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by space bar
IMG_5890.JPG


브런치라는 새로운 공간에 글을 올리다 보니 십 년 전 시골로 내려왔을 때, 후배의 강권에 못 이겨 블로그란 걸 처음 해보면서 썼던 글이 떠올라 옮겨본다.





<시작>


메일까지는 따라갔었다.

핸드폰 문자도 그랬다.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은 따라갈 수 없었다. 따라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접촉을 위해 새롭게 나타나는 그 찬란한 도구와 장치들의 용도를.


지금 나의 손에는 스마트한 폰이 들려 있다.

아들과의 소통을 위해 가지게 된 전화기에는 카카오톡, 마이피플... 그 많은 앱이란 프로그램 덕분에

잊었던 옛 애인의 얼굴도 전화기에 떠 있고 주변의 이들이 어떤 플래카드를 내 걸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도 알게 되었으며 , 늙은 친구의 젊은 사진도 착잡한 기분으로 감상하게 된다.

페이스북이란 얼굴 책을 통해서는 이제는 친구가 누구하고 친구 하는지,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세월이 흐를수록 더 젊은 사진을 얼굴 책에 올리는 것도, 프로필이 더 멋지게 단장된 것까지도 안타깝게 알게 되었다.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외롭지는 않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을 괴롭히던 그 지독한 외로움도 이제는 끝이다. 그래, 정말 끝이다...


예전에는 사람과 만날 약속을 하면 만나고 못 만나고, 늦고 빠르고 정도의 문제만 남았다.

싸워도 만나서 싸워야 했고 그래서 도상훈련이 아닌 항상 실전이었다.

다방은 그래도 낫지만 어디 앞이라는 노상인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그랬지만 그 만남에는 절박함과 때로는 뜀박질이 있었다.

지금은 사전 조율과 변경 그리고 "이제 출발해, 차가 막혀, 이제 거의 다 와가, 화내지 마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그래 오늘은 내가 저녁 쏠게, 아니 아니~ 패밀리마트 간판 안 보여? 그 밑에 나 보이지.. " 와 같은 중계방송을 통해 한치의 착오 없이 우주선 도킹하듯이 장소와 시간과 감정의 사전 세팅을 하고 즐거운 만남을 가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다행이다. 싸울 일도 없고 즐겁게 만나기만 하면 된다.

어느 때가 더 좋은 것인 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약속을 한번 어기거나 늦게 가는 바람에 여자 친구와 헤어진 이는 지금이 더 좋을 것이고

불필요한 중계방송으로 멀쩡한 약속이 깨져버린 이는 예전의 우당탕한 실전이 그리울 것이다. 일단 만날 수는 있으니까.


그래도 옛날이 좋았는데 라고 얘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세상은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것이고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변화하게 되어 있으니까.

단군시대 이래로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말 "요즘 애들은 왜 이래"의 '요즘 애'를 피해 갈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사람과 사람,

너무 못 만나서 미치는 사람도 있고 너무 많이 만나서 미치는 이도 또한 있다.

양 쪽의 경우에 골고루 다 미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그냥 미치게 놔둘 수밖에 없다. 그 이기는 아마 치료가 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리움은 자신이 있는 곳의, 자신이 처한 상황의 반대를 향한다.

없음에서 시작된 그리움은 있음에서 끝이 나거나 조금 연장된다.


그래서 세상은 사람의 애끓는 그리움을 감해 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외로워하지 말라고 당신 주변에는 이렇게도 많은 사람이 있지 않냐고 위로한다.

넘치는 디지털 교류, 몸의 중심축이 움직이지 않는 만남, 노출과 관음에 가까운 정보의 공유 속에

예전에 내 곁에 있던 사람이 어디에 있나 했더니 종로도 강남역도 아닌 바로 컴퓨터 화면으로 다 들어가 버렸다.

호두나무 밑에서 노트북을 켜고 블로그 화면을 마주한다.

망설이던 뒷 끝에 더듬더듬 만들어 놓은 사진과 글들이 눈에 들어온다.

캐리비안 베이에 있는 유수풀인가, 하여튼 튜브만 두르면 앞사람의 발가락을 따라서 둥둥 떠 다닐 수 있는 풀장에 뒤늦게 들어온 느낌이다.


블로그, 대체 이것이 나에게는 무엇인고?

사과농사를 짓는 이로서 찌라시로 가득 찬 좌판?

정돈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의 찌꺼기로 가득 찬 웅덩이?

노출 병동에 입원하자마자 벗어젖히는 환자?

아니면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기 위한 광고방송?

그것도 아니면 나 아닌 남을 떠올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외로움의 또 다른 표현?


이제는 어느덧 7부 능선을 넘어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한 움큼씩 줄어들고 있다.

살아오며 나의 욕심에, 헛된 바람에, 불타는 애정에 그리고 생각이 만들어 내는 그 바뀌지 않는 틀에 갇혀

한 세상을 살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다.

울어야 할 때 웃고, 웃어야 할 때 우는 것과 같은 그 역설의 시간들을 삶에 대한 지혜로 생각했었다.

나를 봐야 할 때 남을 바라보고 정작 남을 살펴야 할 때 나의 내미는 손을 쳐다보았다.


반대편의 그리움을 찾아 시골 산골짜기에 둥지를 틀었다.

사과농부임을 자임하지만 더 풀어서 얘기하면 사과농사를 짓는 사람 정도로 하고 싶다.

우리가 무엇을 하며 한 세상을 살아가든 지 하는 일로 인해 사람이 보이지 않는, 때로는 하는 일로 자신에게 철갑을 두르는 것은 사람을 잃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농부로서의 삶이 큰 기쁨을 주고 그 역할에는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그 농부 또한 나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세상의 블로그에 또 하나를 결국 보태며 컴퓨터 화면으로 나를 구겨 넣는다.

작은 이야기를 통해 살아오면서 아쉬웠던 일 그리고 잘 이해가 되지 않던 것들을

더 늦기 전에 농사일 틈틈이 조금씩 이해하고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그 정합을 중얼거리고 싶다.

그 끝이 정다운 이들 그리고 모르는 이들과 삶을 서로 섞을 수 있게 되기를,

그래서 물구나무 선 하루와 바로 선 하루의 덧셈이 만드는 울퉁불퉁한 균형을 만나고 싶다.


始作합니다.

아니, 진짜로 벗는다구요~~ 이건 너무 약해요? 좀 더???


참 좋은 세상입니다....

keyword
이전 04화사과나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