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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ug 03. 2022

알리지 않으면 알릴 수 없는

출간 후유증

출간하고 나면 제정신이 아니다. 온갖 생각이 날아들어서 그렇다. 궁금하고, 기대하고, 좋아하고, 실망하고. 정신 나간 사람이 된다. 뛰쳐나가고 남은 정신의 보존을 위해 울타리를 치고 격리하면 곧 불안해진다. 나 말고는 아무도 관심이 없을 텐데 나만 살겠다고 나마저 돌아서면 내 책은 어찌하나 싶어서. 곧 자리를 박차고 나와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자식과도 같은 책을 품는다. 덜덜 떠는 녀석을 안고 달래며 떠나지 않겠다 다짐하곤 다시 힘차게 주위에 알린다. 여기 이런 책이 나왔다며 얼마나 재밌는지 아느냐고. 속는 셈 치고 한번 읽어보라고. 애쓰다 보면 괜히 주워들었던 말이 떠오르며 괘씸해진다. 둘째는 저절로 큰다더니 다 지난 뒤의 미화된 추억이라며 씩씩댄다.


책이 팔리길 바란다는 건, 마치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마음에 가깝다. 확률이 극악이다. 그나마 확률이 0이 아니라서 다행인 걸까. 분석에 특화된 제 버릇 개 못 주는 직장인은 골치 아픈 특이 사항을 발견했다. 제목에 들어있는 '고민'이다. 타이틀에 떡 하니 붙어있는 '고민'때문에 이 책을 읽을지 말지 '고민'하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한다. 제목을 심각하게 '고민'해서 만든 건데 이제 와 바꿀 수도 없어 '고민'이다. 책은 안 팔리는 게 당연하단 걸 알 때가 되었는데도 무분별한 초보 작가는 납득을 못 한다. 한 번 해보고도 이번엔 다를 거라 괜스레 믿어보는 셈이다. 그러다가도 없어서 못 파는 유명 작가의 책을 보면 '아하, 내 책이라 안 팔리는 거구나!'라며 바로 인정한다.


책 읽는 사람이 넘쳐서 전체 규모가 크기라도 하면 요행이라도 바랄 텐데 그것도 여의찮다. 독서하는 사람을 찾는 게 일이다. 너무도 책을 읽지 않기에 우린 책 읽기를 향한 환상을 가진다. 무조건 좋은 일이며 다른 활동보다 나은 거라는 치우친 평가를 쉽게 해 버린다. 한 방송에서 엄마와 아이가 밥을 먹는 모습이 나왔다. 둘이 마주 보는 식탁에서 아이는 옆에 책을 두고 읽으며 먹었다. 지켜보는 출연자는 감탄과 칭찬 일색이었다. 밥상머리에서까지 책을 가까이하는 자태에 놀라며. 눈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아이는 계속 바닥에 음식을 흘렸다. 앞에 앉은 엄마도, 지켜보는 패널 누구도 한눈 팔린 행동을 나무라 하지 않았다. 이걸 보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우리가 책을 정말 안 읽는구나. 얼마나 흔하지 않고 귀하기에 자연스러운 까방권을 둘둘 메고 다닐 수 있구나. 누구나 흔히 하는 유튜브 시청이었다면 이렇게 흘러가진 않았을 텐데. 역시 독서는 아무나 하지 않는 고고한 행위라고 하릴없이 받아들인다.


슬프지만 책 읽는 사람을 만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읽는 사람은 나름의 방향과 고집이 있다. 유한한 시간 탓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여기 끼어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아무리 친분이 있어도 소용없다. 독자와 작가의 관계가 아니면 어렵다. 좋아하는 작가라면 읽지만, 아는 지인의 책이라면 읽기 어렵다. 심지어 서로의 글을 읽으며 따뜻한 격려를 주고받던 사이라도 책이 나왔다고 덥석 사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읽어본다는 흐릿한 말은 "이미 인정받은 다른 책을 읽느라, 검증되지 않은 당신 책을 읽는 날은 아마 오지 않을 겁니다."와 다르지 않다. 이쯤 되면 아쉬운 마음에 괜한 생각까지 한다. 단단하게 받쳐주는 각종 모임을 많이 들어 놓을 걸 그랬나.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취미 모임, 아무튼 모임. 서로의 편이 확실해서 묻지도 따지지 않고 일단 사주는 사이. 글 쓰는 시간도 모자라서 아쉬워하는 마당에 이건 아니라며 잘못 고른 해결책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평소엔 아무 말 없다가 책만 내면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관심을 받아도 불만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받는 기분이 좋지 않은 걸 어쩌나. 출간이란 행위, 즉 책을 냈다는 데만 집중한다. 써오던 글이나 책을 낸 계기와 과정, 결과물인 책은 그의 알 바가 아니다. 그저 책을 낸다는 사실만 놀라워할 뿐이다. 어떤 이는 내 책을 사서 읽는 사람에게 서평을 올려달라 조른다. 읽을 생각은 없는데 도대체 뭔 책을 냈는지는 궁금한 모양이다. 불쾌한 상황을 지켜보며 출간이 얼마나 저 너머 세계에 머무는지 알게 된다. 차라리 뭘 썼길래 책으로까지 나왔을까 살펴보면 좋겠지만, 이런 사람은 앞으로도 딱 이 정도로 머물러 있을 테다. 애매하고 삐딱한 시선도 한 명의 팬이 아쉬운 초보 작가에겐 과분하니 넙죽 고마워하며 받아야 할까. 과연 언젠가 상황이 달라지면 이 사람이 내 책을 읽으려나.


알리지 않으면 편하다. 실망할 게 없으니까. 무관심을 견뎌낼 일도, 노력 대비 처참한 결과를 지켜볼 일도 없다. 읽씹, 자동 응답 축하, 이러고 노는 애 취급, 사서 읽었는지 묻고 싶은 호기심까지 극복할 게 사라진다. 출간이라는 아픈 과정을 지나고도 남아있는 후유증을 완벽히 떨쳐 내려면 나까지 외면하면 된다. 형식적인 출간 공지를 대강 마친 뒤, 더 이상의 알리기를 그만둘까 고민했다. 아무리 나의 글과 책을 사랑한다지만, 남이 귀찮아하는 게 뻔히 보여서. 낯이 두꺼운 편이어도 지속된 차가움으로 깎인 탓에 예전만 못하다. 기대와 반응의 차이는 과학인 걸 알아도 상처는 남는다. 손쓸 수 없는 타인의 응답을 묵묵히 받아내면 마음은 약해진다. 관두고 싶은 생각이 턱밑까지 쫓아오자, 네 마음대로 하자고 할 뻔했다.


처음이 아니라서 좀 나을 줄 알았다. 오히려 첫 번째가 나았다. 뭐가 뭔지 모른 채 멈추지 않고 부풀던 그땐 지칠 줄 몰랐다. 책이 나왔다고 말만 하면 빠짐없이 읽어줄 거라 굳게 믿고 달렸다. 첫 경험의 기쁨은 마취약처럼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의 뾰족함을 버티게 했다. 정신 말짱히 차리고 맞이한 두 번째는 다르다. 허공에 대고 외치는 걸 알고도 해야 하는 느낌이랄까. 헛수고에 가까운 걸 알지만, 그렇다고 멈추면 영원히 아무도 모르게 되니 별수 없다. 설령 공허해도 헛헛한 발버둥과 몸부림을 그만두기 어렵다. 책을 쓴 나 말고는 대신해 줄 대역도 없으니. 홍보 글을 쓰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알리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신세를 확인하느라 스스로 짠하다. 차라리 반응이 있든 없든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게 좋다. 반대편의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은 즐겁지 않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꾸역꾸역 알리는 통에 그나마 한 권 한 권 힘겹게 팔리는 경험은 유쾌하지 않다. 하고 싶지 않지만 안 해서 묻히는 게 더 싫어서 멈출 수도 없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어쩔 수 없이 하면서 잊을만하면 책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다.


쭈뼛쭈뼛 꺼내는 책 나왔단 소식에 대답 없는 너도 많다. 말이 없으니 도통 눈치를 챌 수가 없어 막막해하다 포기하고 떨어져 나온다. 다행히 기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건 이를 웃도는 밝은 대답 덕분이다. 아주 짧은 말로 모든 걸 전하기도 한다. "주문 완료, 구매했음, 사서 볼게." 때론 긴말로 놀라게 만든다. 제목이 좋다는 둥, 목차가 알차다는 둥, 글을 이렇게 잘 썼냐는 둥. 무턱대고 지지하는 그들의 따뜻함에 온몸이 달아오른다. 뜻밖의 정성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들기도 하는데, 여기저기에 알려주려 애쓰는 모습이다. 나라면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굉장한 몸짓에 뜨거운 기분이 흘러나온다. 어쩌면 이래서 무모한 알림을 멈추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조그맣게 접어둔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누군가 전해줄 기쁨을 기대하며.


울퉁불퉁 예민한 내게 신경 쓰이는 반응이 하나 있다. "벌써 두 번째 책!" 분명 반가움과 경탄이 섞인 표현이다. 작년에 첫 책을 냈는데 일 년 만에 다음 책을 냈으니. 쓸데없이 곰곰이 되새기며 고통 속에 하루도 빠짐없이 쓴 시간을 나 말고 모른다는 아쉬움에 도달한다. 첫 번째 책은 5년 동안 쓴 육아일기, 2년의 글쓰기와 초고 작성, 반년 투고, 반년 추가 원고 집필 및 수정을 통해 나왔다. 이번 책은 10년의 직장 생활을 담기 위해 2년 동안 기획만 했고, 반년 동안 초고를 썼으며, 반년 동안 투고와 수정을 거쳐 만들었다. 옆집 아들이 입대와 동시에 제대한 것처럼 다른 이의 지난한 과정은 알기 어렵다. 하루아침에 뚝딱 나온 취급은 조금 억울하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썼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건 나만의 진실이다. 잠잘 때는 다음날 글을 구상하며 머리를 싸매다 눈을 감고, 일어날 때는 오늘도 쓸 수 있을까 두려워하며 자리에 앉는다. 그렇게 보낸 값진 하루하루가 겨우겨우 만들어낸 걸 나만 안다. 첫 번째 책을 읽기도 전에 새 책이 나왔다는 지인의 말에 원래 쓰는 속도가 읽는 속도보다 빠른 법이라고 웃으며 답한다. 매일 쓰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해보지 않은 이에게 이해시키긴 쉽지 않다.


한배를 탄 출판사도 어떻게든 좋은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나만큼 온 힘을 다한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책을 퍼뜨린다. 서평단도 운영하고 책도 나눠주고 광고도 하면서. 세상에서 나 다음으로 내 책이 잘 되길 바라는 게 확실하다. 덕분에 읽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간다. 찬사를 날리는 리뷰를 보면 동공 지진, 마음 울렁, 감동 철철 꼴이 말이 아니다. 본인 이야기 같다는 공감부터 글 잘 쓴다는 칭찬까지 하나씩 곱씹어 즐긴다. 드라마 <미생>처럼 재밌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같은 팬으로서 가슴이 한껏 부푼다. 내가 쓴 글이 필사된 흔적을 접하면 머리를 세게 맞은 듯 정지한다. 글이 글로 생생하게 전해져 이어지는 기분은 충격이다. 하나씩 새겨진 귀한 소감은 앞으로 글을 쓰면서 종종 꺼내 먹을 보약이다.


출간 전에 출판사와 책 홍보를 논의했다. 대부분의 활동은 출판사의 몫이었고 내겐 하나의 미션이 떨어졌다. 운영하는 SNS 채널에 정기적으로 노출해달라는. 아직 날 모르는 출판사에게 다른 건 몰라도 셀프 홍보는 걱정하지 말라 했다. 나중엔 그만하라고 애원해도 멈추지 않을 거라고. 첫 번째 책을 아직도 종종 알리는 걸 알면 까무러치려나. 문제는 깜빡하고 기대를 놓쳐서 실망에 얻어맞는 실수지, 알리는 열정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심지어 교보문고 영등포점 <내책내소> 전시는 국제전화로 신청했다. 집에도 한 번 건 적이 없었는데. 넘치는 의욕은 합리적 핑계로 흘러가기도 한다. 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조금 달랐을 거라는 구차한 변명. 집마다 찾아가 문 두드려 팔았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어처구니없는 상상은 이곳에 없었으면 책을 못 썼을 거라는 올바른 이해로 끝이 난다.


좁은 인간관계가 금세 동이 나 더 이상 알릴 곳이 없어지자 지나간 인연이 떠올랐다. 한때 치열하게 쓰고 읽던 오랜 문우. 만난 적은 없지만 단지 글 하나로 서로를 느꼈던 끈끈한 사이. 그때의 따스함이 그리워 편지를 썼다. 난 이곳에 남아 계속 쓰고 있다고. 과거에 당신에게 받은 사랑 덕에 아직까진 괜찮다고 고맙다며. 머지않아 그 이상의 뜨거움으로 돌아왔다. 새벽마다 써 온 꾸준함과 열정을 단박에 알아줬다. 담백한데 시원하고 올곧은 직선 같은 매력을 지녔다고 했다. 따뜻한 시선, 날카로운 성찰, 귀가 솔깃해지는 심지 꼿꼿한 개성을 품었다 전했다. 기대를 감췄다 했지만 은근히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만큼은 글을 함께 썼다는 이유로, 막연하게. 어쩌면 그토록 목말랐던 건 그깟 책이 아닌, 글에 대한 애정과 인정이 아니었을까.


책은 나온 지 2주 만에야 손에 쥘 수 있었다. 묘했다. 한 손에 들어오는 도톰한 종이 덩어리를 살금살금 살폈다. 난 왜 이게 만들고 싶었을까. 띠지와 표지부터 어색한 가격 표시까지. 속은 당장 보고 싶지 않아 미루었다. 눈이 빠져라 쳐다보던 기억이 아직 남아서. 내 것 같지 않은 녀석을 멍하게 뚫어보다 얼마 전 벌어진 일이 떠올랐다. 5년 전에 읽은 책을 뒤늦게 인스타에 서평을 올렸는데, 작가께서 찾아와 하트를 눌러주고 팔로우까지 했다. 나는 몇 년 후까지 찾아다닐까 하며 피식 웃었던 기억이다. 직접 지은 책이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오랫동안 머물게 되는 걸까. 자식은 커도 계속 자식이라는 말로 설명해야 할 테다. 어렵게 낳은 책을 쉽게 떠나보낼 순 없겠지. 손에 들린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기특하고 잘나 보이는 아이를 지치지 말고 계속 알려야겠다. 알리지 않고는 알릴 방법이 없으니. 책을 낳았다면 책임져야 하니까. 싸워야 할 건 밖의 무관심이 아니라 내 안의 불안한 기대다. 기대라는 기름기를 쏙 빼고 담백하게 가보자.



교보문고 영등포점 <내책내소>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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