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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Mar 27. 2024

네? 다리를 들고 벤치프레스를 하라고요? - 라슨프레스

160cm / 51kg의 3대 200 도전기(2)

   그게 되는 거예요?

   “오늘은 다리를 들고 벤치프레스를 할 겁니다”.

   트레이너는 치아가 반짝반짝 자아를 뽐내는 미소를 지었다. 사실 예쁘게 포장한 말이다. 트레이너의 얼굴을 보며 내가 했던 생각은 사악하게 웃네,였다. 그의 말을 잘못 들은 줄 알고 뭘 한다고요? 되물었다. 잘못 듣지 않았다. 세상에. 너무 놀라버렸다. 고전 밈이 생각났다

    -넌 다리 붙이지 말고 벤치프레스 해라..

    -그게 뭔데…

    -다리 붙이지 말고 벤치프레스 하라고…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운동인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벤치프레스를 할 때(그리고 물론 기타 중량을 다룰 때) 하체를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디를 운동하든 발바닥을 바닥에 붙여놓고 하체 힘을 끌어서 써야 중량을 잘 다룰 수 있다. 그렇게 배웠고 여태까지 그렇게 운동했다. 그런데 하체를 쓰지 말라고? 하체는 들고 20kg짜리 빈 바를 들고 벤치프레스를 하라고? 그게 말이 되는 거임? 부러 거울로 보지 않아도 얼빠진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트레이너는 한층 더 상냥한 얼굴을 하면서 잘 보세요, 보여줄게요, 하더니 진짜로 발을 공중에 띄우고 벤치프레스를 으쌰으쌰 했다.


   우리 트레이너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굴리는 재주가 있다. 그의 매끄러운 미소와 손짓에 나는 얼떨결에 의자에 누워 자세를 가다듬고 하체를 들었다. 분야를 불문하고 초보들의 문제 아닌 문제는 힘을 과하게 준다는 점인데, 역시나 천장에 갖다 꽂을 기세로 다리를 들어 올렸다. 트레이너는 부드럽게 말했다. 아니 그 정도로 올리진 말고요, 살짝 바닥에서만 띄우세요. 조종당하는 로봇처럼 그의 지시에 따라 다리를 띄웠다. 벤치프레스를 시작했다. 다리를 띄우니 몸이 많이 흔들리고 궤적이 불안정해졌다. 궁극적으로 가슴 근육을 조지는 운동임을 잊고 팔만 봉을 내렸다 들었다 했다. 다리를 바닥에 다시 내려놓지 않고 봉을 걸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그래도 되긴 되네?


   중량, 비록 0이라도

   자랑 같지만, 그리고 자랑이 맞지만 나는 벤치프레스는 ‘쫌 친’다. 가슴을 열고 겨드랑이와 등에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며 바벨을 명치에 갖다 대는 것, 그리고 가슴 근육을 순간적으로 부풀려 밀어 올리는 것을 좋아한다. 동작을 잘 수행했을 때만 알 수 있는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진 느낌, 가슴과 겨드랑이와 어깨가 합작해 힘껏 밀어낸 느낌은 아드레날린이 팡팡 솟아나게 한다. 여러 동작을 해봤지만 그런 느낌을 받을 때는 흔치 않다. 벤치프레스는 운동 중에 제일 (그나마) 잘하는 것에 속한다. 또 나에게 헬스의 즐거움을 알려준 운동이기도 하다. <나의 헬스일기> 시리즈의 첫 편에서 썼듯 내 몸에서 가장 빠르고 두드러지게 자란 근육이 가슴 근육이었다.


   종종 거울 앞에서 머리 위로 박수를 짝! 친다. 짝! 칠 때도 있고 짝짝짝짝짝 칠 때도 있다. 이 괴이한 행동은 보통 샤워 전후 아직 윗도리를 입기 전에 이루어진다. 팔을 들어 올리면 나무의 굵은 가지처럼 굴곡을 드러내는 쇄골 밑 근육은 내 자부심이다. 그리고 증명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애쓰고 있었다는 증거. 자신감이 부족해질 때나 꽁지를 내리고 도망치고 싶어질 때 거울 앞에서 머리 위로 박수를 친다. 엄마가 종종 어리둥절한 얼굴로 들여다보면서 뭐 해? 묻곤 했지만 이제는 엄마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기사. 첫째의 괴상망측함에 그만 놀랄 때도 됐다.


   가끔은 머리 위로 박수를 치고 나서 자연스럽게 밀리터리 프레스(혹은 오버헤드 프레스) 동작을 이어서 한다. 손에 아무 무게가 실리지 않아도 내 근육은 필사적으로 꿈틀대며 최선을 다한다. 우리를 끌어내리는 중력은 보기보다 거세다. 중력에 맞서 수직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중력에 바스러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늘 버티고 있다. 버티는 것. PT 수업에서 지겹도록 듣는 말이다.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힘을 주어도 더 이상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무게를 가져올 수 없을 때 트레이너는 목청을 돋운다. 버텨요, 버텨! 나는 버틴다. 꼴 보기도 싫은 덤벨과 꿈쩍도 않는 바벨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동작과 무게를, 헬스장에 출석하는 것을, 지긋지긋한 인생을 포기하고픈 마음으로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안온한 감옥에 갇히려는 관성으로부터.


   트레이너는 종종 흡족한 얼굴로 말한다. 최선을 다했군요라던가. 방금 근육이 잘 먹었군요라던가. 멘탈 좋네라던가. 어쩌면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 혹독한 PT 수업을 견디는지도.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로는 충분치 않아서. 부들부들 떨면서 하루하루를 버텨 극심한 피로를 느끼면서도 유구한 의문을 품어왔다. 내가 정말로 열심히 임하고 있는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오랫동안 수면제와 항불안제를 먹는 내가 유리 멘탈은 아닌가? 스스로를 달래 보려는 말도 소용없었다. 30년 동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유의미하다고 믿어 버릇한 사람에게, 버티는 과정의 존중은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숨 쉬고 활동하는 공기와 중력은 건강하고 기분이 좋을 땐 무게가 없다. 그러나 0의 중량은 어느 날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짓눌렀다. 포기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죽고 싶고. 그럴 때마다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지 몰라서 침대에 묶여 있었다. 이제는 헬스장에 간다. 친구들은 농담처럼 혹시 헬스장에 묶여 있느냐고 한다. 헬스장에 가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치열한 타협이 있다. 그냥 이건 건너뛸까? 10개 하려고 했지만 8개만 할까? 어느 날은 기꺼이 타협하고 다른 날은 불응한다. 매일 하는 타협은 어느 날 나를 푹 찌르는 0의 중량이 되어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주엔 감기 몸살을 지독하게 앓았음에도 기를 쓰고 라슨 프레스를 버틴 것 같다.


   다들 다리를 들고 벤치 프레스를 해보세요. 버텨 보세요. 다 같이 힘들어야 한다는 심보는 아니.. 아..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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