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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an 12. 2021

'꼰대'와 ‘라떼는 말이야'에 없는 것은?

‘지금’이다

    전성기를 구가하는 위인들의 성장 스토리를 듣는 것은 늘 흥미롭다. 하지만 꼰대의 ‘라떼는 말이야’를 들어주는 것은 늘 곤욕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이유는 바로 입에서 나오는 ‘화려한 과거’가 ‘지금’과 연결 고리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꼰대는 지금의 자신과 매우 달랐던 다시 오지 않을 과거를 추억하지만, 위인은 과거가 만든 지금을 살면서 그때 배운 것을 나누고 실제로 실천하며 여전히 새로운 순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듣는 우리는 이야기하고 있는 그 사람의 ‘지금’을 보고 판단하게 된다. 이 사람이 여전히 열정적인 지금을 살아가는지, 아니면 과거에 파묻혀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있는지. 그래서 누군가의 이야기는 감동과 흥분이 듣는 내내 떠나지 않는 것이고, 어떤 이의 이야기는 듣는 내내 떠나고 싶어 지는 것이다.


    이렇듯 같은 ‘라떼는 말이야’라도 전달하는 사람의 지금에 따라 무게가 차원이 달라진다. 지금을 열심히 꾸준히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려면 걸어온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하루하루가 지금을 만들었을 테니, 설명하려면 '지나온 지금들'을 전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전해져 의미가 있는 과거는 현재와 연결이 되어 있을 때만 빛을 발할 수 있다. 더 쉽게 말해 보자면 과거가 포함된 이야기는 ‘현재분사 진행형 (have been ~ing)’일 때만 가치가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계속해오는 그 무엇만이 지난날과 오늘 날을 모두 함께 비추어 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난 예전에 독서를 매년 100권 했었어. (근데 지금은 안 해)"와 "난 10년 전부터 매년 독서를 100권씩 하고 있어. (물론 지금도)" 어떤 과거가 더 울림이 있는가? 차원이 다르다. ‘한 때 했던 사람'과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게 아닐지.


* 공감을 '강요'받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우리의 책에서 만나요!)



『공감받지 않고, 공감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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