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여러분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을까.
Y는 내 6년의 대학 시절 내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나는 군대를 가지 않는 여학생인데도, 그 흔한 어학연수나 유학도 다녀오지 않은 채로 쌩 휴학 기간 2년을 포함해 6년간 학교를 다녔다. 내가 두 번의 휴학을 거치며 학교를 다니는 하세월 동안, 한 학번 아래로 입학한 Y는 나보다 일찌감치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했다.
Y와 나는 학교를 다니는 내내 붙어 다녔고 심지어는 1년을 같이 살기까지 했지만 Y가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직전까지 거의 매일 만났다. 우리는 우리 앞에 주어질 인생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사람에 대해서 전공이나 문학의 한 귀퉁이를 곁들여 우스갯소리를 많이 했다. 보수적으로 어림 잡아도 이야기의 80%는 농담이었다. Y는 잘 웃었다. 간혹 너무 웃기면 코로 정체불명의 소리를 내며 웃었다. 코로 웃는 소리가 들리면 내가 정말로 아주 웃긴 농담을 한 것 같아서 신이 났다.
우린 정말 반대의 사람이었어.
Y는 대부분의 면에서 나와 반대되는 친구였다. Y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해 먹고 설거지를 했다. 심지어는 더 이른 시간에 새벽 수영을 가기도 하고, 일어나자마자 공부를 하다가 점심때 카페나 도서관에 나가서 또 공부를 했다. Y가 마음먹고 늦잠을 자는 날을 모조리 세어봐도 1년 중 한 달이 채 안 될 것이다. 오전에는 내내 힘이 없다가 해가 저물수록 원기를 찾는 올빼미 형인 나와는 정반대였다.
Y는 공부를 하느라 밥을 자주 걸렀다. 공부를 하려고 폼만 잡다가 밥시간쯤 되면 잽싸게 공부에서 빠져나가는 나, 밥 먹으러 나간 김에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포켓볼도 치며 노닥대던 나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Y가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Y는... 한량 같이 굴던 나에 대해 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부정적으로는. Y는 사람들에게 소모적인 가십 측면의 관심은 없는 친구였으니까. 그래서 또 다른 친구 S(이 친구도 <친애하는 시리즈>의 한 꼭지를 할애할 멋진 친구다)와 나는 Y를 회색 인간이라고 불렀다. 본인 말고는 무채색으로 본다는 뜻이었다. 아무런 평가를 덧붙이지 않는 무채색.
또 우리는 술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 Y는 애주가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나는 필요에 의한 음주만 했고 그리 즐기지는 않았다(내 인생의 한때만을 목격한 친구들이 믿기 어려울 말이겠지만). 반면 Y는 어디서 무얼 하든 맥주 한 잔으로 고된 하루를 마무리했다. 사실 Y의 한 잔은 물리적 단위가 아닌, 어떻게든 술을 마시겠다는 Y의 선언적 표현이다. 누구도 Y의 음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말리는 사람에게는 Y만의 마법의 말이 있었다. 딱 한 잔만, 진짜 딱 한 잔만 할게! Y의 거짓부렁을 6년쯤 지켜본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폭발적으로 음주를 자행할 것이면서도 말로는 안 그런 척하는 모든 행태를 가리켜 웃음기 섞어 '딱 한 잔'이라고 부른다.
누구보다 일찍부터 아침을 맞아 부지런히 살았으니 술이 참 달았을 것이다. Y는 술 '딱 한 잔'을 누릴 자격이 충분했다. 과하게 누린 것 같기도 하지만... 맥주와 소주를 ‘때려 넣는’ Y의 면모는 내 여동생 M도 목격하고 깜짝 놀란 바가 있다. 내 동생 M은 Y의 술 먹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진심으로 목에 뚜껑이 있는 줄 알았어! 뚜껑을 열고 술을 부어버리더라니까?”
우리는 약속을 했었지
Y와 나는 약속을 했었다.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 Y가 유학하고 있는 독일에서 만나자는 약속이었다. 독일의 광장에서 소시지와 맥주를 흠뻑 즐기자는 말이기도 했고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우리가 기억하는 우리를 되새기자는 말이기도 했다. 저렴한 술과 안주를 놓고 밤이 새도록 질리지도 않고 이야기 나눴던 20대 초중반의 이야기들은, 내용은 까먹었으되 촘촘한 대화의 끝에 얹혀 있던 풍부한 감정은 남아 있었다. 우리는 작별할 때 아마 그게 아쉬웠던 듯하고, 서로를 이역만리타국에 두는 것은 그 대화와 감정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막막함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서로가 알던 친구가 아니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제일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의 우리를 되새기자는 우리의 다짐은 세계를 연일 위협하는 전염병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다. 20대 끝자락이면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던 약속이 속절없이 미뤄졌다. 인간은 여러 다짐과 계획을 세우고 꼭 그게 정답인 줄로 믿고 살지만 수 틀린 삶이 거절해 버리면 어쩔 도리가 없다. 결국 우리는 코로나가 한 발 물러서고 하늘길이 뚫린 뒤에, 그리고 Y가 석사 논문을 끝낸 뒤에야 한국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가 알던 그 상대방이었다. 또다시 많은 이야기와 감정, 그리고 추억을 나눴다. 우리 사이에는 어림 잡아 3년 이상의 공백이 있었다만 어제 만나고 헤어진 것 같았다. 그게 우리를 많이 웃게 했다. Y는 한 달여의 체류를 마치고 박사 학위를 하러 독일에 돌아갔다. 우린 만났지만, 나는 새삼 약속을 지키러 독일에 가고 싶다. 어떤 마음이 있다. 내가 너와 했던 약속을 잊지 않았다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그리고 서울 구석구석을 헤매던 20대에 웃음 많던 우리를, 독일 구석구석에서 30대에 재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세상이 다 변해도 우리가 낄낄대며 소모해 버리던 밤낮과 서울 도처의 수제 맥주들은 그대로다. 독일에서도 우린 맥주 몇 잔에 꿀꿀 웃을 테고, 온갖 맥줏집을 기웃댈 거다. 서울에서 신나게 수제 맥주 '딱 한 잔'을 부으며 지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