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일기
돌이 다 되가면서 주변에 너도나도 걸음마를 시작했다.
빠른 아기들은 10개월때부터 걷는 모습들을 많이 봤다.
100일쯤 되면 뒤집기, 돌 쯤되면 걸음마.
뭔가 공식처럼 육아 성장발달이 정해져 있는지 그쯤되면 다들 물어본다.
뒤집기는 하는지, 걸음마는 하는지.
예준이의 경우 조금씩 다 느렸는데, 그런 물음을 받을 때마다 아직이요. 라고 하면
젠틀한 사람의 경우 "엄마 고생 덜시키려고 천천히 하나보네 허허"
약간 눈치 없는 사람의 경우 "우리 애는 벌써 걷는데 너무 피곤해 ㅋㅋ"
여기서 자유해지기로는 애초부터 결심했었는데,
웬지 엄마가 집에서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걸음마 연습도 열심히 하고 이런 애들이 발달이 빠른 것 같아서
조금 주눅은 들었다.
예준이 잘못이 아니라, 내가 많이 못도와줘서 늦는 것 같아서.
근데 도무지 걸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예준이가 며칠 전부터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겁도 많고 그만큼 조심성도 많아서 걸을때도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양손을 옆으로 펴서 균형을 맞추며 조심스럽게 걷다보니,
무릎보호대가 필요없을 정도로 넘어지는 일이 잘 없다.
걷는 것도 재미있어해서 요샌 계속 걸으려고 한다.
이걸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때되면 정말 다 하는구나.
엄마가 안달복달할 일도 아니고, 아기 성격이나 신체 구조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때되면 알아서 이렇게 훌륭하게 잘 해주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특하다.
퇴근 후에 집에 와서 무조건 두시간 이상은 함께 붙어서 놀아주려고 하고 있는데,
어제 보니 사운드북을 눌러서 몸도 흔들흔들 하고 박수도 치며 노래를 즐기는 모습을 봤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게 그냥 버튼 이것저것 누르고 책장 넘기기 바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하나 누르고 음악이 다 끝날때까지 기다리며 그 음악에 맞춰 뒤뚱뒤뚱하는 모습에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엄마가 못본새에 우리 예준이 이렇게 크고 있었구나.
엄마가 맨날 예준이 좋아하는 사운드북으로 함께 놀아주지 못하고,
걸음마 연습도 같이 별로 못하고,
놀이터에 가서 미끄럼틀도 그네도 별로 못 타주고 그랬는데
그래서 엄마는 그게 항상 미안했는데 우리 예준이는 이렇게 스스로 잘 크고 있었네.
하는 마음에 너무 기특하고 고마워서 뽀뽀 폭탄을 퍼부었다.
아기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일하는 엄마들은 보통 본인을 탓하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기만 한다면 아이는 안정적인 정서로 잘 크기 마련이며,
엄마가 하루종일 함께 있든 그렇지 않든 그게 문제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는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는 나는 아직도 갈길이 먼 초보엄마다.
예준이를 좀 더 믿고 지켜봐줘야겠다.
불안해하고 걱정하기보다는 잘 이겨내고 잘 할거라는 믿음으로 격려하며 기도해주며 힘껏 사랑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