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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짓말의 거짓말 Aug 13. 2020

비 오는 날에도 우는 매미

1화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 여의도 공원을 가로질러 KBS 본관 쪽으로 가고 있었다. 8월 중순에 접어들 무렵이었지만 지루하게 이어지는 장마로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굵은 빗발이 튀어 신발 속 양말은 축축이 젖어 찜찜했다. 마스크로 막혀버린 날숨이 얼굴을 덥혔고, 구레나룻을 따라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렸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사실 하나를 퍼뜩 깨달았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도 여의도 공원의 숫 매미 들은 짝을 찾기 위해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맴맴맴~맴' 하는 소리와 '찌르르르' 하는 강렬한 소리가 축축한 공기를 뚫고 귓가를 때렸다. 성체로는 한 달밖에 살지 못하는 매미가 삽십일 치 생명의 파편을 울음마다 조각조각 실어서 내 고막을 울리고 있는 것 같았다. 5년을 땅속에서 유충으로 살다 한 달 남짓한 시간만 성체로 사는 매미.  '짝짓기'라는 일생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비가 오는 날에도 너는 이렇게 악을 쓰고 있구나.


내 기억 속, 매미의 울음은 언제나 해가 쨍쨍한 날, 직사광선 하나하나가 얇은 선으로 흩어져 보이는 무더운 날에만 들렸었다. 하지만 이날은 참 이상하게도 비가 오고 있는데도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상 기후 탓에 길어진 장마 탓인지, 성충이 될 타이밍을 잘못 잡고 나무로 올라온 매미 탓인지, 아니면 원래도 매미는 비가 오는 날에도 울곤 했는데 내 기억에만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비 오는 날에 매미의 울음을 들으며 나는 이상하게도 안도현의 시를 떠올렸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곧이어 '나는 어쩌면 저 매미보다 못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면서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저리 뜨겁게 울었던 적이 있었는가, 하고 생각해 봤다.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설혹 있었다 해도 내 울음은 언제나 나보다 훨씬 크고 우렁찬 수컷의 울음에 묻혔버렸을 것이다. 힘센 수컷들이 나무의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꼬리부터 몸통까지 울리는 큰 울음을 뱉어 낼 때 나는 아마도 나무의 뿌리 언저리 쪽 어딘가에서 소심하게 울어대는 작은 매미와 같았을 것이다.   


문명화된 인간으로 태어난 덕분에 나는 나의 생물학적 하드웨어의 불리함(작은 키, 거울을 보면 증가하는 불쾌지수 등)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도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  공부를 잘하거나, 재치 있는 말로 남을 잘 웃긴다거나, 착한 사람인양 행동하거나 하는 것 등이었다. 부족한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메꿔나갔다. 내가 지금과 동일한 조건의 매미로 태어났다면 상황은 훨씬 더 녹록지 않았을게 분명했다. 매미들의 세계에서는 수컷 매미가 시를 읊거나 아름다운 가사로 노래를 부르더라도 전연 효과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시끄럽고 우렁찬 울음소리를 가진 수컷만살아남아 후손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그런 특징들은 후천적 노력이 아닌 선척적인 조건, 즉 100% 운일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생물 중에 경쟁에서 승리하는데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가장 큰 생물이 있다면 그건 단연 인간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이 작은 점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본능이 시켜서 하는 매미의 울음을 나는 참 잘도 참았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나는, 좀처럼, 울지 않았다. 혼자서 끙끙 앓다가 마음에 드는 상대가 다른 수컷을 만나러 가는걸 멀뚱히 지켜보거나, 목청을 다듬고 한번 울어볼까 생각할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사실 매미는 목청으로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배에 있는 울림통을 진동막으로 써서 소리를 낸다. 지금은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마음에 드는 상대가 생기면 혼자서 속앓이를 하다가 참다참다 못하겠을 때 뜬금없이 문자로 밥을 먹으러 가자거나, 영화를 보러 가자고 내질렀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깜빡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든 차량 같았을 것이다. 막다른 길에 몰려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던진 고백은 항상 최악이거나 최악에서 두세 번째 어딘가쯤에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결과지만 그때는 참 멍청하게도 상대가 거절하면 큰 상처를 받았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나라도 당연히 거절하거나 경계했을 텐데 그땐 조바심과 두려움에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상대에게 거절당하면 땅을 파고 나무뿌리 밑으로 기어들어가 그대로 매미의 유충이라도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의도 공원을 지나 횡단보도 앞에 섰다. 초록불을 기다리며 내 허리만큼 오는 길이의 장우산을 빙그르르 돌렸다. 우산을 타고 내려오던 빗방울이 포물선을 그리며 흩어졌다. 스마트폰의 이어폰에서는 카밀라 카베요와 숀 멘데스가 함께 부른 '세뇨리따'가 반복 재생으로 흘러나왔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60개월을 지낸 매미는 인생의 60분의 1만 성체로 살 수 있다. 어쩐지 매미의 삶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30살. 나 역시 30살의 인생 중 대부분을 지질하고 지루하게 살았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의 옆에서 잠깐잠깐 조연으로 등장하는 말 많고 웃기지만 개성도 의미도 없는 그런 역할이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지만 실제로 내 인생 전체를 카메라로 찍어 봐야 전혀 주인공스럽지도 않고 재미도 없을게 뻔했다. 하지만 그녀가 내 카메라의 렌즈에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녀는 내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과거의 소프트웨어를 모두 지우고 전부 새 프로그램으로 다시 깔게 만들었다. 그녀는 땅속에서 흙과 거름을 파먹던 유충에 불과했던 나를 한 달 만에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매미로 바꿔놨다. 그리고 나는 그녀와 만나고 한달 후에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 죽은 매미의 사체가 있었다. 나는 매미를 잠시 동안 빤히 바라봤다. 매미를 손에 들고 큰 눈과 투명한 날개와 단단하고 겹겹이 이뤄진 몸통을 하나하나 뜯어봤다. 보고 있으면 볼수록 매미라는 생물이 낯설게 느껴졌다. 홑눈이 수 만개가 모여있는 매미의 겹눈을 보고 있자니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라, 외계인이 만든 소형 비행물체 같기도 했다. 매미와 눈을 맞추고 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물었다.


'죽기 전에 성공했니, 짝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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