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담

by space bar
%B0%ED%C3%A2_%BC%B1%BF%F8%BB%E7%2807.5.10%29_011.jpg?type=w2


그들은 이 담을 넘었다.

이미터 남짓한 높이의 담장을 넘어서 이 쪽을 등지고 저 쪽으로 갔다.

얽히고설킨 인연의 끈을 부여잡고는 구도의 길을 갈 수 없기에 단절을 택했다.

덧없는 표현을 멈추려 잿빛 옷에 몸을 감추고 머리를 파르라니 깎았다.

속세를 떠났다.


그들은

마주 보기의 끝없는 소모를 덜어 냈다.

이해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이전투구를 멈췄다.

사람에 대한 기대와 의무와 연민과 번뇌를 거두어들인다.

자신의 고통을 덜어낸 자리에 남의 것을 쓸어 담는다.

당사자의 자리는 그만 물리고 마주 보기 대신 바라보기를 한다.

당사자가 된다는 것은 고단하고 때론 치사하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다.

일방의 바라보기는 속세에 머문 우리의 것이 아니다.

마주 보고

보고 보이며

당연히 당사자의 자리로 내려앉아야 한다.

저 담을 넘어가지 않았다면.

경계에 서 버릇하는 이들의 언급은 허약하다.

상황에 두발 딛고 뛰어들지 못한다.

월담을 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앉아 바라보기를 한다.

자신을 임상 실험해내지 못한, 균형이 무너진 말들을 나 아닌 '너'이기에 뱉어 낸다.


때론 담을 넘어간 이들도 종종 그러하다.

담장을 넘어가며 어렵게 얻은 객관의 자리에 앉아, 담장 저편에 있다는 사실에 터 잡아 오늘도 말의 조미료를 친다. 당사자로 내려앉으면 바로 무너질 그런 얘기들을.


오늘은 시장을 가보고 싶다.

시장거리에 서 있노라면 산다는 것의 고단함과 서글픔이 밀려오긴 하지만

담장 저편을 기웃거리지 않는 당당한 당사자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삶을 확인할 수 있어 좋다.

시장통에서 마룻바닥을 발로 쾅쾅 소리를 내며 외치는 그 소리,

"오백 원~ 오백 원~! '

우리에겐 어쩔 수 없는 삶의 교향곡이다.

keyword
이전 17화고속도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