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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Sep 26. 2024

정신이 날아가지 않도록

그런 날이 있다. 혼자 내버려 두어도 터져버리기 직전인 상태. 미루다 미루다 이렇게 돼버린 건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몰려와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 쳐다보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오는 일의 홍수에 정신을 잃기 딱 좋을 때가 종종 찾아온다. 이런 날은 온 세상이 나를 가만히 두어도 견뎌내기 어렵다.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사라져 버릴까 고민까지 하게 된다. 어렵게 정신을 잡아와서 머리에 꽂고 차분하게 눈앞의 일더미를 마주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할 수 있다. 아니, 해야 한다.' 주문을 속으로 108번 딱 외우고 시작하려는 그 순간. 그 공간에 있는 다른 존재가 말을 건다. '좋은 아침!'





할 일이 쌓였어


순수한 안부 인사다. 그것도 신경이 거슬리는 날카로운 내가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다. 나 스스로도 베일 것 같은 상황이다. 차분하게 그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I’m snowed under.


어마어마한 눈 아래 있어서 움직일 수 없듯이 일이 너무 많아서 파묻혀있다고 했다. 산더미처럼 쌓여서 죽을 것 같다고. 정말 겁나게 많아서 오늘의 나는 예민할 예정이라고. 대충 알아듣는 눈치다. 힘내라며 옆자리에 가서 조용히 앉는다. 비슷한 표현도 있다.


I’ve got a lot on my plate.


내 접시에 뭐가 많이 올려져 있다는 말이다.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 많다는 같은 뜻이다. 접시를 깰 수 없으니 열심히 먹어 치워야 한다.





소란 피우지 마


잠시 후 그가 슬슬 시동을 건다. 잠시도 조용히 있지 못하는 그는 내 집중력 최대의 적이다. 다른 날은 그러려니 해왔는데 오늘은 내가 살고 봐야 한다. 이 사람 저 사람과 크게 통화하고 오고 가는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게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그러다 그가 선을 넘었다. 지난번에 내가 처리한 일을 가지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조언을 빙자한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이미 다 끝난 일을 도대체 왜 지금 이제 와서 그러는 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Please don’t make a scene.


제발 난리 좀 치지 말아 줘! 지금 네가 아니어도 충분히 힘들다. 억지로 없는 장면(Scene) 만들어서 남의 이목 끌지 말아 주렴. 원하면 영화는 집에 가서 혼자 찍으렴. 정색하니 좀 잠잠해졌다. 다시 쌓여있는 일과의 씨름으로 돌아와서 낑낑대기 시작한다.





빡돌기 직전이야


얘는 오늘 날을 잡고 왔나 보다. 갑자기 자리를 청소하고 정리하며 야단법석이다. 도대체 왜 지금이냐고! 평소에 하지도 않던 쓸고 닦기를 진심으로 행하고 있다. 우당탕탕 뽀득뽀득 아주 난리다. 전문 청소 업체 저리 가라다. 일이 없으면 집에 가주라 제발... 참다못해 최후의 통첩을 날린다.


I’m about to flip out.


조금만 더 건드리면 난 미치고 팔짝 뛸 거란 예고다. 'Flip'은 홱 뒤집다는 뜻이기에 여기에 'Out'을 더해 완전히 젖혀서 날아가는 상황을 말한다. 이성을 잃고 꼭지가 돌고 눈이 뒤집힐 것이라고 했다. 급분노와 극대노를 한꺼번에 경험하고 싶지 않으면 제발 멈춰달라고. 한 번도 없었던 내 이런 가공할만한 경고에 덜덜 떨고 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다. 너도 살고 나도 살려면 이 일들을 오늘 안에 끝내야 한다. 내 이성이 날아가지 않게 도와줘.





오늘의 근본 없는 영어 3가지 정리


I’m snowed under.


Please don’t make a scene.


I’m about to flip out.








<Prologue>

<Interlude>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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