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사과나무를 새로 심었다.
사과밭 위의 빈 공간에 세 골을 만들어 백여 주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자리로 치면 우리 사과밭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상석(?)이다.
어린 나무의 몸통은 회초리처럼 가늘지만 키는 어른 나무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창 크는 아이들이 위로만 자라느라 얼굴도 몸도 마음도 아직 균형이 잡히지 않은 모습과 닮았다.
어린 나무는 몇 골 밑의 아저씨 나무들과 달리 아가의 여린 볼처럼 발갛게 홍조를 띠고 있다.
줄기 곳곳에는 새 가지들이 솟아난다. 나올 수 있는 곳에는 다 튀어나온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사람이나 동식물이나 태어난 아가들의 커나가는 생명력은 항상 경이롭다.
저 여린 가지들이 몇 년이 지나면 굵어져 나무의 골격지가 되며 사과나무의 수형이 잡혀 간다.
기념사진을 찍어 보니 나무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지주 파이프만 보인다.
어린 나무들이 지금은 지주에 매달려 있지만 부모의 손길을 벗어나 자신을 찾아가는 아이들처럼
때가 되면 지주를 당연히 능가하고 자립하는 멋진 청년 나무가 되어 갈 것이다.
묘목을 밭에 옮겨 심으면 일주일 정도 지나 뿌리가 자리를 잡고 나면 전정을 해 준다.
일단 나무를 충실하게 해 주기 위해 웃자란 나무의 높이를 낮추어 주고 땅에서 가까운 위치에서 자란 가지, 혼자서만 굵게 자란 가지, 아래위가 겹치게 뻗은 가지들을 정리해 준다. 다음에는 위쪽으로 솟구치려 하는 가지들을 수평으로 유인해 준다.
나무가 크기를 키우는 성장에만 치우치면 결실을 이루지 못한다. 위로 크는 것에 몰두하는 어린 나무의 가쁜 호흡을 진정시키기 위해 수평으로 가지를 잡아주면 그 가지는 결실을 이루는 가지가 되고 사과가 열리는 꽃눈이 움튼다.
여기까지 오면 묘목 돌보기의 첫 작업은 마무리된다.
묘목을 만지다 보니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움텄던 눈들이 이제는 결실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을까.
여기저기 어지럽게 솟았던 꿈들이 정돈되어 자신에게 잘 맞는 그 꿈을 키우고 있을까.
마음에서 솟구쳤던 가지 하나하나는 조금 삐뚤어졌더라도 전체로서의 온전함을 유지하고 있을까. 아니, 그러려고 애쓰고 있을까.
부모의 관심과 손길을 벗어나 이제 누구의 아들, 딸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땅에 두발을 굳건히 디디고 서 있을까.
이 땅 위의 아가들과 모든 젊은이들의 멋진 성장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