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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r 17. 2021

근데 책 내려면 뭐부터 해야 하지?

원고와 출간 기획서

책을 내려고 마음먹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만들고 싶은 책이 마구 떠올랐다. 그동안 이리저리 어지러이 써둔 게 많아 어느 주제로 도전할지 헷갈렸다. 이쪽저쪽 얄팍하게 손대놓은 탓에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었다. 모두 다 하고 싶다는 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과 같기에 하나를 골라야 했다. 잠시 놓았던 정신을 붙들고 처음 글을 쓰게 만든 나의 정체성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 믿고, 생애 처음 책의 모습으로 엮었던 <사라져야 할 아빠 육아>로 출간 도전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것만이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다른 글보다 꼭 그 글이어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원고' 먼저 써야 한다. 원고를 쓰는 것에 관해선 별로 내가 보탤  없다. 쓰기, 글쓰기,  쓰기를 다루는 말도 글도 책도 이미 넘쳐난다. 작가 지망생에게 남은  행동밖에 없다. 쓰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목차를 잡고 . 계속 꾸준히 자신의 리듬대로 해나가면. 차곡차곡 글이 모이면서 초안이 만들어진다. 간단하다.  쓰겠거나  써진다면? 여기에 대해서도  말이 없다. 사실은 별로 쓰고 싶지 않은 주제였는지, 아니면   없는 주제였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글을 위해 더디게 자판을 누르다 나가떨어진 것일지도. 뭐가 되었든지  모르겠다. 어쨌든 매일 꾸준히  줄씩이라도 쓰다 보면 언젠가 쌓인다는 것밖에 모른다. 순식간에 뚝딱 쓰는 방법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아마 없을 것이다. 어떤 일도 그런 식으로 되는  없다. ‘이게 될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자주 쳐들지라도 그냥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문득 원고를  때의 나를 돌아봤다. 갑자기 책을 쓰기로 했다고 해서 원래 글을 쓰던 모습과 달라진  없었다. 무엇을 가장 쓰고 싶고, 나만이   있는지 고민했다.  테마 결정했고, 거기에 필요한 작은 주제를 정했다. 구성에 맞춰 필요한 글을 스스로 약속한 일정대로 하루에  개씩 썼다. 기존에 매일 쓰던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쓰고 싶은 소망을 가득 담아 새벽마다 쓰는  변함없었다. 어차피   시간도 없고   자신도 없었다. 하루 전날 짬짬이 대강의 소재나 흐름을 구상해본다. 잠들기 전에 머릿속으로 이렇게 저렇게  써보다 잠이 든다. 다음  정해진 시간이 되면 집중해서 쓴다. 쓰기만 시작하면 다양한 선택지를 자연스럽게 고르며 흘러가서 그날의 종착지에 도착해 있다. 핵심은 앉은자리에무조건 끝내기. 초고가 걸레이든 말든   있는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한  완성한다. 이게 전부다. 지금  글도 그렇게 쓴다.


완성된 원고를 바라보며 처음 생각은 생뚱맞았다. 회사에서 방금   아주  보고서를 마주하고 떠오르는 의문과 같았다. '이걸 누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지?'  나도 다시 읽기 엄두가  나는 녀석을 차근차근 열린 마음으로 읽어줄 사람은 없어 보였다. 아내인 파랑은 혹시 가능할까 싶었지만 입장을 바꿔보니 괴롭힘에 가까워서 그만두었다. 막막함을 뚫어준  먼저 길을 나섰던 출간 작가 선배의 행보였다. 그들이 친절하게 남긴 기록 덕분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냈다. 장문의 보고서 앞에 붙는 요약본이 원고에도 필요했다. 원고 투고의 성패를 결정하는  장을 '출간 기획서'라고 불렀다. 회사에 질려 회사를 쉬고 있는데 회사를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당황했다. 직장에서 구르며 경험한 것이 돌고 돌아 도움이 되자 놀랐다. 직접 해보고 배워서 필요 없는  세상에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마주한   만의 모니터 화면 속의 문서 양식은 오래 써서 손에 익은 칼을 잡은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출간 기획서가 너무 쓰기 싫었다. 이미 질려버린 보고서 생각이 나서 거부감이 팍팍 들었다. 자유롭게 마음대로 써대다가 틀에 맞추고 목적이 정해져 있는 글을 적기 힘들었다. 또한 독자가 완벽하게 정해져 있는 '그의 눈에 들어야만 하는 '이었다. 치명적 특징이 고집스러운 심기를 긁으며 며칠을 모른 척하게 했다. 아무도 요구하지도 재촉하지도 않는 시간이 흘러갔다.


'이건 보고서가 아니야.  글을 읽어보게 만드는 마중물일 뿐이야'라고 스스로 설득했다.  이상 미룰  없기에 적당히 타협하며 삐딱한 시선을 거두고 적절히 마른 눈빛으로 다가섰.   벌써  개월이 지나버려서 어떤 마음과 의도는지 떠올리는  시간이 걸렸다. 원고를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내려놓고 눈을 감은  그때로 돌아가서 그때의 나를 만났다. 윤곽이 잡히자 눈을   출간 기획서의  항목을 머리에 넣고 버무렸다. 여기까지 진행되자 빈칸을 채우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 생활 10년의 문서 작성 기술이 빛을 발했다. 시간을 정해놓고 자리에 앉았다. 약속한 기한이 끝날 때쯤 완성돼있었다. 납기를 지키는 본능의 발휘였다. 몸에 진하게 배여 아직 그대로였다.



<출간 기획서 항목>

- 제목/부제
- 분야
- 키워드
- 핵심 주제
- 기획 의도
- 예상 독자
- 차별화 요소
- 저자 소개
- 목차
- 홍보/마케팅 전략
- 유사 경쟁 도서 분석
- 원고 분량
- 원고 진행 상황

*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Tip. 명색이 출간 도전기인데 뭐라도  정보 같은  들어있어야   아닌가?



완성된 출간 기획서 워드 파일을 바라보니 좀 밋밋해 보였다. 회사에서도 항상 그랬다. '좀 더 예쁘게 만들어 볼까?'라는 마음이 들고나면 다음으로 등장하는 녀석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PPT, 이름도 거창한 파워포인트. 여기까지 떠오르고 나면 멈출 수 없다. 빈 장표를 켜고 몸을 맡겼다. 얼마 뒤 보기 쉽고 깔끔한 출간 기획서가 완성되었다. 오랜만에 누가 시키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본 장표가 마음에 쏙 들었다. 이걸 보면 누구든 마음이 스르륵 녹고 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회사에서도 항상 그랬다. 수십 시간을 갈아 넣은 그럴듯한 그림을 보면서 만족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줄 알면서도 혼자 만족하며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계속 만지작거렸다. 결국에는 쓴소리를 스스로 던지며 강제 종료하고 덮었다. ‘바보야, 문제는 내용이야! 폰트나 색깔이 아니고.’ 문서를 PDF로 바꾼 뒤 더 이상의 피피티 놀이를 차단했다.


원고와 출간 기획서를 완성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기운과 의욕도 반이 된 기분이다. 이제 내 손에서 떠나보낼 시간이다. 대상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쯤 돼도 아무 데서도 연락이 없으니 결국 직접 상대를 정해서 보내야 할 운명인가 보다. (하하. 농담입니다. 절대 기대하지 않았어요.) 한 걸음도 가보지 않은 길을 마주하고 있으니 막막하다. 멈추면 앞으로도 알 수 없겠지. 다음은 출판사 선정과 원고 투고다. 시작했으니 끝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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