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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 사이란 순간순간 변하는 것이다. 순간순간을 연결시켜야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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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아하는 동료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만담콤비라도-나는 남편과 아내라는 단어도 표현도 싫다-여기서 부터는 출입금지, 라는 구역이 있는 법이다.
그것을 고는 흙 묻은 발로 잔인하게 짓밟았다.
"좋아하는 여자에 대해서 무엇이든 알고 싶어지는 거 당연하잖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내 마음쯤 이해해줘도 되잖아!"라고 하지만, 그것은 폭력이다.
<아주 사적인 시간> 中 by 다나베 세이코
과거 3년 이상 만났다는 커플을 대하게 되면 나는 속으로 '도대체 1000일을 만난 둘에게 어떤 새로운 재미와 설렘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 긴 시간을 같이 지내게 되면 상대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고 미지의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라고. 하지만 나이를 조금 더 먹고는 그것이 큰 오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남녀 관계, 심지어 부부 사이라고 해도 둘 사이에는 어떤 종류의 거리감과 벽이 항상 존재한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둘 사이에 놓여있는 벽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뿐이다.
한 이불을 덮고 자고, 밤마다 살을 부벼대도 둘 사이의 심리적인 거리는 육체의 거리와 전혀 상관이 없다(혹은 없지 않을까). 부부 사이라고 해도 서로 간의 정서적인 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한다. 단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일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남녀 사이, 연인 사이에서는 굳이 서로에 대해 알아서 좋을 필요가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리 상대가 궁금해하더라도 상대를 위해 말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구역이 있는 것이다. 과거의 연인이나 경험 같은 것은 물론 분명 어떤 종류의 감정이나 생각 등은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는 편이 좋다.
관계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눈앞에서 '실제보다 나은 자신'을 연기하고 있는 상대를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상대가 적어도 내 앞에서는 자상한 척 연기하고, 혹은 조신한 척 연기하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이고 신용하는 편이 좋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과거의 시간, 혹은 내 손이 닿지 않는 상대의 공간에 대해 질투하기 시작하면 자신만 더 비참해질 뿐이다.
만약 상대가 내 앞에서 어떤 연기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 번쯤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사람이 지금 자신의 100% 진실한 모습으로 내게 부딪혀오려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더 나은 자신을 연기하기가 귀찮을 뿐인지 말이다.
전자라면 상대가 비록 어리숙하더라도 참고 만나볼 만하고, 후자라면 만나지 않는 편이 좋다. 만약 후자의 상대와 만남을 지속하길 바란다면 상처받을 것은 각오해야 한다.
어찌 됐거나 각자가 적당히 상대와의 거리를 존중해주고 자신도 자신만의 영역과 비밀을 소중하게 지키고 구축하는 편이 양자 모두의 건설적인 관계를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한다. 속속들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기보다는 적당히 각자가 침범 불가침의 영역을 설정해 놓고 인정해주는 편이 훨씬 더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출입금지’인 구역이 궁금하기는 하겠지만.
<추후 덧붙임>
p.s. 글로 배운 연애의 전형. 분명히 몇 개월 전에 내가 쓴 건데 전혀 공감이 안 간다. 지금 생각은 '관계란 서로 간의 배타적 소유권(몸과 마음 전부를 포함하는)을 상대에게 부여하고 상대의 모든 영역을 침범하고 지배하고 싶어 하는 것'이란 생각이다.
(2014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