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쓰기 위해
두 달이 되어 간다. 큰일 날 만한 소식이 지금까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없는 게 맞다. 작가와 최측근만 알고 사라지는 대부분의 책과 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뻔하고 지겨운 대세 따르기 인생길을 벗어나고자 애를 쓴 게 책 쓰기였는데, 자연스럽게 다시 대다수에 파묻히니 아이러니하다. 책이 잘되면 기분 좋게 고민 없이 그만두려던 회사원의 앞길이 모호해졌다. 어쩌자고 돌아갈 직장 상사에게도 퇴사를 고민한다고 당당하게 알렸을까. 좀 튀어보려던 어설픈 몸놀림으론 틀에 박힌 운명을 떨쳐내긴 역부족이다.
어느 순간 느꼈다. 이번에도 별일이 없겠구나. 처음의 학습 덕분인지 지난번보다 더 빨리 단념했다. 훨씬 이른 시점부터 순위와 판매지수가 설치는 온라인 서점에 발길을 끊었으며, 실시간으로 눈 씻고 찾아 헤매던 리뷰도 아내가 알려주면 읽어본다. 안 팔리고 안 읽힌다. 조용한 나날이 정확히 말해준다. 혹시라도 놓쳐버린 기적을 만나고 싶은 속마음도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먼저 나서서 샅샅이 확인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고. 있다면 기대와 실망의 차이만큼 상처받는 나뿐이란 걸. 차라리 모르는 게 백번 낫고, 좋은 소식은 피해 다녀도 들릴 거라고. 확실히 말라버린 바닥을 아무리 후벼 파도 사라진 희망이 솟구치진 않는다고. 머리로 깔끔하게 이해가 되니 간단했다. 쉽게 멈출 수 있었다.
만날 때마다 책에 관해 묻는 이가 있었다. "책을 내신다면서요? 꼭 사겠습니다." 그저 보내주는 관심이 고마웠다. "책은 잘 나왔나요? 꼭 읽겠습니다." 먼저 꺼내기 어려운 말을 해줘서 감동했다. "책은 좀 팔리나요? 반응이 어때요?" 물어주는 반가움에 당연히 읽었다고 믿었다. 마음을 열고 편하게 이러니저러니 책 내용에 대해 말을 꺼냈는데 잘 모르는 눈치다. 서운함을 누른 채 읽고 나서 이야기하자고 농담처럼 던지니, "다음엔 꼭 가져올게요. 눈치받으니 서럽네요." 그 후로는 어떤 말도 없다. 그에겐 그때그때의 대화 소재거리였을 뿐이다. 진심과는 거리가 먼 단지 가십거리. 자신이 그런 말을 한지도 모를 테다. 책 제목조차 모를지도. 입에 발린 소리로 치장한 사람을 처음 본 게 아니건만, 괜히 약점 같은 내 책이 잡혀 깜빡 속았다. 돌아보니 이것도 빠른 내려놓기를 도운 경험이다. 남은 내 책에 관심이 없다는 깨우침.
강제로 담담함을 갖추고 나니 편해진 게 있다. 글을 쓰고 나서 반응에 휘둘리지 않는다. 애지중지 모아 만든 책을 마음에서 떨어뜨리고 나니 글은 더 쉬워졌다.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결과와 흔적을 확인하지만 별 감흥이 없다. 예전처럼 '에이, 생각보다 별론가?' 하며 시무룩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쪽으로 뜨거우면 놀란다. 역시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거구나 하면서. 영원히 알 수 없을 독자의 취향을 신기해하며 실망하기를 중단했다. 부풀던 빈자리를 채우려는지 다른 호기심이 커졌다. 요새 부쩍 꾸준히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생겼다. 이웃도 아니고, 팔로워도 아니고, 구독자도 아닌데 꼬박꼬박 좋아요를 눌러 준다. 뭘 하든 본인의 자유지만 별도의 알림 설정 없이 어떻게 빠짐없이 읽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URL 주소로 페이지 즐겨찾기라도 해둔 건가. 몰래 읽고 가면 될 것을 꼭 왔다 갔다고 표시하는 이유가 뭘까. (이거 그린라이트인가요?)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내 글이 재밌긴 한데 내게 속한 채로 챙겨가면서까지 읽고 싶은 건 아니고, 혹시 내가 먼저 당신을 좋아해 주면 달라질지도 모르는, 뭐 이런 사이인가. 근데 어쩌나, 당신 글은 내 취향이 아닌데.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을 접하고 나니, 다시 책에 대한 오묘한 골칫거리로 생각이 넘어간다. 출간 소식을 알리면 축하받는다. 글을 쓰고 있고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부러움도 함께 던진다. 대게는 내 글을 좋아해서 즐기는 이다. 이 정도 요소를 두루 가졌다면 책이 궁금해 읽을 법도 한데 꼭 그렇지는 않더라. 글도 재밌고 책이 잘 되길 바라지만 딱 거기까지다. 한 발 내어 힘을 보태는 선을 넘지 않는다. 응원은 해도 직접 나서긴 싫은 마음인 걸까. 이걸 팬과 그 정도까진 아닌 사람의 차이로 이해하면 되는지. 악감정은 없다. 진짜 알고 싶어서 그런다. 한 스푼이 모자란 거라면 무얼로 채울 수 있는지. 애매한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더 가깝게 만들 수 있는 건지. 너무 질척대면 못 참고 아주 떠나려나.
한풀 꺾인 채 오만가지 상념에 뒤덮인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에선 열을 내고 있다. 출판사는 호기롭게 광고를 진행했는데, 처음 요청한 업체에 대차게 까였다. 신인 작가 책은 다루지 않는다는 거절 사유에 한동안 멍했다. 정당한 비용을 치른다고 해도, 유명세가 있어야 가능한 현실이 차가웠다. 광고하는 책을 은근히 무시했었는데 그럴 게 아니었다.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처지가 되자 분수를 알게 됐다. 종이책을 내고 나면 전자책 문의가 종종 있다. 출판사의 사정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한결같았다. 꾸준하게 팔리는 책만 기회가 주어진다. 잡히지도 않는 디지털 북을 괜히 책도 아니라며 깔봤는데 민망하다. 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 아내는 다음 책이 나오면 본인 퇴직금을 팍팍 써서 전국 서점에 쫙 깔아주며 제대로 한 번 밀어주겠다고 한다. 할 말이 많았지만 고마워하며 웃고 말았다.
먹먹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한쪽의 손 쓰지 못한 답답함 만큼 반대쪽에선 진하게 향기를 풍겼다. 긴가민가 알 수 없게 흩뿌리지 않고 몸에 가득 밸 정도로 흐드러졌다. 먼저 사진으로 다가왔다. 손에 들린, 도서관에 꽂힌, 서점에 놓인, 책상에 펼쳐진 내 책이 찍혀 성큼 날아왔다. 가까운 사이의 정성 담긴 후기가 뒤를 이어 올라왔다. 얼굴을 마주했든 못 했든 관계없이 읽고 느낀 마음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문장이 좋고 공감되고 직장인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감상엔 손을 맞잡은 듯 후련해진다. 가끔 의외의 손길에 놀라기도 했는데, 표현해준 용기 덕분에 제대로 마음에 새길 수 있어 고마웠다.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따사롭고 자연스러운 서평을 마주하면 전생에 쌓은 덕을 괜스레 헤아리게 된다.
나 혼자 살겠다며 마음을 진작에 닫은 날 흔드는 세찬 움직임도 있었다. 제 일처럼 챙겨주는 교회에선 먼 이곳까지 책을 주문해 작가가 직접 사인할 기회를 주었다. 받는 분 이름 옆에 서명하는 짧은 순간도 부끄러운데, 책을 가운데 두고 몇 시간이나 이야기 나누는 북토크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해보면 바로 알 텐데 그게 언제이려나. 혼자 쓰는 글처럼 홀로 말하길 즐기는 날 금세 알아채곤 카메라 앞에 앉힌 인연도 있었다. 매일 쓰며 사는 지금의 내 삶을 물었고, 반갑게 답했다. 덕분에 글만큼이나 말도 잘한다는 칭찬을 여기저기서 들었다. 정작 내 마음에 남은 건, 며칠 동안 잠 못 자며 찍어주고 편집하고 널리 알려준 그의 열정이었다. 내게 주는 선물이라는 그의 진심이 잊히질 않는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신청한 교보문고 영등포점 <내책내소> 행사는 놀랍게 끝났다. 스무 권이 당당히 전시된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고, 홍보와 판매가 잘되면 기간이 연장된다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괜한 기대는 마음을 아프게 하니까. 14일간의 즐거운 장면을 추억으로 담고 있던 마지막 날, 믿을 수 없는 메일을 받았다. 판매량이 많아 1주일 연장 전시를 결정하게 되었다는. 누군가 방문했고, 책을 구매했다. 행동으로 보여준 호감이 메마른 가슴을 강타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겠다.
따스한 시간은 날 괴롭힌다. 감사하는 마음과는 상관없이. 편하게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애써 단단하게 여미어 정리해둔 속을 햇살을 비춰 풀려는 듯 뜨겁게 만든다. 따끈함이 지나가고 나면 정신 놓고 두근거리는 내 안을 달래느라 며칠을 써야 한다. 크게 변한 건 없으니 정신 차리라고. 문을 열어두다 집 나간 기대가 불쑥 들어오면 큰일이라고. 잠시 불어온 바람에 작은 심지라도 살아날까 문단속을 철저하게 한다. 위기가 오는 건 주기적으로 책을 알리는 순간이다. 사심 없이 기계적으로 관성처럼 행동하는 데 익숙하다. 위험천만한 일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출판사와 함께 만든 책이라는 점과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점. 감정 없이 움직이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만 하기로 한 일은 해야 하는 병이 있어 다행이다.
물론 힘겨운 균형 잡기를 계속 이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럴 땐 신경을 쏟을 다른 곳이 필요하다. 수많은 선배 작가가 출간 뒤에 더욱 글쓰기에 매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벌어지는 일을 마냥 보고만 있다간 자칫 쓰기 싫어질 수 있으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안이다. 앞선 자가 닦아 놓은 방법이 내게도 잘 맞는다. 새로운 구상을 마구 펼치며 쓰고 싶은 글을 쓸 때 숨통이 트인다. 쓰기 싫은 홍보 글 보단 훨씬. 어쩌면 이래서 한 번 책을 낸 사람이 계속 다음 책을 만드는 게 아닐까. 밖을 쳐다보지 않고 글에 고개를 처박았더니 다음 책이 또 나오고 마는.
내려놓은 까닭을 오직 온전하게 마음을 보전키 위해서라고 하기엔 궁색하다. 그렇게라도 지키고자 했던 의미 있는 무언가 있어야 말이 된다. 복잡할 땐 처음을 떠올린다. 이 책이란 녀석의 시작을. 나는 두려웠다. 쓰지 못할까 봐. 쓰고 싶어 썼고, 쓰다 보니 책이 되었다. 더 많이 닿기를 바랐던 마음으로 시작한 출간의 포부가 쓰지 않을 이유로 돌아오고 있었다. 읽히지 않을 글을 왜 쓰냐고 반문하며. 답을 해야 한다. 나는 왜 쓰는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쓸 거라면 흔들리지 않을 중심이 필요하다. 나를 더 알고 싶다. 다른 이는 나를 몰라도 나는 나를 이해하길 원한다. 남이 읽어주지 않아도 내가 쓰는 원천이다. 쓰고 나서의 만족감이 그랬다. 숭숭 비어있는 내 안의 틈을 조금씩 메워가는 기분이 좋았다. 다 채울지 모르지만 멈추고 싶지 않다. 단단하게 버티며 나를 쓴다. 타인의 인정을 앞세우지 않고 나만의 자세를 유지한다. 계속 쓰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