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시리즈
고 여사, 강강약약 우먼 파이터.
나는 나의 엄마 고 여사를 떠올릴 때면 2018년 제주도 여행 사진에 찍힌 표정이 생각난다. 그 장난스러운 얼굴은 언젠가 할머니 댁에서 본 소녀 시절의 사진에도 선명했다. 그녀의 외양과 마음이 차근히 세월을 견디고 깎일 동안에도 변치 않은 그 얼굴. 그게 그녀를 가장 잘 설명하는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소녀 시절의 표정을 간직한 그녀가, 남들에게 자기를 소개할 때 '누구누구의 엄마'로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우리 엄마 고 여사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잘못된 것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 없는 여성이다. 상대가 직장 상사든, 양가의 할머니든, 같이 활동하는 지역 커뮤니티의 구성원이든 가리지 않았다. 통상 입바른 말 하기 어려운 상대일수록 엄마는 가차 없었다. 감히 강자에게 비판과 비난을 두루 폭격처럼 퍼부으며 문제 의식을 제기해왔다. 약자에게는 보다 부드럽지만 아닐 땐 단호하게 'No'를 외치는 강단 있는 사람.
그런 고 여사를 가리켜 누군가는 쌈닭이니 트러블 메이커니 뒤에서 손가락질했으리라. 심지어 가족 중에도 있었을 테고, 실은 다름 아닌 내가 한때는 그러했다. 네가 이상하다고 모두들 은근히 책임을 떠넘길 때에도 고 여사는 부당하다고 여기는 것에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모두가 예, 외치고 넘어가는 일에 반기를 드는 이단아에게 쏟아지는 갑작스런 침묵을 견뎌야 했을 때, 자식에게까지 싸늘한 시선을 느꼈을 때... 고 여사는 어떤 마음으로 견뎌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녀가 원체 무뎌서 우연히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내 어린날 기억 속에서 엄마는 자주 울었고 자주 의심했다. 의심의 대상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모르긴 해도 엄마가 대학서부터 배워온 것들과 현실의 타협점, 본인이 포기할 수 있는 영역과 그럴 수 없는 영역을 이리저리 저울질하면서 엄마는 점점 더 작아졌을 것이다. 아무도 줄 수 없는 답을 찾기 위해서 그녀는 점점 더 독실해지는 동시에 점점 종교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교회와 믿음조차도 고 여사 나름대로의 투쟁의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에게 쉬운 건 아무 것도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엄마는 끝없는 투쟁을 통해 자식들에게 몸소 보여줬다. 침묵하지 말 것. 질문하고 요구할 것. 부딪쳐야 할 때는 싸울 것. 그녀가 내게 물려준 것들 중 가장 값진 것이다.
말괄량이 소녀 같은 당신께
고 여사는 가방끈이 길다. 여자는 오래 교육시키는 게 흔치 않던 그 시절에도 엄마는 석사, 박사 학위를 땄다. 단기간이지만 프랑스 현지에도 유학을 다녀왔다. 고학력 엘리트 여성의 삶을 내려놓고 결혼과 출산, 육아에 마주했을 때 그녀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생각해본다.
인간의 본성, 잃어버린 시간과 정취 등의 개념을 다루던 고 여사에게, 가족의 먹고 입고 쓸 것을 준비하고 아이를 어르다가 다 가버리는 하루는 지나치게 구체적인 건 아니었을까? 교단에서 적당히 맑고 적당히 탁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삶을 포기하면서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이 떠오를 때면 두려웠다. 내가 그녀의 구체적인 지루함을 만들기 시작한 장본인인 것만 같아서. 엄마가 후회할 것 같아서.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 없던 고 여사는 어느 날 아기의 분유가 똑 떨어져서 급하게 근처 백화점엘 갔댔다. 삐까뻔쩍한 백화점 한 가운데에서 아기가 토한 티셔츠를 입고 나온 자신을 발견하곤 꼭 맨하탄에 떨어진 유인원 같았다고 그녀는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을 두고두고 생각한다. 그 장면을 상상할 때면 아기가 토한 티셔츠를 입고 당황한 고 여사에게, 살며시 다가서고 싶다. 현재의 나보다 어릴 때 엄마가 됐던 그녀의 손을, 그때는 굳은살도 튼살도 없이 말랑하고 부드러웠을 손을 다정히 잡아끌고 싶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이고 싶다. 기왕이면 엄마가 요즘도 잘 안 사먹는 크고 비싸고 화려한 것으로.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이어진 그녀의 고된 순간순간에, 나보다 더 혼란스럽고 두려웠을 그 시간들에 다가서고 싶다. 얼마나 고단하고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훌륭히 견뎌내고 있다고. 당신을 모르는 사람은 쌈닭이라며 손쉽게 말해버리지만 내 눈에 당신은 여전히 맑게 웃을 줄 아는 말괄량이 아가씨 같다고. 같이 울기도 무안하기도 웃기도 하면서 아주 오래도록 다정히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고 싶다.
고 여사, 아니 엄마. 당신의 혼란과 투쟁을 먹고 자라나 침묵하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당신의 용기와 인내에 박수를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