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 다시 보는 남자 #7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공간에 낯선 사람이 옆에 누워있다.
잠깐. 여긴 어디지? 난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이 사람은 누군데 왜 내 옆에 누워서 자고 있는 거지?
목이 너무 마르다.
물. 물. 물은 어디 있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졸려서 눈을 감는 게 아니라 기운이 없어서 다시 눈이 감긴다. 의식이 가 닿은 최초의 감각은 미뢰에서부터다.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혀를 길게 뽑아 쏟아지는 물을 맞이했다. 덩치가 작고 파란 눈을 가진 남자아이가 뿌연 시야 안에 들어왔다. 물이 더 필요해,라고 말할 수 없었지만, 내 눈빛을 읽은 눈치다. 두 바가지, 세 바가지, 그다음 바가지의 물이 밀려 들어오고 나서야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어디 보자… 눈 앞에 있는 사람은 지난번 앤트워프 마을에서 우연히 봤던 그 아이다. 어찌 되었든, 배가 고프다. 그냥 배가 고픈 수준이 아니라 위가 먹을 게 없어 위 스스로를 먹은 기분이다. 짖을 기운도 없어 다시 늘어졌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쓴 풀 때기를 입에 넣길래 피했지만, 아이는 억지로 내 입에 욱여넣었다. 저녁에 뜨끈한 고기 스프를 먹으니 기운이 좀 났다.
그러고 보니, 여긴 어디야?
파트라슈의 입장이라면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못된 주인에게 학대당하고 영양실조로 쓰러졌는데, 눈을 떠보니 포근한 공간과 먹을 것을 제공해주는 사람 앞이다. 고마운 마음에 네로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고통받았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네로와 네로 할아버지의 호의가 아직 낯설다. 학대로 상처받은 몸도 몸이지만 파트라슈는 감정을 다쳤다.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곳을 다쳐 상처가 오래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적이 있지 않을까.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삼시’에 ‘세 끼’를 꼬박 챙겨 먹듯, ‘상사’에게 ‘세 끼’를 먹이고 싶을 때가 있었다.(밥은 먹고 해야지?) 회사에선 보고를 위한 업무를 위해, 업무 ‘지시’인지 업무 ‘짓’인지 모르는 일을 시킬 때가 많았다. 다니던 회사는 관리를 유독 잘한다는 회사여서, 이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서류 작업도 나름 열심히 했다. 덕분에 서류의 행과 오를 맞추는 데는 도가 텄다. 상사는 이미 문서 장인이었다. 자간과 행간을 자를 대고 확인하는 팀장의 스킬에 우리는 혀를 내둘렀다.(그런 태도를 보고 뒤에서 진짜 혀를 내둘렀다)
어느 날 상사는 윗선에 잘 보이기 위한 일을 나에게 시켰고, 그래도 상사의 ‘지시’(‘짓’이 더 낫겠다)니까 절차대로 진행하며 일 처리했다. 유관 부서에 협조 요청을 해야 되는 ‘짓’이라 공식적으로 일을 진행했는데, 팀장은 나를 불러 앉혀놓고 일장연설을 퍼부었던 일이 있다. 그는 우리선(?)에서 일을 적당히 처리하고 싶었고, 자신의 상사에게 비위를 맞추는 모습을 다른 부서에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폭언을 퍼부으며 나의 자존감을 꺾어주는 언행은 물론 보너스다. 퇴근 하 고집에 돌아오는 길에 분이 풀리지 않아 도산공원 벤치에 앉아 몇 시간 동안 분을 삭였다. 그때를 떠올리며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도 부들부들하며 오탈자가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니 꽤나 오래가는 모양이다. 파트라슈의 기억처럼 나에게도 상흔이 남았다.
회사나 업무 현장에서 우리는 순수한 ‘노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노동’도 함께한다. 비단 서비스직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상황에서도 직무의 한 부분을 연기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해 노동한다. 이때 억지로 다른 감정을 연기하면 몸이 눈치챈다. ‘어라 이 감정 아닌데, 표정과 말투는 왜 이 감정을 연기하고 있지?’ 라며 몸과 마음이 엇박자로 나아가는 순간, 고통은 시작된다. 이럴 땐 파트라슈에게 고기 스프를 건네던 네로처럼 우리에게도 네로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파트라슈 : 멍!
네로 : (기뻐하며)멍멍 짖었어요! 파트라슈가 짖었어요! 할아버지도 들으셨죠?
기운이 돌아온 파트라슈는 일을 마치고 돌아온 할아버지를 향해 크게 한 번 짖고 달려온다. 네로는 활기찬 파트라슈의 모습을 보며 기뻐한다.
나 : 멍! 멍!
파트라슈는 한 번 짖었지만 나는 여러 번 짖었다.
술 마시고 개가 된 나에게, 친구는 고기 스프 대신 컨디션을 챙겨줬다. 거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눈을 떠보니 우리 집 천장이 아닌 다른 천장 문양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여긴 어디야?’ 파트라슈가 되었던 지난밤, 나는 친구 집에서 잠이 들었다. 갈증이 나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고 친구는 혀를 끌끌 찼다.
네가 나의 네로구나. 고춧가루를 풀고 휘휘 저은 콩나물 해장국을 먹으며, 다음에 네가 개가 되면 내가 챙겨 줄게,라고 싱겁게 말했고 그렇게 우린 서로의 네로가 되기로 했다. 으이구 웬수야, 소리는 해장국 앞에서 들을 만했다.
속이 풀린다.
몸과 마음에서 엇박으로 흘러가던 박자가 조금은 맞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