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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26. 2022

한 번 해봐서 더 피하기 어려운

불안과 기대

출간 계약을 오며 가며 알릴 기회가 생긴다. 첫 책을 아는 이는 처음이 좋아서 다음이 있을 수 있다며 축하하고 응원한다. 내가 뭐 하고 사는지 모르다가 갑자기 소개받으면 눈이 커다래진다. "네? 글을 써요? 책을 낸다고요?"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조금 미친 사람이려나에 가까운 눈빛을 놓치지 않는다. 당연한 반응이다. 글 쓰고 책 쓰는 건 제정신으로 하긴 좀 무리다. 쓰기 전의 나라면 옆에서 누가 그러는 걸 이해할 수 없었을 테다.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돈이 되나? 시간이 남나? 꿈이 있나? 멈추지 않는 질문을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퍼부었으리라. 따져보니 지금도 당장 대답하기 어려운 게 많다. 정확히는 남이 알아듣도록 설명할 자신이 없다. 관심 없는 사람을 이해시키는 건 엄청난 정성이 필요하다. 아마 누가 물으면 귀찮다는 듯 회피하며 '그냥'을 던지고 대화를 끊겠지. 잊을만하면 묻는 아내의 스포츠 규칙에 천연덕스럽게 모른다고 답하는 것처럼.


백년가약을 맺은 부부처럼 하나가  출판사에 애정이 많아진다. 남에겐 조금도 관심이 없는 내가 기꺼이 찾아서 둘러본다. 최근에 어떤 작가와 무슨 책을 냈는지 궁금해하며. 익숙한 이름과 제목이 보여서 살펴보니 무려 브런치북 대상을 받은 작가의 후속작이다. 동급이나 마찬가지라고 으쓱대며 아내 파랑에게 전하니 한마디 거든다. "대상  받아도 우리 신랑  척척 잘만 내네!" 그런  아니다.  받고 싶지도 않고 일일이 물어보면서  내는  많이 힘들다. 다음엔  쉽게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반응이 괜찮은 신작에도 눈길이 간다. 어쩐지 앞선 그들이 잘하면 다음 타자인 나도 잘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희망을 품는다. 책으로 만들어지기만 해도 좋겠다던 초심은 어디 가고 음흉한 속내를 키우고 있다. 인간은 참으로 변덕스럽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제목 후보안을 한참을 들여다본다. 돌이킬  없는 결정은 그야말로 압박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름 옆에 놓일 커다란 책의 제목은 강도가 세고 난도가 높다.  좋은 안이 있는지 머릿속을 헤집다 보면 엉뚱한 의문이 따라온다.  팔린 책은 제목 때문인지, 책이  팔려서 제목이 익숙해진 건지. 항상 논란이 되는 똥과 유명세에 관한 이야기와 닮았다. 똥을 싸서 유명한지, 유명한 사람이  똥이라 유명한 건지. 이름을 알리려면 똥을 먹으라고도 하던데.   더러운 생각으로 뒤죽박죽이 되면 괜히 깨끗이 씻고 나와서 원래의 고민으로 돌아온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제목을 정할 때만 되면 안절부절못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각자의 선택만 있다고 믿지만, 거기에 따른 결과를 독차지하느라 그렇다. 마음껏 고른 만큼 책임도 피할  없으니.


맨땅에 헤딩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생각의 출발을 한뜻으로 뭉친 같은 편의 고민 덕분에 편하게   있어서. 노하우와 센스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제목을 하나씩 바라보며 나만의 논리를 세워본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회사에선  반대 입장으로 상사에게 제안만 했었는데 받아보고 결정하려니 이것도 쉬운  아니다. 어느 자리에도 각자의 고충은 있는 모양이다. 겪기 전엔 자기만 제일 힘들다고 여길 . 몰래 혼자 입장을 정해두고 모른  파랑에게 슬쩍 묻는다. 역시나 다른 의견이다. 물어보지   싶으면서 머리만  복잡해진다. 답을 보내지 못하고 잠도  이룬  고민에 빠진다. 누구는 목욕 중에 외쳤다는 유레카를 모자란  덕분에 졸던 소파에 누워 뱉었다.


이거다 싶은 생각에 바로 답장하려다 멈칫한다. 혹시 더 떠오를지 모를 또 다른 아이디어를 기다리며. 하루를 미뤘지만 하나에 마음이 꽂히면 모든 신경이 쏠리듯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끝으로 어지간하면 내 의견을 따라주는 출판사가 만족하며 동의한다. 혼자 했으면 찾아가지 못했을 결론. 주고받는 과정에서 만난 귀한 제목을 마주하자 벅차오른다. 정하면 바꾸기 싫어하는 고집 덕에 이대로 갈 공산이 크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눈 감고 표지를 그려보며 실실댄다. 오래 기뻐할 틈 없이 하나가 부러지자 다음이 찾아온다.


새롭게 글을 써야 한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있다고 밖으로도 안으로도 떵떵거렸지만, 홀로 백지와 남자 평상시보다  두근거린다. 기존의 원고에 누가 되지 않으면서 겹치지 않고 의미를 더할  있는 내용을 채워야 한다. 책의 전체 완성도를 높여줄 부담 백배인 글을 써야 한다. 이미  썼다고 생각한 책에 새로운 글을  쓰는  보통 일이 아니다. 평소엔 하나의 글을   하루 고민하고 다음  쓰고 만다. 나중에 고치는  시간이 되는 대로. 이번 추가 원고는 고민만 며칠씩이다. 쓰다가 멈추고 다시 돌아가기를  번이나 반복한다. 써보지 않던 독자에게 직접 말하는 식이라서 이렇게 하는  맞나 싶은 의문도 크다. 결국은 시간이 해결한다. 읽고  읽다 보면 익숙해져서  썼다고 착각하는 단계에 이르면 작업은 마무리된다.


이대로 끝낼까 말까 스스로 가위바위보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진다.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뜻밖의 따뜻함을 만난다. 어떻게 알았는지 첫 책 편집자의 응원 메시지가 도착했다. 두 번째 책 계약 축하한다며 어떤 책일지 궁금하고 나중에 사서 사인받고 싶다고. 날카로운 날 모두 받아준 포근한 말투. 우린 서로에게 첫 작가이자 첫 편집자였는데 그때의 기억이 참 좋게 남아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다. 그도 새삼 그때가 좋았다며 행운이었다고 하니. 수없이 읽으며 기운을 차렸던 마지막 멘트를 굳이 남겨보자면 이렇다. "작가님의 글은 잘 읽히고 설득력이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요!"


예상치 못한 관심을 받기도 한다. 여기저기 글을 올려대며 동네방네  번째 책을 만들고 있다고 외치지만, 남이 직접 내게 전하는  느낌이 다르다. 진심의 순도가 100% 같은 다음 책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표정 관리가  된다. 단순히 기쁘거나 기분 좋은 차원이 아니다. 뭔가  밑에서 뜨거운  올라오다  하고 막히는 느낌이랄까. 살면서 누군가를 기대하게 만든 적이 얼마나 있을까. 이번 작품을 기대해 달라는  스크린에 나오는 얼굴 알려진 배우 하는  아니던가.  명이든  명이든  것을  말고 누구라도 기다려준다는  다신 겪지 못할 경험이다. 어쩔  몰라 하며 들썩인다. 힘찬 에너지를 받아 시원하게 출판사로 더는 못하겠다며 새로  글을 보내버린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믿는다. 회사에서도 일에 집중  하고 친분을 통해 대충 비벼서 넘기려는 사람이 제일  보기 싫다. 능력으로 보이는  아닌 인맥으로 때우는  밉상이다. 일을 논할 때는 부차적인 것들  걷어내고 온전히 집중해서 사안을 다루어야 한다. 이런 태도는 가끔 선을 넘어 무례하게 보일  있다. 추가 원고를 놓고 출판사와 벌인 최근 논쟁이 그렇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궁금해서 따지듯 물었을 뿐이다. 돌아오는 설명이 납득이 되지 않아 점점 목소리가 올라간다. 흥분해서 반복하는  입장을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들어주는 상대방의 인내심에 놀란다. 양쪽 모두 충분히 꺼내 보이고 나서도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다. 누가 봐도  이거였다면 애초에 의견이 갈리지도 않았을 테니. 남은  선택이다. 오롯이 내가 해야 하는.


이미 정해진 마음을 자꾸 살핀다. 내일이 되어도 며칠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스스로 낯설어서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 어떤 게 켕겨서 나답지 않게 휙휙 정하지 못하냐고. 어차피 그렇게 할 거면서 시간을 끄는 이유가 뭔지. 불안이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하다. 단순히 지금 처한 갈림길에 대해서가 아니다. 이 책을 만드는 과정이 전부 그렇다. 평생 낼 수 있는 책이 몇 권이나 될까.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다시없을 기회를 잘 살려보고 싶어서 불안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책을 하게 될까 불안하고. 방법은 모르지만 멋지게 만들고 싶은 바람이 너무 커서. 아무리 한배를 탔어도 내가 가진 간절함 만큼일 순 없다는 확신의 선을 그어놓아서.


이유 없이 모든 게 다 불안하다. 그렇다고 해소하기 위해 열심히 글을 파고들며 이리저리 고치는 것도 아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을 새겨두고 돌아가면서 확인하고 있다. '그렇지? 이럴 수도 있는 거지?' 가뜩이나 고질적 의심병 환자인데 넘치는 불안으로 날개를 단 셈이다. 아무래도 어설프게 알아서 그런 모양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처음엔 이러지 않았다. 모든 게 새로웠고 신기했고 감사했다. 한 번 해봤다고 이 난리를 벌이고 있다. 수박 겉을 핥아보니 좀 더 단맛이 나는 속을 알 것 같다는 무모한 자세를 취한다. 저번에 해보니 이번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믿어버린다. 대체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경험이 정해진 진리인 양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 괴롭힌다. 전보단 더 잘하고 싶다는 순수한 희망이 욕심인지 아닌지 나조차 헷갈린다.


불확실한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없다. 알지만 그래도 뭔가 확률을 높일 뾰족한 수가 있지 않을까 머리를 싸맨다.   있는데 못한  있으면 절대  되니까.   없는 고민에 아파하던  불현듯 불안의 원인을 찾는다. 기대다. 커지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던 녀석이 훌쩍 자라 있다. 진행될수록, 하나씩 단계를 밟아갈수록, 책의 모양을 갖춰갈수록 몰래몰래 커왔나 보다. 기대엔 답이 없다. 미치지 못해 실망하든 미쳐서 만족하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해줄  있는  없다.  자라 안에서 콕콕 찔러대는 녀석이 결정을 내릴 때마다 걸고넘어져 왔다. '생각 잘한  맞지? 이렇게 하면   되는  맞지? 책임질  있는 거지?' 무엇으로도 달랠  없는  안의 못난이를 뒤로하고 진작에 정해진 답을 출판사에 전한다. 나만의 옳은 최선이라고 믿으며. 아무도 모르는 결과는 기대에게 넘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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