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by space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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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자작나무 몇 그루 심었다.

가끔 길을 다니다 자작나무 숲을 만나면 겨울왕국 같은 동화 속의 한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자작나무의 모습이 특별히 이쁜 건 아니고 보면 갈색의 숲 속에 혼자 하얗게 반짝이는 색다름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그런데...

자작나무는 왜 하얗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자작나무는 시베리아같이 일년의 대부분이 눈으로 덮여있는 추운지방이 주 서식지인데

눈에 반사되는 햇빛을 견디기 위해 자신의 몸 또한 하얗게 만들어 햇빛을 덜 흡수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색인 셈이다. 이 곳에서는 저 나무가 굳이 흰색일 필요가 없겠지만 시베리아 벌판에 있던 할아버지 자작나무의 모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자연에 있는 그 많은 풀과 나무들, 작은 벌레부터 큰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자연이 자신에게 주는 환경에 적응하며 가장 현명하게 자신을 변형시키며 진화한 모습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눈 앞에 보이는 자연의 모든 것들은 지금의 환경에 최적화된 가장 건강한 모습이리라.


그러고 보면 자연에서는 인간이라는 종만이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환경를 거스르며 자신이 아닌 상대의 모습을 바꾸었다. 자연을 넘어서고자 애쓰던 시간들이 인간의 역사이지만 그것들은 인간과 자연의 접점을 최소화하는 격리의 시간일 수도 있겠다.

인간이 머리로 이루어낸 위대한 문명은 그렇다치고 아직도 동물로서의 시스템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사람의 육체가 자연으로부터 이렇게까지 거리가 떨어져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작나무의 조상은 자신의 몸을 흰색으로 만들어 후손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해줬는데 사람의 조상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지도 못했고 아무 것도 준비해 주지를 못했다.

그냥 당신들같이 자연 속에서 흙과 가까이 살 줄 알았지 자신의 후손들이 이렇게까지 자연을 등지고 살 줄은 몰랐을 것이다. 결국 사람은 자작나무의 하얀 몸통같이 우리를 보호해 줄 어떤 육체적인 프로그램을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지 못했다.


우리가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지만

조금은 자연하고 만나는 시간을 늘려야겠다.


우리 할배, 할매가 그리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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