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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Oct 13. 2024

주제를 알고 까불어야지

아무 일이 없을 때는 좋다. 신경 쓸 일이 없으니 편안하다. 딱히 기쁜 일도 힘든 일도 없이 흘러가면 재미는 없지만 골치 썩을 일도 없다. 다른 사람과 지낼 때도 마찬가지다. 비슷비슷한 처지로 만나서 고만고만하게 알고 지내면 관계는 평탄하다. 이렇다 할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가면 따로 부딪힐 일이 없다. 좀 지겹고 심심할 수는 있지만 사는 게 원래 이런 거라며 함께 어깨동무하고 크게 한숨 쉬며 지낼 수 있다. 영원할 것 같던 따분함은 종종 일찍 깨지기도 한다. 균열은 한쪽이 경로를 벗어날 때 생긴다.


나름의 계기로 내면의 각성을 통해 좀 다르게 살아보려고 하면 옆에서 크게 동요한다. 아름다운 방향으로 영향을 받아 나도 변해 봐야겠다 하면 참 좋겠지만 그런 일은 드물다. 어제까지 함께 세상을 탓하고 욕하던 친구가 다시 태어나겠다며 날뛰는 모습이 어색하고 못마땅하다. 멀쩡하게 지내다가 모든 걸 뒤집어엎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세우는 모습에 자극받는다. 긍정적인 자극이 아니라 얘는 왜 갑자기 설치는 걸까 하며 이해하지 못한다. 자꾸 너저분한 풀썩거림이 계속되면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게 된다. 엉덩이를 들썩거릴 때부터 해주고 싶었던 머릿속 가득했던 그 말을.





네 주제를 알아라


도대체 이해할  없다엄청나진 않았어도  무리 없이  살고 있었는데 얘는  이러는 걸까새로운 새로운 목표 좋다예전과는 달라질 거라고 선언하고 일찍 일어나서 행동하고 쓸데없는   하고 생활하겠다는 너의 계획 인정한다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네가 세운  목표는 너무 오버 아닌가닿기 어려운 높은 지점을 향해   있지만 그래도 정도껏 해야지...  까짓게 말이야.


Know your place.


해 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어디서 머리를 세게 맞고 온 것처럼 행동하는 녀석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이 정도까지 솔직하게 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뭐 그래도 친구라면 쓴 말도 해 줘야겠지. 사람은 자기 주제를 파악해야 하고 분수를 알고 살아야 하지. 생각한 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살면 그게 사람인가, 동물이지. 우리 모습을 봐라. 지금 네가 꾸는 꿈이 가당키나 한 건지.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지. 안 그래?





큰 상처를 줬어


충격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응원할 줄 알았었는데. 모두가 비웃어도 너는 다를 줄 알았었는데. 그래서 하나도 남김없이 느끼고 깨달은 걸 솔직하게 털어놓은 건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기댔던 너에게 크게 한 방 맞으니 정신이 없네.


That really did a number on me.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을 때 쓰는 말이다. 'do a number on'은 권투 중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잽, 훅, 어퍼컷 등 주먹 종류마다 번호를 매겨서 구분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아프게 하고, 피해를 주고, 심각하게 조롱한다는 의미다. 토닥여주고 안아줄 거라고 믿었던 내 편에게 제대로 얻어터지니 당황스럽다. 깊숙이 패인 고통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참을 만큼 참았어


녀석을 피한다. 볼 때마다 던지는 주먹에 겨우 잡은 의지가 계속 무너져서. 정말 이번엔 달라지고 싶다. 나로 가득 찬 나만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 거창한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후회 없이 바라는 바를 향해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고 싶다. 이런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저 친구는 쉬지 않고 정신 차리라고 하는 걸까. 누굴 때린 것도 죽인 것도 아니고 내 꿈을 향해 달려가겠다는 것뿐인데. 왜 답답했던 지난날로 날 데려가지 못해 안달인 걸까. 더 이상은 못 참겠다.


This is the last straw.


계속 참다가 머리 꼭대기까지 찼다는 말이다.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다. 생뚱맞은 'the last straw(마지막 지푸라기)'는 낙타 등에 이미 짐이 많아서 지푸라기만 더 올려도 주저앉고 말 거라는 속담에서 유래한다. 네가 어디서 뭐라 떠들고 다니든 알 바 아니지만 나를 붙잡아 넘어 뜨리려는 태도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내가 왜 그런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는데? 아무 희망 없이 아무 노력 없이 멍하니 살다가 이제야 정신 차리고 살아보겠다는 데 그게 그렇게 널 힘들게 하니? 옆에 붙어서 맨날 바보같이 남 탓만 하던 사람이 없어지니 심심해서 그러니? 난 이제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내 곁에서 사라져.





오늘의 근본 없는 영어 3가지 정리


Know your place.


That really did a number on me.


This is the last straw.








<Prologue>

<Interlude>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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