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싫지만 먹어야 하는 인생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먹으려고 사는 쪽, 다른 하나는 살려고 먹는 쪽. 어느 한쪽도 ‘먹는 것’이 ‘덜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살려면 ‘먹는 것’이 각각의 목적대로 중요하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난 절대적인 후자다.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고, 지금도 그렇다. 먹을 것 관련해서 자주 내는 의견이 있다. "밥 대신에 만화에 나오는 <알약>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밥 먹은 것과 동일한 효과를 주면서 시간은 절약할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바로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듣기 일쑤지만. 물론 나도 맛있는 것을 먹으면 당연히 즐겁고 그 기쁨과 행복이 무언지 안다. 하지만 ‘먹는 것’에 대한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 필수적인 것은 알지만 자체적인 매력도는 많이 밀린다. 지금이야 아들 끼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삼시 세끼를 챙겨서 먹지만, 그전까지 내 인생에 아침식사는 끼어들지 못했다. 혼자 있을 때는 배고플 때까지 버티다가 하릴없이 입에 집어넣곤 했었다. 이러니 살이 찔 리가 없었고, 살이 더 빠질까 무서워서 겨우겨우 먹어온 생활의 연속이었다.
어릴 적엔 ‘저러다 영양실조 걸리겠다’를 별명처럼 자주 들었다. 편식이 심하고 먹는 양이 적었다. 군것질이나 간식이라도 잘 챙겨 먹으면 차라리 비만이라도 걸렸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말을 시작하면서 그 달콤한 '콜라’가 먹고 싶은데 ‘콜라’라고 말하면 준다는 엄마의 조건에 그냥 버티고 안 먹겠다고 했단다. 자존심이었는지, 그다지 간절하지 않았는지 여하튼 안 먹어도 상관없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성장기에도 삐쩍 말라 식욕이 크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충격적인 추억이 있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가 큰 냄비에 라면을 5개 넣으면서 물었다. "이건 다 내 꺼고, 넌 몇 개 먹을 거야?" 엥? 라면은 당연히 1인당 1개 아닌가? 친구는 5개를 아주 쉽게 먹었다. 지금도 난 라면 2개도 컨디션이 좋아야 겨우 먹는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이제 막 얼굴을 트고 친해지려는 시기에 함께 학교 앞 식당에 찾아가서 각자 메뉴를 골랐다. 그때 한 친구가 내 음식(아마도 순댓국)의 맛을 물어봤다. 내가 한 대답은 "음...
* 공감을 '강요'받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우리의 책에서 만나요!)
『공감받지 않고, 공감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