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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솔 Apr 22. 2024

가던 길

속도가 아닌 방향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산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창밖 어설픈 푸름이 축축해질 무렵

정면에 희미한 움직임이 있어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젖어있던 흐린 시간도, 자동차도, 내 마음도 정지되고

도로 가운데 서있던 한 가족도 놀라서 차 안의 나를 바라봅니다

덩치 큰 두 마리와 조금 작은 한 마리

순간 핸들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움찔합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지 떨리는 내 손끝을 보았던지

산돼지 가족은 길 건너 산 쪽으로 가던 길을 갑니다

속도가 아닌 

방향만 정한 채 묵묵히 걸어가는 야생의 그 가족을 바라보자

한동안 정지해있었던 도로 위로 빗방울이 거칠어집니다

빗물처럼 가라앉는 마음은

내 안으로 흐르던 것들을 밖으로 내어놓고

천천히, 천천히 걸어가자 속삭이는데

바람도 가는 길이 있는지 젖은 풀밭을 훑고서야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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