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무도 없이 혼자 있고 싶다.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나 말고 다른 존재에 신경을 쓰고 고려하며 보내는 시간은 기력을 소비한다.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나 혼자만 생각할 게 아닌 짐작하기 어려운 상대방을 예상하면서 모든 상황을 대해야 한다. 이런 거 없이 각자 마이 웨이로 지낼 수 있지만 그러면 꼭 갈등이 생긴다. 최선을 다해 남을 배려해도 온갖 오해가 생기는 마당에 남을 무시하면 사건 사고가 터진다. 이래도 저래도 여러 사람들과 지내는 사회에서는 쉴 새 없이 일이 생긴다.
내가 나를 떨쳐낼 순 없으니 하릴없이 데리고 살지만, 그 외의 남은 하나라도 줄이고 싶은 이유다. 나랑도 스스로 합이 안 맞고 마음 같지 않아서 힘든데 파악조차 어려운 남과 지내긴 어렵다. 마치 극악의 확률을 가진 룰렛을 돌리는 기분이랄까. 맨날 틀린다.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서 결론을 내려도 어긋난다. 맞추지 못했기에 구질구질한 설명은 쓸데가 없다.
누군가를 알려는 우리의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누가 옆에 있으면 이해하고 싶다. 이런 사람이라고 알아맞히고 싶다. 그렇지 못하면 매번 광활한 우주를 대하는 느낌을 줄이기 어렵다. 얘는 이런 애, 쟤는 저런 애라고 나름의 구분을 해두고 사는 게 편하다. 꼭 맞아떨어지진 않지만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준다. 모여서 수다를 떨다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어서 안심이 되기도 한다. 나 말고도 주변 사람을 대강 정의해두고 대하는 전략을 많이들 취하고 있다. 얼마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지 살펴보자. 당신 곁엔 이런 사람이 꼭 있다.
불안하다. 그를 보고 있으면 가장 많이 드는 기분이다. 무언가 꼭 빠뜨리고 말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깜빡해도 바로 복구를 하면 되지만 거기서 멈춰 선다. 역시나 이번에도 뭐가 어떻다고 나를 불러댄다. 가보면 별 거 아니다. 이걸 빼놓았을 뿐이고 저걸 잊었을 뿐이다. 챙겨주며 속 시원하게 뱉어본다.
'넌 진짜 손 많이 가는 사람이야.' 알아듣는 둥 마는 둥이다. 하긴 알면 이러지 않겠지. 돌봄이 필요한 친구 말고도 무척이나 까다로운 녀석에게도 쓸 수 있다. 까탈스럽든 말든 혼자서 알아서 해나가면 문제가 없겠지만 꼭 주변에 요구를 한다. 옆에 있다 보면 에너지 씀씀이가 커져서 쉽게 지친다.
꿍꿍이가 다 보인다. 어지간해야 속아주는 척이라도 할 텐데 이건 뭐 유리같이 투명하게 속이 다 보이니.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심지어 거짓말도 얼굴에 다 쓰여있는 이 친구를 어찌해야 할꼬. 솔직하다고 상을 줄 수도 없고 말이야. 너무 심해서 알고도 속는 재미도 없다. 어설픈 돌려 말하기는 이제 그만하자.
대학시절 오픈 북 시험을 기억하나? 어쩐지 책을 펴고 보면 다 맞을 줄 알았지만 뭐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찾다가 시간이 지나가버렸던. 사람이 펼쳐진 책과 같다면 감정을 속이지 못한다는 뜻이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기쁘면 온 얼굴이 씰룩거리고 화나면 온몸으로 불그락거리는. 좋고 나쁘다는 판단은 적합하지 않겠다. 어울리지 않는 포장이 어색할 뿐.
난리법석을 떨며 그분이 도착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소식을 가져왔다고 한다. 다들 기대하는 눈치다. 이번엔 도대체 얼마나 과거의 일일지. 역시나 오래전에 지나서 이미 백업까지 끝난 고대의 일이다. 꼭 이렇게 상황 다 끝나고 유행 다 지나고 나서야 호들갑인 친구가 있다.
'파티에 늦다'로 해석되는데 화끈한 시간은 모두 지나간 뒤라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뒷북치기'다. 남들 다 아는 이야기를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알리는 경우다. 뉴스나 트렌드에 관심 없고 둔한 내가 그렇다. 오래 뒤처져 보내다 보니 뒷북치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중에 알아도 안 척을 하지 않는 거다. 북을 치지 않으면 뒷북은 없다. 내 나름의 생존 방식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