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입/산출의 관점으로 본 삶은 자원을 투입해서 원하는 산출물을 얻는 과정의 연속인 듯하다.
대표적인 산출물은 돈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슬슬 먹고 살만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원하는 산출물이 바뀐다. 작게는 누군가에게, 크게는 어떤 조직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남에게 존경 받고 싶어하고,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고, 자아를 실현하고 싶어한다. 매슬로우의 통찰은 50년이 넘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럼 대표적인 자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자원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투입 요소는 시간과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지식이나 경험, 기술 역시 따지고 보면 시간과 에너지로 만드는 산출물이며 보통 돈을 만들기 위한 1차 원자재로 쓰인다.
우리는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듣지만 상대적으로 에너지를 관리해야 한다는 말은 잘 듣지 못한다. 시간은 측정 가능하고 누구에게나 같지만 에너지는 측정이 힘들고 총량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에너지는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에너지를 밖으로 잘 뿜는 사람을 '활동적'이라 한다.
우리는 에너지를 안으로 갈무리하는 사람을 '내성적'이라 한다.
우리는 '의지'로 쓸데 없이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통제한다.
어떤 일을 추구할 때 원동력으로 쓰는 에너지는 '동기'라고 부른다.
어떤 대상에 감정을 쏟는 에너지를 '관심'이라 한다.
계획에 없던 에너지를 사용하면 '신경 쓰기'가 된다.
심지어 누구를 미워하려고 해도 에너지의 여유가 없으면 하지 못한다.
따라서 산출물의 경쟁력을 가지려면 에너지를 관리하는 게 꽤 효과적이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한다면 산출물의 질과 양이 더 나을 것이니까 말이다.
사람의 에너지를 관리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조직문화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 조직문화냐? 그게 일의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괜히 피터 드러커가 '문화는 전략을 아침식사로 먹는다'라고 한게 아니다.
'상사의 눈치를 보는 조직문화'는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든다.
이 문화에서 의사결정의 기준은 원칙이 아닌 의사결정자 개인에게 있다. 이 조직의 구성원은 객관적으로 좋은 의견이 있어도 의사결정자의 주관적인 취향을 고려했을 때 싫어할 거라고 미리 짐작하고 의견을 덮는다. 그리고 의사결정자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안을 만든다. 답답한 나머지 의사결정자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지만 그 역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소화하지 못하고 자기 취향으로 결정해버린다. 조직원들은 '그러면 그렇지'하면서 원래대로 돌아간다.
'품질이 시간에 비례한다고 믿는 조직문화'는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든다.
지시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멋진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바로 이야기하면 대충했다고 오해 받을 것 같아 일부러 예쁘게 만든 PPT 장표로 보고한다. 10초 만에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될 일에 10시간이 걸린다.
'갈등 없이 좋은게 좋은 조직문화'는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든다.
이 조직에서는 회의실에서 반대나 비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상대방 기분이 상할 테니까. 회의에서는 아무 결론이 나지 않고 진심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서로의 부족함을 지적하지 않으니 업무에 구멍이 수두룩하다. 그거 메꾸느라 야근한다.
'리더가 책임지지 않는 조직문화'는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든다.
리더가 실무자에게 겉으로는 권한을 주고 위임한다고 하지만 매번 참견하고 간섭한다. 그러면서 의견일 뿐이니 참고만 하라고 한다. 비겁한 말이다. 위임은 미리 합의한 과정에 따른 결과를 평가하는 최소한의 지시다. 리더의 무책임한 발언에 실무자는 자신의 기획을 수정할 수 밖에 없다. 그 '의견'을 안 들으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으니까. 그 와중에 납기는 변하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은 리더의 의견대로 했는데 왜 내 말을 들었냐면서 혼내는 리더에게 욕하지 못하는 실무자의 심정이다.
연차가 쌓이면서 직장인은 회사로부터 관리자의 책임을 요구 받는다. 보통 관리 대상은 보이는 결과부터 시작해서 보이지 않는 과정까지 확장된다. 보이는 산출물부터 보이지 않는 투입 요소인 예산, 납기, 에너지를 관리하는 것이다.
관리자 개인의 기량으로는 에너지를 관리하기가 힘들다. 이런 관리자는 멸종위기의 동물만큼 희귀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까지 관리하려면 조직의 차원에서 구성원 개인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을 나름대로의 잣대로 측정하고, 한정된 업무 시간 내에 에너지를 어떻게 쓰는지 파악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에너지를 관리하는 조직문화가 진짜다. 좋은 조직문화는 구성원의 에너지를 한 톨도 낭비하지 않는다. 정해진 근무 시간에 양질의 산출물을 효율적으로 나오게 하려면 구성원의 에너지를 관리하는게 중요하다.
번아웃이 오는 이유는 의외로 일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에너지를 쓸데 없이 낭비했기 때문이다. 일이 많아도 이게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면 기꺼이 에너지를 투입하게 되어 있다. 그만큼 산출물이 확실하다면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