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뉴스에 또 눈 소식이다.
내일 새벽부터 남쪽에서 눈이 올라온다고 한다.
비닐하우스도 그렇고 도로 사정도 걱정이 되어 새벽 나절에 서둘러 서울을 떠났지만 결국은 여주 근처에서 눈을 맞닥뜨렸다.
조금씩 도로에 쌓이던 눈은 영동고속도로를 버리고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 즈음에는 제법 두텁다.
바퀴는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이 붕 뜬 채 미끌거리고 뒤틀리며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자꾸 벗어나려 한다.
중간중간 눈길에는 말을 듣지 않은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벌을 서고 있다.
오늘따라 비상등의 점멸 간격이 짧아 보인다. 양보해 줘서 고맙다는 비상등과는 달리 단어 뜻에 충실하다.
어깨는 힘이 들어가고 눈은 백미러를 힐끔거리며 오른손은 기어를 계속 만지작거린다.
중앙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풍기 IC로 나가기까지는 보통 오십 분이 걸리나 오늘은 한 시간을 넘어 달려도 끝이 안 보인다.
제설차량이 지나간 자국이 주던 안도감도 이내 쌓이는 눈으로 사라지고 불안은 바람으로 갈구로까지 이어진다.
제멋대로 멈춰 선 차들을 보며 나는 아무 탈없이 집으로 가기를 바랬다.
아니, 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할 바는 아니지만 빙벽에 매달려 조난사고를 당한 이들처럼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가족들과 그렇고 그런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던 그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웠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지 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이를 사랑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리라.
그리고 그것을 행복이라 여기고 감사할 것이라고 되뇌었다.
눈 덮인 고속도로에서 마주한 작은 위험 앞에서,
짜증과 무료함과 불만의 대상이었던 소소한 일상이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행복의 원천이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며 누려야 할 최고의 가치를 행복이라 한다.
그 행복을 신의 영역에서 찾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여 얻으려 하기도 하고
도착하거나 쟁취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 자신 밖의 외부에서 끊임없이 구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행복을 찾아다니다가 얻지 못해 지금 자리에서 찾기로 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손을 꼬집다가 멈추고선 고통이 사라지는 그 순간을 행복이라 이름한다.
한걸음 더 나가 한결 고통스러운 자세를 취하다가 다시 자세 풀기를 거듭하며 행복을 확인한다.
급기야는 마지막 한 번의 진정한 행복을 기다리며 평생 고통스러운 몸짓을 유지한다.
이런 고행자들의 극단적인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결국은 행복의 확인 지점을 가까운 곳에서 찾기 위한 것이리라.
지금 아닌 지점에서 또는 덧셈이 이루어진 곳에서 행복을 찾기보다는 '지금'에 일부러 고통을 주고는,
고통이 없었던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었는 가를 말해주는 역설 이리라.
어린 시절 영어문법을 배울 때 가정법이란 것이 있었다.
지금도 헷갈리긴 마찬가지이지만, 그것은 결국 과거이건 현재이건 또는 미래이건, '지금'의 반대를 얘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있는 것은 없기를, 없는 것은 있기를, 이렇게 말고 저렇게 할 것을.., 아~! 제발 그것만 이루어진다면......
어렵게 외웠던 공식은 지나간 일을 후회하고 지금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이루어 지기 힘든 미래의 바람을 중얼거리는데 쓰였다.
그런 표현을 가끔 쓰면서 행복은 필시 가정이 이루어지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눈 덮인 고속도로에서 중얼거렸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만 한다면 나는...
집으로 들어선다.
눈 쌓인 고속도로에서 간절히 돌아가기를 원했던 바로 그 집이다.
당연한 듯이 현관문을 벌컥 밀어젖힐 때는 이미 간절함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행복도 다시 먼 길을 떠났다.
없음에서 있음으로, 고통에서 고통 없음으로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는 그 길에도, 지금의 반대인 저 먼 그곳에도 행복이란 것은 없었다.
반드시 행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삶을 지탱시켜줄 만큼의 미소 짓는 시간은 필요하다.
행복의 시작은 지금을 떠나서는 없음을 알아간다.
한 곳에 뿌리내린 파란 잔디가 주변으로 번져 나가듯이 지금에 뿌리내리지 못한 행복은 기다리는 그 어떤 순간으로도 번져 나갈 수 없었다.
창밖으로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차가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어느 시골 산골짜기에서 파란 하늘 바라다보며 미소 짓는다.
지금 나의 곁에 머무는 이 순간에 감사하고 싶다.
그 감사는 체념과 안주를 위한 것이 아니고 삶의 의욕을 길어 올리는 마중물임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