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하는 것은 쉽다. 떠오르는 대로 소리를 내면 된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익숙한 언어로 꺼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움은 다른 사람이 내 말을 들을 때 생긴다. 혼잣말이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말이다. 그 말에 담긴 정보와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은 어렵다. 상대방의 지식 수준, 마음 상태 등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화의 어려움은 여기서 시작된다. 나는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를 관심이 얼마나 있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남에게 알려주는 일은 무척 어려운 곡예에 가깝다. 이런 서커스를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펼치고 있다. 오늘은 고난도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데 벌써부터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혼자 해 오던 일이 커지면서 동료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스스로 애정도 많고 잘 돼가는 중이어서 흥분을 한 상태다. 그 마음을 그대로 담아 첫 회의에서 한 시간 가량 열변을 쏟아부었다. 한껏 기대하며 그의 열띤 반응을 기다렸다. 동공이 흔들리는 눈 아래 위치한 입에선 이런 말이 나왔다.
자기한테는 모두 그리스말로 들린단다. 한마디로 '외계어'같아서 전혀 모르겠다는 말이다. 너와 나 사이의 이해가 1도 없는 상황이다. 아니, 이렇게나 열심히 모든 것을 이야기했는데도?
이 표현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카더라에 따르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줄리어스 시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작품 속 '카스카'라는 인물이 몹시 듣고 싶어 했던 웅변가 '키케로'의 연설이 라틴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진행되자 전혀 알아듣지 못해 실망한 채로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주워들은 것은 실제와 다를 수 있으니 주의하자.
아무튼 알아들은 게 한 개도 없다는 말이지? 좋아. 이번엔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주지!
시간을 2배로 쓰고 속도를 반으로 줄였다. 그의 눈빛과 표정을 살피며 차근차근 나아갔다. 더 이상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할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이 들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반복하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는 나를 이겨내고 정확히 같은 설명을 똑같이 해냈다. 그의 반응을 조심히 살폈다. 또다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못해! 불가능해! 여기서 더 어떻게 더 자세하게? 내가 아는 게 이게 단데 어떻게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잠시 머리를 식히러 밖으로 혼자 나왔다. 몸이 차가워지니 아까 보다는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떤 부분에 대해서 집어가며 좀 더 설명해 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나만 좀 더 힘내면 될 것 같다.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마치 처음인 것처럼 그를 다시 대했다. 요청한 부분을 유치원생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림도 그려가며 쉽게 더 쉽게 안내했다. 회의실의 보드와 유리창에 더 이상 쓸 공간이 없어지면서 내 퍼포먼스는 끝이 났다. 더 이상 완벽한 설명은 없다고 믿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직역하면 '너 나랑 지금까지 같이 있는 거 맞지?'인데 여기까지 모두 이해되었냐고 묻는 말이다. 우리는 오늘 한 뼘도 멀어지지 않고 계속 같이 붙어 있었다. 대답은 '아니오'가 될 수 없다. 앗, 그가 입을 여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야! 그냥 말하지 마! 그냥 내가 한 번 더 할게. 엉엉. 모두 내 탓이다 내 탓. 지식의 저주*에 제대로 걸렸구나. 오늘은 집에 못 가겠구나.
(*지식의 저주 : 내가 알면 남도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