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의심도 많지만 확신도 잘한다. 어지간히 경험해 온 분야나 영역에 대해서는 꽤나 자신감을 가지고 판단한다. 직접 겪은 것은 강렬하고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기에 이를 곧은 잣대로 두기 마련이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 거라는 경험치가 쌓여서 보다 손쉽게 예상하고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버린다. 이러다 보니 반대의 경우도 믿음이 확실하다. 자신의 예상 범위를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편하게 단언한다. 어쩌면 가장 쓰기 어려운 말, '절대'를 붙이며 강력하게 외친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이 말 이후가 지켜진 적이 많았었는가? 절대가 절대적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곳에 없었다. 과거 우리의 역사는 모두 이 '절대'가 극복되면서 써졌다.
나는 국가 경계를 지키는 장군이다.(갑자기 왜인지는 묻지 말자) 요 며칠 병사들이 수군수군 불안해한다. 멀리 저 험준하고 높은 산맥 너머에 있는 이웃 나라에서 들려오는 소문 때문이다. 수백만 대군이 이쪽으로 출발했다는 둥, 코끼리를 타고 오고 있다는 둥 걱정과 공포가 가득하다. 오늘도 한 측근이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저 산을 넘어오면 어쩌죠?'
그럴 수도 있겠지,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돼지는 하늘을 날 수 없다. 일어날 가능성이 없을 때를 표현하는 말이다. '나는 살을 뺄 거야, 돼지가 하늘을 날면.', '난 여자 친구가 생길 거야, 돼지가 하늘을 날면.' 등으로 쓰일 수 있겠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지 말라고 일축했다. 절대 불가능하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저 산을 넘어 쳐들어온 적은 없었다. 이 나라가 생긴 이래 누구도 병력을 이끌고 산행을 성공하지 못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병사들을 모아놓고 선언했다. 너희들 말처럼 산을 넘어오는 군대가 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분명히 산에서 군대가 내려오고 있었다. 정말 코끼리도 보였다. 눈치 없는 병사 한 명은 내 손에 장을 지지려고 뜨겁게 불을 지피고 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청천벽력이 따로 없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이 표현은 원래 'a bolt out of the blue'였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줄어들었다. 미드나 팝송에서 줄곧 나온다. Adele의 명곡 <Someone Like You>에도 나온다. 'I hate to turn up out of the blue, uninvited.'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느닷없고, 난데없다. 뜬금없이 대뜸 나타났다. 내가 이럴 정도니 모두 우왕좌왕 난리가 났다. 혼란의 도가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어떡해야 할지 정하기 위해 급하게 모였다. 모여도 뾰족한 수는 없지만 도망갈지 말지는 정해야 하기에 머리를 모았다. 이 와중에 한쪽에서 적들이 쳐들어 온다고 가장 먼저 알렸던 부하가 중얼댄다. '그 봐요. 내가 이럴 거라고 했잖아요.'
누가 이럴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야, 너 일로와 봐. 너도 소문만 듣고 불안해한 거잖아. 누가 알았겠어? 저 미친놈들이 저쪽으로 넘어올 줄 꿈에서라도 생각했겠냐고!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게 그거야? 당장 눈앞에 코끼리가 달려오는데 옛날이야기하면 걔가 지나가 줘? 또 또 구시렁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