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혜솔 Apr 29. 2024

살아지는, 사라지는

여름의 허물

새벽 두 시에 시작된 울음은

아침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짧은 시간의 허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젊음은 입을 연다

영혼이 빠져나갈 때까지 울었는가 봐요

한밤에 애달프게 내지르던 그것이

어떤 울음이었는지 나는 몰랐다

아니, 가로등 불빛이 꺼질 때까지

하룻밤을 살아내고 있던 내가 

울음을 삼키는 중이었을까     


아침에 든 선잠 깨우는 소리가 창을 흔들 때 

음습한 몇 개의 단어들이 나뭇가지에 걸려 

허물을 벗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낮보다 밝은 어둠 속의 변태로 

잠깐 풍경이 된 도시의 여름은 

낮과 밤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영혼을 운운했던 젊음에겐 대꾸하지 못했다

기울어진 지구를 떠올렸다

변하지 않는 것은 기울어진 그 각도를 

느끼지 못하고 산다는 것

치열하게 살아내는 하루도 

결국 사라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기울어진 만큼 기울어져 변해가는 것은

그리고 사라지는 것은 대부분 충실한 것들

남은 것은 그 충실이 빠져나간 

치열한 구애의 죽정이뿐이라는 것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전 17화 국화꽃 사던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