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한 사람, 혹은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많은 무서운 것들이 존재한다. 질병, 전쟁, 바이러스, 환경오염, 그리고 사람의 마음. 끝없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도 물론 무섭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가장 두려고 위험한 것은 인류 전체를 한 순간에 멸망으로 이끌 수 있는 핵폭탄도, 인류를 서서히 종말로 인도하고 있는 환경오염도 아니다. 지금의 내게 가장 근접해있고 현실적이며 최고로 두려운 위험이란 바로 예쁜 여자아이의 미소다.
거리에 핀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가 있다. 그 장미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자신의 봉오리를 틔우고, 한 잎 한 잎 비단처럼 빛나는 꽃잎을 단 채로 그곳에 있다. 물론 위험한 가시와 함께. 장미의 꽃은 누군가를 위해서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장미 자신을 위해, 자신의 아름다운 교태를 드러내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
멀리서부터 장미를 동경해 오던 꿀을 빠는 작은 새가 있었다. 작은 새는 투명한 루비처럼 빛나는 장미의 꽃잎과,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장미에게로 날아왔다. 작은 새는 생각했다.
‘아름다워. 정말 아름다운 장미구나. 이 장미는 나를 유혹하려고 이렇게 예쁜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바로 나를 위해서, 나만을 위해서 이렇게 예쁜 꽃잎 속에 꿀을 감추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작은 새는 꿀을 빨기 위해서 장미의 꽃잎 사이에 자신의 부리를 박았다. 꿀은 장미의 꽃잎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고 꿀을 빨기 위해 장미에게 다가선 작은 새의 가슴에 장미의 가시가 파고 들어왔다. 작은 새가 빠는 꿀보다 많은 양의 피가 작은 새의 가슴에서 흘러내렸다. 작은 새는 가슴의 저릿한 통증을 참아내며 마지막 남은 달콤한 꿀 몇 방울을 위해서 자신의 가슴에 더 깊숙이 박히는 가시의 고통을 감내했다. 날카로운 가시는 마침내 작은 새의 심장에 닿았고, 작은 새의 여린 생명은 땅으로 추락했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작은 새의 주검 위로 또 다른 작은 새와 나비, 벌이 장미를 찾았다. 장미는 여전히 루비처럼 빛나는 꽃잎을 달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장미는 그곳에 서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꽃잎이 더 아름답게 빛날지, 어떻게 하면 더 멋진 장미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죽어가며 작은 새는 생각했다.
‘아름다워. 정말 아름다운 장미야. 하지만 아름다운 만큼 위험하기도 해. 나는 저 아름다움에 배신당했어. 저 장미는 나를 위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야. 나를 유혹하기 위해서 저렇게 빛나는 꽃잎과 향기로운 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야. 장미의 아름다운 꽃잎과 달콤한 향기는 누구에게나 평등해. 하지만 저 가시는 나를 위해서 준비되어 있었어. 아니야……. 사실 처음부터 장미의 꽃잎과 꿀과 가시는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야. 바로 장미 자신을 위해서 있는 거야. 장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단지 그곳에 있을 뿐이었어. 다만 바보 같은 내가 장미의 빛깔과 향기에 취해서 착각했던 것뿐이야.’
예쁜 여자아이의 미소는 내게는 거부할 수 없는 장미다. 하지만 나는 작은 새가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그 친절한 미소가 담고 있는 위험의 냄새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쁜 여자아이의 미소에 담긴 친절에 가시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안심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괜찮아. 어떤 가시도 없는 걸. 저 미소에는 어떤 악의도 없어. 나를 위한 호의와 애정만이 있을 거야. 아니, 없어도 상관없어. 적어도 저 미소가 내게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저렇게 아름다운 미소인걸. 저 아름다움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호의와 애정이 되는 걸’
나는 멀리서부터 그 아름다운 미소를 가지고 있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간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가는 길에 주머니를 뒤져보고, 아름답고 비싼 보석을 파는 가게를 지나쳐서 작고 허름한 오래된 꽃집에 들어간다. 꽃집을 나오는 손에는 붉은 장미 한 송이가 들려있다. 장미의 꽃잎 밑에 있는 가시 하나가 장미의 꽃잎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
예쁜 미소의 소녀와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거리에 가만히 서서 나는 몇 번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다시 발을 떼기 위해 발에게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발은 좀체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서서 열 발자국 떨어진 예쁜 소녀와, 한 멋진 사내를 바라본다.
멋진 사내는 열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도 반짝하고 빛나는, 아마도 알이 크고 비싼 다이아반지를 소녀에게 끼워준다. 예쁜 미소의 소녀는 답례로 그의 입술에 입맞춤을 선물한다. 참 잘 어울리는 한 쌍 이야,라고 지나가던 보석가게 사장이 말했다. 소녀는 반지와 함께 멋진 사내의 차에 올라탔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장미를 꽉 움켜쥔다. 장미의 가시가 살을 파고들어 손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손은 전혀 아프지 않다. 손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 어딘가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장미를 쥔 손을 편다. 장미가 땅에 떨어지고 나는 생각한다.
‘예쁜 여자아이의 미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 미소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고 착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위에 쓴 글을 내 홈페이지에 옮겼다. 포스트를 등록하기 바로 직전에 취소하고 삭제를 시켰다. 그러고 나서 잠시 후에 한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메일의 주소를 치고 위에 쓴 글을 첨부시켰다. 보내기를 클릭했다. 제목과 본문 내용을 작성하라는 안내 창이 떴다. 생각나는 한 문장을 천천히 타이핑했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 너의 그 미소 그리고 너의 그 친절.”
2008년 4월 24살 무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