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그리고 멘토
두 가지 말은 이제 유행어가 되었다.
텔레비전에도 서점에도 그와 관련된 것이 넘쳐 난다.
시장이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의 수요가 있다는 것이고 보면 많은 이들이 충분히 마음이 아프다는 얘기가 된다.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거듭하다 이제 혼자는 그것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다행히 많은 위로와 도움의 말이 오고 가고 있긴 하다.
서울에 가면 들르게 되는 대형서점 앞에 있는 돌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이 말에 공감한다.
잘 쓰인 좋은 책은 다른 각도의 사고의 틀과 시야를 제공한다.
직접적인 위로는 가급적 삼가고 위로를 자체 제작해 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픔보다는 아픔을 가진 사람에게 주목하며 물고기보다는 물고기 낚는 법을 보여주려 애 쓴다.
물론 책뿐만 아니라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남의 아픔을 들여다보거나 하는 경험들도 그런 도움을 준다.
때로는 너무 큰 아픔을 겪는 이와 자리를 할 때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음을 느낀다.
힘내, 이겨낼 수 있어, 지나갈 거야, 인생이란 다 그런 거야, 너 보다 힘든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좋은 말들이지만 그 섣부르고 구체적이지 않고 무책임하기 조차한 그런 말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이가 눈물범벅으로 자신의 아픔을 다 말할 때까지 그냥 묵묵히 듣고 있는 것뿐이다.
가족을 떠나보내는 가장 큰 아픔을 겪은 이를 문상하는 자리조차도 우리는 할 수 있는 말의 한계를 느낀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픔은 각자의 것이고 아픔을 넘어서는 것도 자신의 몫이다.
남을 위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 아는 후배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어떤 교육을 참가했었다.
기억나는 것은, 그 교육 참가자들은 나이 고하를 떠나 상호 간에 반말을 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말이야 솔직함을 방해하기 마련인 관계적인 틀을 끊어 내기 위한 것이었을 것 같고, 시종 솔직해야 함을 강조한 것은 의외로 우리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기 어렵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나는 가끔 내레이션이란 말을 쓴다.
자신에게 스치는 감정이나 생각을 가감 없이 내레이션 한다는 것은 자신 안에 머무르는 것들을 정교하게 때로는 객관적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배우는 입장에서 머리로 헷갈리던 것이 누군가를 가르치며 말을 하다 보면 명쾌해지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나 자신도 농사일 틈틈이 책상머리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글로 써 보는 것도 나를 바라보고, 살아오며 막연했던 생각과 감정들을 중얼거리며 정리해 보는 것이기도 하다.
스님들은 이를 '들여다본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말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에게 일어나는 마음이 무엇인 지를 살피는 것이고 보면,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그대로, 의무나 의지 같은 이차적인 것은 잠시 놔두고 솔직하게 다가서는 것이 마음과 아픔을 추스르는 시작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마음이 아픈 이는 자신의 마음에 다가설 때까지 울고 말해야 하며 우리는 들어야 한다.
물론 힘이 들다고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리면 곤란하지만 그 독백 끝에 자신의 발로 일어서는 것을 바라봐야 한다.
그 한계로 슬플 수밖에 없는 몇 마디 위로의 말보다는
들어주고 기다려 주고 바라봐 주며 아픈 이의 마음속에 같이 머물러 주어야 한다.
자신을 떠나 밖으로 남에게로 흩어졌던 아픈 이의 마음이
자신에게로,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는 그 '복귀'가 있기까지.
팔십이 훌쩍 넘으신 엄마가 그동안 무릎이 안 좋으셨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아프면 귀가 얇아지게 되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게 된다.
엄마의 무릎은 중간중간에 찰나적으로는 좋아지셨지만 결과적으로 더 안 좋아지셨다.
대부분의 병원은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것처럼 노인들을 유혹했지만 그 주사와 약들은 느끼지를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통증은 그대로 두고 그 통증을 느끼는 것만 차단시키는 신경계통의 마취성분들이었다.
얼마 전 나 자신도 건강검진을 해 보니 약한 위염증세가 있다고 한다.
조금은 방만했던 생활을 반성하며 시골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약봉투를 대한다.
이 약이 나를 치료하지는 않고 아픔만 못 느끼도록 마취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하며 건넨다는 말도 그러하지 않기를 또한 바란다.
뭐라고?
하도 울어 앞이 잘 안 보인다고?
그러면 내가 길잡이는 해 줄 수 있지.
하지만 조건이 있네.
목적지는 꼭 자네가 얘기해야 하네.
어디로 갈지는 자네만 알지 않나.
자. 가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