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변태의 합작품
그때 꼭 써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감정이 휘발되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 안 날 수 있는. 나중에 멀리서 크게 보면 별일 아니었다며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어쩌면 대부분의 일상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착 가라앉는지 모른다. 지겨움에 취약한 동물이라 이미 심심해진 예전 일보단 눈앞에 있는 생생함에 더 흥분한다. 피할 수 없는 처지라서 할 수 있는 건 순간의 기록뿐이다. 딱 그 안에 깊숙이 파묻혀 느끼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덕지덕지 진득하게 묻혀 놓는. 지금 남기는 글이 그렇다.
'쓱 사악' 날카로운 칼 가는 소리를 내며 본격 편집에 들어갔다. 아니, 바로 못 들어갔다. 제대로 썰어보기도 전에 시작과 동시에 막혔다. 이유는 더 날카로운 내 이미지 때문에. 편집자에게 향후 일정을 물어보며 너무 마감에 쫓기지 말고 '넉넉하게' 시간을 갖자고 건넨 인사가 발단이었다. 정해진 계획이 있던 출판사는 당황했고 편집 전에 나를 먼저 설득해야 했다. 가만히 설명을 들어보니 내가 일정을 무시하고 더 많은 교정 기간을 달라는 요구로 이해했던 모양이다. 전혀 아니었다. 계획된 일정도 몰랐으며 단지 마음을 넓게 가지고 여유롭게 해 보자는 궁디팡팡 멘트였을 뿐이다. 몇 시간 만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갔지만, 하기도 전에 휩싸인 오해와 의혹이 억울했다. 옆지기 파랑에게 사정을 전하니 공감 대신 상황을 이해했다. 아무래도 당신이 워낙 한마디 한마디가 강렬하고 세서 무서워하는 거라고. 반박하려다 참았다. 이 사람도 날 두려워할까 봐.
상해버린 감정은 작업에 불필요해서 멀리 던져놓고 집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빈틈이 전혀 없던 원고에 칼질할 곳이 널려있었다. 역시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인가. 고치려 하면 필요한 부분이 튀어나오는 식으로. 아마 그전엔 고치기 싫었던 모양이다. 다 아는 이야기를 다시 읽는 것도 힘들지만, 좀 더 나은 이야기로 만드는 건 더 고통스럽다. 다행인 건 이 고생을 나 혼자 하고 있지 않다는 위안이었다. 반대편에서 촘촘한 눈빛으로 내 글을 보고 있을 편집자를 떠올리며 기운을 냈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부푼 마음을 간직했다. 처음으로 받아볼 전문가의 세밀한 의견이 너무도 궁금했기에.
재밌다고 했다. 다른 말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모르겠고 이것만 꽂혔다. 재밌으면 장땡이다. 재미없으면 말짱 황이고. 세상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누가 재미없는 책을 붙잡고 있을까. 일단 재미가 있어야 말이 된다. 기분 좋은 상태로 한 줄 한 줄 무엇이 바뀌었는지 천천히 읽었다. 가장 많이 배우는 시기다. 같은 의도를 담은 다른 문장을 볼 때 확실하게 각인된다. 모든 사례가 내가 쓴 글이다 보니 이보다 더 완벽한 글쓰기 수업은 없다. 어쩔 줄 몰라 내버려 둔 글자 더미를 기가 막히게 살려낸 곳을 보면 감탄한다. 의도와 필체를 살리되 매끄럽게 변한 부분에선 배려와 실력을 모두 확인한다. 뒤늦게 발견해서 고치려고 챙겨 놓은 내 의견이 편집자와 일치하면 소름이 끼친다. 희열에 갇히면 착각이 돋는다. 우린 어쩌면 꽤 잘 맞는 파트너가 아닐까 하며.
쓴 글을 중심으로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흥미롭다. 글에 미쳐있는 나와 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 항상 목마르다. 마시고 싶지 않은 사람을 끌고 와서 마른 눈빛에 나 좋자고 퍼붓는 건 고문과 다름없으니. 지금은 다르다. 화제는 오로지 책이 될 내 글뿐이다. 글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역시 달랐다. 괜히 나서면 억센 첫인상이 방해될까 머뭇거리는 날 눈치챘는지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 얼굴을 볼 순 없으나 어떤 식으로든 닿아서 이어지는 소통이 꼭 필요하다며. 더디더라도 모두가 만족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각오가 좋았다. 인쇄 넘어가기 직전까지 끈질기게 살펴서 같이 사는 사람이 변태라고 부른다는 여담은 더 좋았다. 요즘 난 변태가 좋다. 뻔한 상태는 매력이 없다. 누가 날 변태라고 불러주면 그렇게 좋다. 무언가에 미쳐서 매달려 열중할 수 있는 건 축복이다. 이렇게 글을 사랑하는 두 변태가 만났다.
둘은 더 나은 책을 위해 남김없이 쏟아냈다. 눈치 보지 않고 의견과 표현을 드러냈다. 숨김없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하자고 하면 기분 나쁠까 망설이다 뱉지 못하는 건 모두에게 좋지 않다. 걸리는 바가 있으면, 떠오르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꺼내 보이는 게 서로에게 낫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내버려 두면 좋은 걸 만들 수 없다. 나름 강점이라 믿는 글의 제목, 그러니까 목차가 많이 바뀌어 돌아왔었다. 편집자의 의도는 이해했지만 그대로 책에 박아 넣기는 싫었다. 각각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더 나은 대안을 고민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이건 싫다고 바보처럼 말하긴 더 싫었다. 정성을 들이면 뭐든 나오게 되어있다. 그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포기할 때가 많을 뿐. 결국 이거다 싶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신나게 떠들었다. 당신이 수정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귀찮아서 그대로 둘 뻔했다는 감사를 전하면서. 보낸 것 중 절반만 통과해도 좋겠다며 기다렸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훨씬 근사해졌다고 오히려 배웠다며 나라면 쉽지 않은 감탄을 했다.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며 신선한 자극을 주고받았다. 혼자서 키보드에 머리를 처박고 지내다 내 맘 같은 내 편을 만나서 신이 났다.
문서가 넘치도록 가득한 수정 의견이 디자이너에게 넘어가 책의 모양이 되고 있을 무렵, 난 첫 경험을 했다. 글 쓰는 사람이라고 어떻게든 더 알려보겠다며 시작한 인스타그램에 익숙한 이름의 팔로워가 생겼다. 다름 아닌 지금 한배를 타고 있는 편집자. 덜컹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내 최근 게시물을 살폈다. 다행히 출판사나 출판 과정을 욕하는 건 없었다. 가까운 관심은 처음이라 두근거렸다. 감사 인사를 했더니 놀라운 말을 전했다. 10년 넘는 경력 동안 만난 작가 중 TOP 3에 든다고 했다. 대화가 오고 가는 맥락상 성실하고 친절한 태도에 국한되지만, 난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칭찬은 넘어오면 받은 사람 마음이다. 과한 해석 작업에 들어갔다.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그중 상위권이라면 글을 잘 쓴다는 말이겠거니 결론을 꽝꽝 내렸다. 필력이 좋아 그대로 살린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도 했었으니까. 혼자 챙겨 먹는 맛이 심심할까 봐 첫 번째 책 편집자에게 쪼르르 달려가 자랑했다. 답을 정해놓은 상황을 금세 파악하곤 근사한 공감을 해주었다. 어딜 봐도 나처럼 열정적이고 꼼꼼하고 글에 애정 많은 저자는 찾기 힘들다고. 맡겨 놓은 짐을 찾는 모양새였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런 맛도 있어야 고통스러운 글도 쓰는 거라며 흥얼거렸다.
내 것에 고집스러운 나도 언제나 그렇진 않다. 아무리 내 책이지만 잘 모르는 부분은 철저히 믿고 맡긴다. 디자인을 정할 때 그렇다. 못된 성격의 글쓴이가 나중에 제멋대로 딴소리할까 봐서 출판사는 고생이 많다. 표지부터 속지까지 나오게 된 상세한 배경 설명과 여러 시안을 보여주며 의견을 묻는다. 물었으니 답을 하긴 하는데 무슨 소릴 하는지 나도 잘 모른다. 확고한 방향과 자신감을 가진 출판사의 당당함이 마음에 들어 나중엔 알아서 해달라고 했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걸 하는 게 맞아서. 돌아온 결과물을 보고 나서 그러길 참 잘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기특했다. 때론 고집을 꺾지 않기도 한다. 작가 소개 글은 내가 바라는 대로 토씨 하나까지 고쳤다. 물론 처음에 손을 봐준 편집자가 영감을 준 덕분이다. 내버려 두면 몰랐을 부분이 보여서 오래 고민하고 아내와 상의도 하며 끙끙거렸다. 나를 말하는 글은 내가 완성하고 싶었다. 마치고 나서 만족스러운 기분이 컸는지 따끈한 딴생각을 했다. 이다음 책의 작가 소개는 또 어떻게 써볼까?
고집을 놓기도 하고 부리기도 하며 막바지 교정에 빠져들었다. 책의 형태로 만난 글 더미는 묘했다. 분명 구상하고 기획하고 글을 쓸 때 상상했던 모습이지만 실물로 만나니 내 것 같지 않았다. 인생에 진정한 내 것이 과연 있겠느냐며 슬쩍 건너편 세계로 넘어가려는 정신을 붙잡고 글자에 고정했다. 쓴 글을 책으로 만나면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만 든다. '와, 잘 썼네. 진짜 재밌는데. 이걸 내가 썼다고?' 고쳐야 할 부분을 찾아야 하는데 읽을수록 놀라기만 하니 아무 표시 없이 수십 페이지를 지나가기 일쑤다. 이래서 철저한 남인 편집자가 필요한 거라고 깨닫는다. 근데 우리 편집자도 걱정이다. 10년 회사 생활을 정리한 내용을 보며 굉장히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똑같이 10년을 다니다 퇴사했다고 했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걸 모두 알고 있었다. 예정되어 있던 인연처럼 우린 연결고리가 많았다. 나는 내 글에서 빠져나올 기미가 없지만, 이 사람은 그러지 말아야 할 텐데. 자신이 써 놓은 글을 모른 척 경탄하며 읽으면서 괜히 남 걱정만 하다 끝났다.
책이 될 거라 혼자서만 믿어 왔던 오랜 시간을 지나 인쇄를 코앞에 두고 있다. 머릿속에만 떠다니던 게 손에 잡히는 물성을 지니는 과정은 보고도 믿기 어렵다. 바라는 게 현실이 되면 생기는 얼떨떨함 속에 지낸다. 부쩍 매일 기도를 한다. 필요하고 좋아해 줄 사람은 한 명도 놓치지 않게 해 달라고. 애초에 싫어할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겐 꼭 전해달라고. 현실에 발을 묻어두고 사는 놈이 급하게 허공에 대고 바라는 이유가 있다. 쓰는 건 내 마음이지만 읽는 건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아서 그렇다. 나만 해도 얼마나 까다로운가. 많이 보는 책은 싫고, 허접한 책도 싫고, 자랑만 하는 책은 더 싫고. 책 한 권을 위한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의 끝을 앞두자 갑자기 아까워졌다. 담겨있는 10년의 회사 생활은 다시는 겪을 수 없다. 그때를 갈아 넣은 책이 조금 더 의미가 있길 원한다. 욕심이라면 욕심일 테고, 바람이라면 바람이겠다. 최선을 다했고 후회가 없으며 자신이 있다. 알아주는 이가 내 바람보다 한 명이라도 더 많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