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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브리나 Nov 15. 2019

600만원짜리 영어전집을 사주는 부모들의 마음

엄마들의 불안을 먹고 크는 사교육 시장

오늘 웬지 너무 피곤해서 아이들 재우는 9시부터 잠깐 눈 좀 붙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새벽 두시가 다 되가는데 잠이 안온다. 6시부터 애들이 하나씩 일어날텐데, 이렇게 잠을 얼마 못자면 회사에서도 피곤한데...


사실 발단이 되는 계기도 있었다.

뉴스기사를 보다가 600만원짜리 영어전집이 리뉴얼되면서 기존 구버전을 구매한 엄마들의 원성에 엄청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을 보고 나서였다.


아니 무슨 전집이 600만원??

내가 아는 전집 중에 가장 비싼건 오알티였는데, 그것도 백만원대라는 미친(?) 가격에 놀랐는데 600만원??

이러면서 검색을 시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영어 책들, 한글, 수학 등으로 이어지게 되다가 지금 이 꼴이다.





내가 책을 좋아하고 책 관련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 책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이런저런 책을 찾아보는 편이고, 다양한 책육아 카페들을 보며 어떤게 좋다하면, 그게 뭐가 좋은지 열심히 찾아보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에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관심에 비해 예준이는 책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일단 좋아하는 책을 주구장창 읽는 습관이 있고, 전집은 쌓아두기만해도 엄마도 아이도 질리는 느낌이 있어 최소한으로 하려하고 있고, 영어는 지금 그냥 리스닝 스피킹 노출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을 해서 그렇기도 하다.


600만원짜리 영어전집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금액이지만 수많은 엄마들이 선택하게 된 이유는 “아웃풋”때문이라고 한다. 아웃풋이라함은 아이들이 정말 즐겁게 보면서 거기서 보고 들은 영어를 실제로 많이 활용한다는거겠지?

와 그래도 600만원. 정말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예준이는 지금 유튜브로 영어 노출을 하고, 가끔 에릭칼과 메이지 그림책을 보는게 다다. 

에릭칼은 노부영이라 CD로 노래를 들려줬는데, 사실 이렇게 귀로만 듣는것보다 유튜브로 노래와 영상을 보여주는걸 더 좋아한다. <Brown bear, Brown bear What do you see?>는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비슷한 음의 노래로 유튜브에 책과 함께 불러주는 영상이 수두룩하다. 

여튼 그렇게 몇번 보더니 그 노래는 외워서 부르고 책과도 연계해서 잘 보지만, 그래도 예준이가 가장 좋아하는건 숫자나 행성이다. 



대체 행성을 차례로 영어로 알아서 뭣에 도움이 될까, 저걸 보느니 그냥 영어동요 하나를 더 듣는게 좋은데... 싶지만, 어쨋든 재밌게 받아들이라고 노출시켜주는거니 자기가 좋아하는 걸 봐야지 하는 마음이다. 





숫자는 정말 너무 좋아해서 1000까지 세고 간단한 더하기 빼기도 즐겨한다. 가끔 숫자 매니아가 이런가 싶을 정도로 뭘 봐도 일단 세고, 뭘 봐도 숫자로 얘길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앉은자리에서 100까지 세는걸 들어주고 있어야할때는 정말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불시에 “마미, 원헌드레드 플러스 투헌드레드 이꼴?”

다섯살의 온전치 못한 영어 발음에, 온전치 못한 엄마 리스닝 실력이라 주의깊게 듣고 똑바로 대답해야한다. 틀리거나 못알아들으면 가차없이 “마미 노노노!!!”가 날아온다. 


가끔 귀찮고 너무 집착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일단은 영어보다도 수학에 더 집중해주고 싶은 마음이라 지켜보고 살피고 있다. 수학이라고 하니 뭔가 학문같아서 좀 그렇지만, 수개념에 대해 좀더 잘 잡아주고 싶어서 워크북도 하나 주문해봤다. 5850원 ㅋㅋㅋㅋ 



한글 그림책은 도서정가제라 한권에 웬만하면 만원이 넘어서 진짜 선별해서 사주려고 하지만(미안하다 내 책은 그렇게 사대면서...) 영어 그림책은 양질의 저렴한 책들이 많아서 장바구니에 잔뜩 담아는 뒀지만 그 역시 결제는 못하고 있었는데 600만원 전집 얘기를 듣다보니 내일 이거라도 결제해야지 싶다.



열성적인 사교육은 결국 부모의 욕심이지, 그렇게 과하게 투자하고 열성을 보인다고 애가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로 크는게 아니라는 소리는 수십번 들었다.

될 놈들은 그렇게 안해도 다 잘된다는 건데, 그 말이 일을 병행하는 엄마 입장에선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들려서 고맙기도 하다가, 한편으로는 내 자식이 안될 놈이 되면 안되는데 싶은 생각에 뭐라도 해줘야 한다 싶고 그렇다. 



나는 책 오만원어치 사주는 것도 이렇게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고르는데 600만원 짜리 전집을 사준 엄마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알아보고 했을까. 그 엄마들의 밤잠없이 고민해가며 선택한 결정들에,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된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가 싶은 생각도 들고 여튼 또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해져서 잠이 안온다.



일단 내일 출근하면 장바구니 책 먼저 다시 살펴보고 결제해야지. 그리고 피곤하고 귀찮아도 꼭 세권은 읽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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