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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인 Oct 21. 2023

다양한 삶의 조각들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그러니까 1600년대의 퐁토슈 가는 배추 경작지였습니다. 퐁토슈의 슈(chou)는 프랑스어로 배추를 말하지요. 당시 파리는 지금보다 훨씬 면적이 작았어요. 퐁토슈 가로 진입하기 전 큰길이 400년 전엔 성곽이었습니다. 그러니 퐁토슈 가는 거의 파리의 끄트머리나 다름없었지요.

18세기부터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상점이 생기면서 퐁토슈 가는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1800년대 퐁토슈 가의 사진을 보면 당시의 상점이 현재에도 여전한 경우가 있어요. 물론 몇 세기 동안 상점 주인을 비롯해 자잘한 것들이 바뀌어갔겠지만 카페나 담배 가게, 구둣방의 간판은 컬러가 살짝 변했을 뿐 여전히 비슷한 형태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해서 오히려 안 변하는 것을 찾기가 어려운 한국을 생각하면 프랑스는 변화가 대단히 느리고 또 몇 백 년 전의 건물들이 화석처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요. 그게 파리의 매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0년, 20년 후에도 내가 아는 것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만 같은 안도감 혹은 친밀감, 그리고 그 안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몇 세기가 지나도 흥미롭습니다. 살아가는 모습은 달라도 삶의 근원은 시대를 초월하니까요.


큰길에서 퐁토슈 가로 진입하는 길목의 왼편 모퉁이에는 아랍인 가족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습니다. 1800년대에도 그곳은 Bar tabac, 즉 담배 가게와 카페를 겸한 곳이었죠.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카페 상황은 아주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모퉁이 카페는 나이가 아주 지긋해 보이는 마담과 그녀의 장성한 아들, 딸 이렇게 셋이서 카페를 운영하는데 그 세 사람은 정말이지 죽어라고 싸웁니다. 아침, 저녁 출퇴근길에 반드시 그 카페를 지나치게끔 되어 있어 보기 싫어도 보고, 듣기 싫어도 그들의 악다구니를 들을 수밖에 없던 나는 언젠가부터 카페의 연로한 마담을 눈여겨보게 되었지요. 그녀는 카페 주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아니 노숙자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행색을 하고 퐁토슈 가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처음엔 다른 프랑스인들과 다르게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시는 분인줄 알았습니다만 그녀는 말 그대로 쓰레기를 파헤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날에는 길가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마담이 쭈그리고 앉아 포크를 씻고, 걸레를 빠는 모습을 본 적도 있습니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파리는 아침마다 길가 바닥에 있는 수도를 틀어 거리를 물로 청소합니다. 자잘한 쓰레기나 먼지들을 수압이 높은 물로 쓸어내지요. 그 물은 센느 강의 물을 끌어다 씁니다. 바로 센느 강의 물이 흘러나오는 곳에다 손님들이 사용하는 포크를 씻고 있었던 것입니다.


퐁토슈 가의 상인들은 누구도 그 카페에 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카페 마담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어요. 단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는듯한 고목 같은 얼굴에, 넝마 같은 천을 걸치고 머리엔 두건을 쓰고서 걸어 다니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럼 그 카페는 어떻게 운영을 하고 있었을까요. 바로 이런 사정을 모르는 관광객들만이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즐거워했지요. 특히 나는 그곳에 앉아 있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볼 때마다 말이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어요. 이 동네의 진짜 맛있는 커피집과 디저트 가게 따위를 마구 알려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오지랖을 부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관광객만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한편 가게의 맞은편 이층 집에는 혼자 사시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평생을 퐁토슈 가에서 살아온 그의 취미는 이층에 서서 거리를 내려다보는 것인데, 추운 날을 제외하고 많은 날들을 상의를 벗고 있지요. 그렇게 옷을 벗고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을 내려다보다 저와 눈이 마주치는 일도 많았습니다. 가게에서는 아저씨의 집이 너무도 잘 보여서 이층 집을 올려다보는 일이 습관이 되었어요. 오늘은 아저씨가 상의를 벗고 있을까 아닐까, 아저씨의 탈의 상황에 따라 날씨를 점쳐보기도 했습니다.

약간은 이상한 이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게 된 건 순전히 내 직업병 탓이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아저씨와 정면으로 맞닥뜨린 날이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영혼 없는 미소와 “봉주르”가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받은 후로 우리는 인사를 나누는 진짜 이웃이 되었습니다. 아저씨는 매일 이층 집에 서서 퐁토슈 가를 바라봅니다. 표정 없는 얼굴에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건지 도무지 알 수는 없지만 아저씨가 웃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압니다.


세상에는 수 만개의 다른 얼굴과 그만큼 다른 가치관, 그리고 각자의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걸 깨달은 건 퐁토슈 가를 스쳐가는 사람들을 통해서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동안 내가 속해있던 세계의 울타리를 산산조각 내버릴 정도로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죠. 샐러드 볼처럼 한데 뒤섞여, 그럼에도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섣부른 비난과 잣대를 들이대는 법 없이, 자신만의 얼굴로 편안하게 말이에요.


이것은 퐁토슈 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의 n차 성장기이기도 합니다.

도둑의 피해를 보는 일이 훨씬 줄었고, 길에서도 할머니들이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도 응시하지 않고 걷는 법을 배웠고, 구걸하는 홈리스와 한쪽 발을 잃은 비둘기를 외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리의 아픈 단면들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음을 이제는 잘 압니다. 눈에 보이는 고통에 일일이 대응해 가며 스스로를 해치던 시간도 지나갔습니다.

아주 먼 훗날 나는 퐁토슈 가의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요. 미래에 쓰여질 이야기를 위해 퐁토슈 가의 사람들은 오늘을 열심히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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