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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솔 May 03. 2024

소란한 행복

노을을 뒤로

산촌생활이 익숙지 않던 어느 날, K는 혼자 산책을 나갔다

굽이굽이 아름다운 길이었다

우거진 숲 사이사이로 붉은빛이 어른거렸다

발걸음은 굽이진 산간도로의 정상으로 향하고

K는 잠시 별이 되어 꿈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잠겼다

서늘한 바람이 구름을 몰고 갔다 

    

굽은 길을 돌 때마다 삶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것은 살아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 자작나무숲을 지나갔다

도로의 정상에 오르고 보니 겹겹이 에워싸인 산들이 병풍처럼 이어져있었다

K는 뒤를 돌아 걸어온 길을 내려다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쳤다


저무는 하늘로 검은 불길이 움직였다 옆쪽 산자락이 시뻘겋다

황급히 119에 전화를 걸었다

산불이에요, 도마령 정상, 산책 중인데 올라올 땐 몰랐어요

떨리는 가슴을 잡고 진정하려 애를 썼다

면내의 소방서에서 빨라도 20분은 걸리는 산길     


인적 없는 도마령에 소방차가 도착했다

민망함을 금치 못하는 K앞에 두 명의 대원들은 웃으며 다가왔다

하늘은 여전히 검붉고 바람은 구름을 몰아왔다

이 길을 처음 걸어봐요, 이 산 뒤로 해가 넘어가는 줄도 몰랐고

더구나 저녁놀이 이렇게 요란한 건 본 적이 없어서…   

  

K가 산불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한 후 다시 전화를 걸었을 즈음

소방차 한 대는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는 중이었고 한 대만 

천천히 올라왔다고 한다

  우리도 도마령에서 저녁노을을 볼 수 있는 날이 오네요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있을까요, 되려 고맙구먼요 

     

그렇게 K와 두 사내는 검붉은 노을 앞에서 어둠을 맞았다

아름다운 것은 

살아있어 흔들리는 것들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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