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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솔 May 08. 2024

순이네 집

문득 생각나는 

손가락 사이에서 끈적거리는 밀가루 반죽처럼

오래전 기억이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고 있다

돌계단을 오르니

낡은 철 대문이 열려있고

멸치국물 냄새가 새어 나온다   

   

쫀득쫀득 수제비를 뜯어 넣은 양은솥에서 

하얀 김이 오른다

툇마루에 앉아 부엌문을 바라보던 얼굴 앞에

가볍게 놓이는 저녁상 

숟가락을 건네는 그 애 언니의 나지막한 목소리

먹어봐, 국물을 입에 대어준다

아이 짜!

그래도 먹어봐

도리질을 한다

자매는 숟가락 사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철 대문 틈새로 스며드는 빛줄기, 자매를 동여맨다

마당 모퉁이에 말라버린 과꽃 송이 위로 구름그림자 머물고

꾸벅꾸벅 졸던 계절은 그렇게 저물었다     


문득 그리운 시절, 사람들

나들이를 꿈꾸는 가을날 

발걸음은 수십 해를  더듬어

그들의 집이 있었을

무채색의 풍경 속으로 성큼

성큼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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