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에게
며칠 밭을 비웠다.
돌아와, 우두커니 서 있는 너를 바라본다.
가슴 한켠으로 뭉클거림이 지나간다.
서로 마주하며 주고받는 사이보다는
그냥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다.
친구, 우정이란 말의 실제가 무엇인 지 이제는 잊었으나
원래의 것이 있었다면 그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너를 잘 키웠다고.
맞지 않는 얘기이다.
너는 언제든지 너답게 일 년의 순환을 지키며 꽃을 피우고 열매 맺었고
나는 너에 기대어 네가 품었던 그 열매를 사람에게 필요한 사과로 만들기 위해 이러저러한 손길을 보태었다.
가지를 치고 꽃과 열매를 솎아내고 잎사귀를 따내고 하는 일들은 고백하건대,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
그것이 결국 너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를 가지고서 있지 않았던 의도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 친구를 포함하여 사람 간에는 어떤 비율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친구와는 3을 주고 7을 받고, 또 어떤 경우는 반대이거나 반반 근처인 경우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너무 많이 준다는 또는 받는다는 생각에 비율을 조정해 보려 하면 바꿔지지 않는다.
그 비율은 두 사람 간의 삶에서 굳어진 것이고, 흔들면 관계가 이상해 지거나 깨져 버리기도 한다.
특히 친구 간에는 5 : 5 가 안 어울린다. 비즈니스도 아니고 말이다.
너와 나는 어떻게 되나?
너에게 1이라도 주고 있는 것일까.
나의 것에 비하여 너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땀 흘리는 것의 소중함을,
때를 늦추거나 당기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알려주었고
때로는 너를 미워할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하고서, 넘어선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의 필요로 부산하게 움직이던 나의 몸짓을, 그럼에도 너를 위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나의 말들을
너는 알면서도 묵묵히 받아 주었다.
너의 가지 하나를 병들게 하여 나의 게으름과 무관심을 일깨워 주었다.
빨간 사과를 너 품 안에 가득 안고선, 눈으로 확인해 버릇하는 나의 얇은 성취를 고맙게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한 것이라곤 네가 허기져 보일 때 여기저기서 얻어온 것들로 너의 끼니를 몇 번 보태어 준 것뿐이다.
사람들은 너를 사과나무라 부른다.
배나무, 감나무같이 품어 내는 것들로 이름 짓는다.
그러면 우리는 사람 나무가 되나?
그렇긴 하지만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은 무엇을 만들어 내고 있나?
나무라 한다면 대체 무엇을 만들어 내는 나무일까?
뭐라고?
아니야 아니야.
절대로 돈나무는 아니야.
네가 분명히 잘못 본거야.
저녁이 되니 바람이 스산하다.
너와 내가 같이 한 치열했던 한 해도 막바지를 향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염치없이 받는 사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긴 하나, 올해에 우리가 나누었던 우정이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까 내가 얘기했지?
정해진 비율은 절대로 깨면 안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