열두 제자처럼 나란히 앉아 1세대 그룹은 평양냉면을, 흔들리는 동공의 3세대들은 하나같이 육개장을 시켰다. 냉면집에 와서 맛있는 냉면을 먹지 왜 육개장을 먹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겉으로는 “호호호” 웃으며 넘겼지만 그나마 <평래옥> 메뉴에 육개장이 있음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역시 다른 사람 손에 이끌려 냉면을 먹으러 간 날이었다. 안 좋아하는 음식을 이토록 많이 먹은 사람도 없을 거다. 안 좋아하는 음식 중에 평양냉면 그리고 그중에는 물냉면. 물냉면을 내 의지대로 시켜 먹은 것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없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무슨 마음이었는지 물냉면을 시키고 말았다. 시킨 후에도 비빔으로 바꿀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고 손을 올렸다 내렸다가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종업원과의 타이밍이 맞지 않아 비빔냉면으로 교체하지 못했고, 그새 멀건 물냉면이 내 앞에 놓였다. (인생에 몇 없는 기념적이 날이라 모든 순간이 아주 정확하고 또렷하게 기억난다.) 냉면을 마주하자마자 역시나 아차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것을. 이런 선택을 한 나를 속으로 욕하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풀었다. 쉽사리 면을 입속에 넣을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이 또한 어쩌겠는가. 큰마음을 먹고 면을 올려 꿀꺽 삼켰다. 겨우겨우 면들을 건져 먹었다. 변함없는 냉면의 맛에 ‘역시 맛없군’이라는 생각과 다시는 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바람이 쌩쌩부는 겨울에 차가운 물냉면을 먹고 오들오들 떨면서 집에 왔다. 따뜻한 물로 씻으면서도 정말 다시는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냉면을 선택한 스스로를 혼내며 분노의 양치를 했다. 평양냉면의 모든 흔적이 사라진 그날 밤, 이불 속에 들어가 눈을 감은 그 순간. 어디선가 조금 전 먹은 평양냉면의 국물 맛이 ‘꼴깍’하고 넘어왔다. 믿을 수 없었다. 다시 침을 삼켜봤다. 맙소사. 두 번째 삼킨 침에서는 더 강한 육수의 맛이 돌았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건 몇 초 사이었다. 감은 두 눈 너머에서 회색 빛 냉면과 맑은 육수가 둥실둥실 떠다녔다. 테트리스 게임에 빠졌을 때 눈을 감아도 블록이 자꾸 생각나 머릿속으로도 블록을 맞출 때가 있었는데 바로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우주 같은 평양냉면 그릇에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멀건 국물 속에 숨어있는 감칠맛이 침을 삼킬 때마다 ‘빼꼼'하고 보였다가 다시 숨었다. 반복했다.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감칠맛. 밤새 감칠맛과 숨바꼭질을 했고, 그날 밤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이 바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렇게 평양냉면의 마력에 빠졌고 여전히 믿을 수 없던 나는 다음 날 이 감정이 사실인지를 위해 평양냉면을 먹었다. 그동안 먹어왔던 냉면이 아니었다. 그릇을 들고는 육수를 남김없이 마셨고, 면이 넘어가면서 목젖을 칠 때마다 느껴지는 메밀 향은 나를 다시금 미치게 했다. 불과 24시간 전 다시는 먹지 않겠다는 다짐이 물거품이 된 셈이었지만 다짐은 잊은 지 오래였다. 비행기도 24시간 이내는 환불이 되니 내 다짐도 환불하기로 했다. 심지어 한 그릇 더 먹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참았다.



얼마나 맛있었는지는 여러 번 이야기해도 닳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게 말할 수 있다. 그날 이후로는 최소한 일주일에 두 번은 평양냉면을 먹었다. 그렇게 싫었던 <평래옥>에 대한 생각도 180도로 바뀌었다. 전생까지 끄집어내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주일에는 교회 앞에 냉면집이 있고, 평일에는 회사 앞에, 퇴근 후에는 집 앞에도 냉면 집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남들이 이해 못할 행복한 생각을 해댔다. 


몇 번을 친구들과 함께 갔지만 예전의 나와 같은 얼굴을 하는 친구들 덕에 홀로 먹는 길을 택했다. 함께 할 사람이 없어서 냉면을 먹지 못하는 일은 없다. 약간 외로웠지만 냉면을 먹는 일이라면 서슴지 않았다. 혼자 오셔서 냉면과 독대하시는 할아버지들 사이에 나도 냉면과 독대했다. 고개를 푹 숙여 면을 빨아올리고, 두 손으로 감싼 그릇에 얼굴을 맞대고 육수의 감칠맛을 느끼면 혹시 나의 고향도 이북이었나 싶기도 했다. 할머니도 이 정도로 많이 먹지는 않았던 거 같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나 싶었다. 동시에 이토록 맛있어하는 내가 이해되지 않아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면서도 차가워진 입가는 ‘씨익’거리며 웃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손은 쉴 틈 없이 면을 흔들었다. 


‘메밀 향아 더 올라오렴’ 



이것이 바로 평양냉면에 대한 사랑의 서막이다. 이 맛을 알기까지 십여 년이 걸렸다. 영영 몰랐어도 괜찮았겠지만 알아버린 이상 더 사랑하며 맛있게 먹고 싶어졌다. 보통 평양냉면을 좀 먹는다고 하는 자칭 미식가들은 진정한 음식이 평양냉면뿐인 듯 너스레를 떨며 먹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글쓴이는 너스레는 떨지 않지만 호들갑은 떠는 편.)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맛난 음식들이 있고 그 음식들은 아주 다양한 맛을 내고 있다. 평양냉면의 맛만이 그리고 그걸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만이 맛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월감을 나타낼 필요도, 먹지 못한다고 눈치 볼 필요도 없다. 내 사랑이 소중하듯, 다른 이의 사랑도 소중한단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단순히 생각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평양냉면’ 일뿐인 것. 그냥 당신이 맛있게 먹은 음식이 ‘평양냉면’ 일뿐이다. 그러니 내가 ‘평양냉면’을 먹을 때 행복해서 미치겠다는 거처럼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열렬히 좋아하며 무엇을 먹든 먹을 때마다 행복한 식사를 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행복할 자격이 충분하다.


아 오늘 먹고 왔는데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다시 또 먹고 싶다.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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