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과를 간혹 보게 된다.
꽃이 필 즈음에 날씨가 추우면 이런 일이 생기곤 한다.
농부의 눈에는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신기한 듯이 들여다본다.
둘이어야 할 것이 하나가 되었다.
합쳐져 있기에 하나라 할 수 있으나 모양새가 온전치 않다.
하나가 된 둘 아니면, 둘 같은 하나..
뭐라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애쓰는 일 중에 꽤 큰 부분이 '하나'가 되는 일이다.
직장이나 정치판도 그렇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하나가 되는 것은 숙제이다.
하나가 되었다 싶으면 둘로 나뉘고 그러다가 또 합치기를 반복한다.
하나의 효율도, 둘의 현명함도 얻지 못하고 하나와 둘 사이를 왕복 달리기 한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럿이 하나가 되는 것도 힘들지만 둘이서 하나가 되는 것은 더 힘들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 바뀌어야 할 사람은 눈앞에 있는 상대밖에 없기에 그런 것 같다.
병원의 6인 병실보다 2인 병실이 더 신경이 쓰이고 힘들다 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랑하는 사람 둘이서 온전한 모습의 하나가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긴 하나 쉽게 보이는 일은 아니다.
굳이 하나가 되기보다는 각각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같이'일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다가설 수 있는 모습일 수 있겠다.
이는 각각의 두 사람을 이어 줄 수 있는 튼튼한 연결점이 있을 때 그러하다.
이들은 '하나'의 당위에 묻히지 않고 그의 것은 그에게로 남겨줄 줄 안다.
같이 있지만 '사람 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이들은 같이에서 나 아닌 너를 충전시켜주고 맞잡은 손에서는 신뢰의 냄새가 진하다.
그러나 우리네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필요와 기준에 의해 상대를 재단하고 변형시켜 기형 사과와 같은 어색한 모습의 하나를 이룬다.
두 사람이 서로가 주체가 되어 상대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끝내 객체로, 물건 덩어리로 만들어 놓고서야 하나 되기 위한 사랑의 대장정은 끝이 나는 듯하다.
그리고는 한 사람은 물건이 제 자리에 있지 않다고 슬퍼하고 또 한 사람은 물건의 테두리에 갇혀 질식해 간다.
제 자리에 놓으려는 노력을, 박스에 자신을 구겨 넣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또 자신을 바라보며 불행하다고 한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 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천연기념물이다.
나일 수 있게, 너일 수 있게 서로에게 따뜻한 보존의 눈길이 필요할 것 같다.
언젠가 끝이 있는 삶이기에 때로는 자신을 위해 소모하는 시간을 풍경처럼 서로 바라봐 주면 좋겠다.
누구라고 불리는 호칭 이전에 한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
이 모든 것들은 '같이'를 선택한 그 오래된 이유가 서로에게 유효할 때 가능한 일이겠다.
우리네들은 사랑을 하며 너를 바라본다고 하지만 실은 너를 사랑하는 나를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